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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달러 부자’ 중국의 달라진 포트폴리오

중앙일보 2010.08.18 00:01 경제 2면 지면보기
미국을 팔고, 일본을 산다. 요즘 중국의 외환보유액 투자를 요약한 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예전만 못해진 미국에서 슬슬 돈을 빼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성장 전망이 좋은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중국이 일본 국채 매입에 나선 것은 달러화 일변도의 투자를 다변화하자는 취지로 분석된다. 이게 최근의 엔고를 부채질하는 측면도 있다. ‘차이나 머니’의 일본 상륙이 일본 수출기업에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중국, 미국은 팔고 일본은 사들인다

홍콩 명보는 17일 중국이 지난 5월과 6월 잇따라 미국 국채를 매각했으며, 이로써 두 달 새 중국의 국채 보유액은 565억 달러 줄었다고 전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6월 말 현재 2조4543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환보유액의 투자 다각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지난 1년간 미 국채 720억 달러를 팔아치웠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이 지니고 있는 미 국채는 8437억 달러 규모다. 지난해 미 국채 보유량을 7.9% 줄인 셈이다.



반면 일본 국채의 투자 비중은 크게 늘리고 있다. 일본 재무성은 최근 올해 상반기 중국의 일본 국채 순매수액이 1조7326억 엔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난 5월엔 월 단위로 최대 규모인 7400억 엔어치를 사들인 데 이어, 6월에도 4564억 엔어치를 매입했다. 명보는 “상반기에 중국이 사들인 일본 국채 규모는 지난 5년간의 총매입액의 5배에 이른다”고 전했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안 담는다=중국이 달러 표시 채권을 줄이고 빈자리를 엔화 채권으로 채우는 이유는 ‘달러 올인’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보유액 통화별 구성(COFER)’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외환보유액의 투자 통화 비중은 달러화 65%, 유로화 25%, 엔화·파운드화 10%로 추정된다. 중국이 이 같은 포트폴리오에 위험신호가 켜졌다고 판단한 듯하다. 외환보유액을 달러 위주로 편성했을 경우 자칫 큰 평가손실이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신영증권이 16일 발표한 리서치 보고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미국의 대규모 통화·재정 정책으로 인해 재정리스크가 증가했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의 하락 가능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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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국의 미 국채 매각은 손실 회피 전략인 셈이다. 위용딩 전(前) 인민은행 고문은 지난달 “중국 정부가 다른 통화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며 “외환보유액 다변화가 외환 관리의 기본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전략에 따라 중국은 한국 채권에도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영증권 홍정혜 연구원은 "중국이 한국 국채를 월평균 3000억~4000억원어치씩 꾸준히 사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 불안이 배경=특히 중국은 미국 경제의 장기 침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홍콩 금융권 관계자는 “미국의 민간경제 연구소 ECRI의 성장·고용·물가 분야의 지표들이 3주 연속 전년 동기 대비 10%씩 떨어졌다”며 “미국 경제의 더블딥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 경제는 중국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미국과 유럽이 휘청거리는 데 비해선 상대적으론 덜 불안하다는 게 중국 당국의 판단이다. 홍콩 투자전문은행(IB)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가시지 않고 유럽도 재정불안의 불씨가 완전히 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적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기록적인 엔고도 중국의 일본 국채 투자의 배경이 되고 있다. 홍콩 도이체방크 빌 창 투자전략팀장도 “수익성 측면에서도 엔화 강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엔화 채권에 대한 매력이 어느 때보다 커보인다”고 말했다. 홍콩의 한 외환 전문가는 “중국의 외환보유액 다변화는 외환의 운용과 관리의 안정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달러 가치의 등락과 상관없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시아 머니 약진=최근 아시아 기업들이 잇따라 국제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17일 미국 시장정보 제공업체 딜로직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업들의 인수합병(M&A) 규모는 제안 가격 기준으로 1327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증가한 것이다. M&A 규모가 사상 최대에 달했던 2008년(1427억 달러)에 육박하는 수치다.



대표적 예가 홍콩 부동산 재벌 리카싱이 이끄는 청쿵인프라스트럭처(CKI)-홍콩일렉트릭 컨소시엄이다. 이 컨소시엄은 프랑스전력공사의 영국 전력배전 네트워크를 50억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태국의 참치 가공업체인 타이유니온프로즌(TUF)이 프랑스 해산물 통조림 회사를, 한국석유공사가 스코틀랜드의 원유탐사업체 인수를 추진 중이다. 인도 자동차기업 마힌드라앤드마힌드라가 최근 쌍용자동차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일본 주류업체 기린홀딩스도 타이거맥주 제조사인 프레이저앤드니브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WSJ는 “아시아 각국의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고, 엔·바트·루피 등 아시아 통화가치가 상승하면서 M&A 비용이 저렴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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