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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앙드레 김을 통해 보았다 사랑·환상 그리고 어머니 …

중앙일보 2010.08.18 00:10 경제 21면 지면보기
‘원 앤 온리(one and only)’. 12일 작고한 고 앙드레 김을 두고 패션계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디자이너’라고 평한다. 실제로 그는 패션디자이너라기보다는 예술가였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시즌을 앞두고 트렌드를 보여주기 위해 패션쇼를 한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패션쇼를 하면서도 시즌 컬렉션은 하지 않았다. 작품도 트렌드나 예술사조에 따르지 않았다. 현역으로 보낸 47년간 그는 오직 자신이 추구한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오트 쿠튀르만 고집했다. 그 주제는 언제나 소년·소녀 시절에 잠시 꿈꾸다 잊어버리는 ‘왕자와 공주의 환상’이었다. 그의 패션쇼는 늘 붐볐다. 이는 어쩌면 나이가 들어도 주눅들지 않고 점점 더 ‘장렬’해지는 환상의 세계가 주는 카타르시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절대 머물러 있지 못하는 소년기의 꿈이 날이 갈수록 왕성해지고, 그걸 표현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신산한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에게도 위안이 됐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프리뷰 인 차이나 2010’ 패션쇼는 앙드레 김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이날 메인 모델이었던 배우 정겨운과 이수경이 이마를 맞대고 클라이맥스 장면을 연기했다.
이젠 ‘영원한 소년’ 앙드레 김을 보낸다. 아듀~ 앙드레!



글=이도은·이진주 기자

사진=중앙포토



사랑으로 보여준 ‘꿈과 환상’



“환상적이지요?” 그는 늘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우아하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꿈과 환상’은 그의 이상이었다. 서정기 디자이너는 “앙드레 김의 드레스는 한번쯤 화려한 인생을 꿈꾸는 여성들의 욕망을 자극한다”며 “옷 하나로 잠깐의 판타지를 유도하는 굉장한 힘이 있다”고 평했다.



그는 남녀의 사랑을 꿈으로 표현하려 했고,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듯 대리만족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쇼에는 항상 ‘사랑해요’라는 장면이 등장했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공주와 왕자가 시련을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해피엔딩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꽃을 받지만 돌아서 무대 뒤로 사라지며 이별을 고한다. 그러다 다시 뛰어나와 남자에게 안긴다. 그리고 피날레에선 만남-이별-재회의 끝에 결혼 예복을 입고 이마를 맞댄 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지금껏 김태희·송승헌(2008년 유니세프 기금마련 패션쇼), 이승엽·이송정(1999년), 최지우·이진욱(2007년) 등이 이를 똑같이 연기했다. ‘앙드레 김 표 피날레’는 그의 환상 속 뮤즈였던 오드리 헵번이 영화 ‘사브리나’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손을 맞잡고 있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화려한 칠겹 옷, 한국 여인의 정한



그만큼 한국적인 소재와 모티프에 매달렸던 디자이너도 드물다. 생전의 그는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래서 어머니가 표상하는 우리 여인네들의 정한을 ‘칠겹 옷 퍼포먼스’에 담아냈다. 쇼의 절정엔 이전의 고상한 무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전통가요 ‘칠갑산’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가지보라·꽃분홍·터키석 블루 등 선명한 색깔의 의상을 겹쳐 입은 한 모델이 등장한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한 꺼풀씩 옷을 벗는다. 마침내 마지막 옷을 선보이며 날아갈 것 같은 해방감을 맛보는 것도 잠시, 허물처럼 벗어 던졌던 옷들을 그러안고 다시 슬픈 얼굴이 되어 사라진다. 섹슈얼하다기보다는 우리네 전통 승무나 살풀이를 보는 것 같은 처연함을 주는 장면이다.



이 때만큼은 모델의 손놀림도 한국적으로 변했다. 서양식 포즈 대신 큰절을 하듯 가슴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거나 무용수처럼 대각선으로 뻗는 동작을 연출했다. 무척이나 한국적인 역할이었지만 외국인 모델들도 이를 연기했다. 리허설을 포함해 100회 넘게 이 옷을 입었다는 러시아 모델 ‘율라(포모가에바 율라 알렉산드롭나)’씨는 한 인터뷰에서 “칠겹 옷은 ‘여인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뜻했다”며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한 편의 종합예술로 승화한 패션쇼



앙드레 김의 패션쇼는 늘 드라마틱한 이벤트였다. “나를 키운 것 중 8할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다”는 생전의 고백처럼 세계적인 문화 유적에서 최초·최대의 판을 벌였다. 1966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세계무대에 데뷔한 이래 96년에는 세계 최초로 이집트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앞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것은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2006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패션쇼(사진)다. 앙드레 김은 앙코르와트 동문에 있는 65m 높이 중앙탑을 병풍처럼 두르고 런웨이를 꾸몄다. 역사상 처음으로 사원에 야간 조명을 비췄다. 99년부터 앙드레 김 해외쇼의 촬영을 맡은 조성제 포토그래퍼도 “직접 보지 않고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환상적이고 웅장한 무대였다”고 회고했다.



또 그의 쇼는 오페라 무대를 연상시켰다. 1시간 동안 150여 벌의 옷이 쉴 새 없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러면서도 관객이 언제, 어떤 의상에 ‘와~’ 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노리는 연출력을 보였다. 늘 기획부터 음악·연출·워킹까지 완벽을 기했던 그의 세심함 덕분이었다. 단 한 번도 리허설에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은 모델들이 워킹할 때 조명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생기지 않나 신경 쓸 정도였다”는 게 모델센터 기획팀 김경숙 부장의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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