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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애민사상·개혁정신 세계에 통할 것”

중앙일보 2010.08.18 00:20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병현 호남대 영문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목민심서』 영어 번역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최근 아마존 등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서양에 플라톤(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공화국』이 있듯 한국에는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牧民心書)』가 있다는 걸 세계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다산이 세계 무대를 향해 200년여 만에 다시 태어났다고 감히 말씀 드립니다.”


10년 번역작업 끝에 『목민심서』 영문판 펴낸 최병현 교수

『목민심서』를 영어로 번역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출판사에서 『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Manual for All Administrators』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호남대 영문학과 최병현(60) 교수의 말이다. 최 교수는 이 영역본이 중국·일본을 넘어 서양에서도 한국학은 물론 정치학·행정학·사회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정치인·행정가들에게 많이 읽힐 것으로 확신했다.



책 분량이 서문을 포함해 1170쪽에 이른다. 당초 76만여 단어로 번역했으나 책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여러 권이 되면 독자들이 외면할 수도 있어 10만여 단어(약 300쪽 분량)을 줄였다. 그러나 원작의 중요한 내용은 다 담았고, 압축을 통해 다산의 애민사상과 개혁정신을 선명하게 부각했다. 예스러움을 유지하되 고루하지 않게 번역했다고 한다.



“그간 토·일요일도 없었지요. 학자는 어리석어야 한다고 하는데, 제가 그랬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번역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 단어, 한 구절을 번역하는 게 바윗덩어리를 이리저리 재서 들어내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한 문장을 영어로 바꾸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들추고, 국역한 내용이 불분명할 때는 한문 원본을 보고 재해석했다.



1980년 국역 출간된 총 6권의 『목민심서』(창작과 비평사)와 『다산 산문선』(박석무 저)을 중심으로 번역했다. 번역에만 딱 7년이 걸렸다. 이어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해 출판하는 데 또 3년이 더 들어갔다.



최초의 목민심서 한글본 여섯 권이 나오기까지는 한학자 15명이 10년간 매달렸었다. 최 교수는 그 여섯 권을 혼자서 10년간 영역한 것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재정을 지원했고, 동원그룹·일신문화재단 등이 출판작업을 도왔다.



“다산 선생께서는 ‘목민관은 ‘준비가 안 된 사람은 사양해야 할 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자신을 닦은 뒤 다스리라는 뜻)이라고 가르치셨는데 우리 현실은 수기가 안 된 사람들이 치인을 하려 들죠. 마음가짐이 제대로 된 지방자치단체장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합니다.”



최 교수는 ‘우리 정치사에 점철된 부정부패와 권력남용·비효율 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목민심서 영역을 결심했다. 서양인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 위정자가 어떻게 하면 국민을 위하고 바른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유교권인 한·중·일 3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에도 해당되고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세계에 보급하기 쉽게 출판사도 절차는 까다롭지만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캘리포니아대를 선택했다. 최 교수는 “현재 외국인에게 비치는 한국 문화는 대중문화와 현대적인 것에 한정돼 있다”며 “우리에게 훌륭한 전통문화가 많기 때문에 고전과 역사서의 번역은 무역 못지 않게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 컬럼비아대와 뉴욕시립대학원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으로 국난을 극복했던 서애(西厓) 유성룡(1542∼1607)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의 배경·진행상황·결과 등을 정리한 책 『징비록(懲毖錄)』을 영역한 『The Book of Corrections』를 미국 버클리대에서 출판했다. 2005년엔 한국 고지도(古地圖) 제작 역사를 담은 『우리 옛 지도와 그 아름다움』(한영우 저)을 영역해 『The Artistry of Ancient Korean Cartography』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는 가칭 ‘한국고전 영역을 위한 고전용어 대사전’ 편찬작업을 하고 있다. 역사서들을 번역하면서 관직 명칭 등을 표현하는 적절한 영어 어휘를 찾느라 겪은 고충을 다른 사람이나 후학들이 뒤따라오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두자는 생각에서다.



광주=이해석 기자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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