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라미드 옆에 텐트 치고 나흘간 다림질 지휘”

중앙선데이 2010.08.15 03:28 179호 3면 지면보기
2014 겨울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유치를 기원하기 위해 2007년 5월 16일 강릉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앙드레김 패션쇼. 이날 행사에는 당시 프랑수아즈 티에보 프랑스 대사 부인(맨 왼쪽), 추칭링 중국 대사 부인(왼쪽에서 셋째), 안나벨 폰 아르님 바스 독일 대사 부인(가운데), 비에라 흐르모아 슬로바키아 대사 부인(오른쪽에서 셋째) 등 주한 외국대사 부인과 가족 10여 명이 무대에 올랐다. [중앙포토]
“일류 디자이너는 국가관과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한국인이며 아시아인이라는 자부심이 패션에 드러나 있어야 합니다.”12일 오후 타계한 앙드레 김의 지론이다. 1966년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한 이래 그는 민간 외교사절을 자임했다. 그해 말 워싱턴 패션쇼에서는 석굴암을 모티브로 한 검은 공단 이브닝 드레스를 존슨 미국 대통령 부인에게 선물했다.

한·이집트 수교의 막후 … 앙드레 김의 애국심 재발견

2006년 세계 최초로 앙코르와트에서 패션쇼를 펼칠 땐 스물세 벌의 옷에 캄보디아 불교 미술을 프린트했다. 해외 무대에서는 이렇게 한국과 해당국의 문화를 함께 보여주며 문화적 소통을 시도했다. 국내 87개국 대사관 리셉션에는 거의 빠짐없이 얼굴을 보였다. 고위 외교관이 취임하거나 이임하면 꽃다발을 선물하며 친분을 쌓았다. “직접 티켓을 예매하고 외교사절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러 와서 한국 뮤지컬을 대사들에게 적극 소개해주시곤 했다”고 윤호진 한국뮤지컬협회장은 말한다.

국내외 외교가에서 그의 타계를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이번 그의 빈소에는 무초 마사토시 일본 대사 부부, 비탈리 편 우즈베키스탄 대사 부부 등 외교사절의 조문이 줄을 잇고 있다. 그들은 앙드레 김이 대한민국 외교 발전에 기여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느꼈다. 앙드레 김은 대한민국 외교의 길을 함께 걸었고, 어떨 때는 길을 열기도 했다. 정태익(67) 초대 이집트 대사의 얘기다.

“93년 주 카이로 총영사로 부임했다. 당시만 해도 이집트는 북한과 가까웠다. 나의 최대 미션은 이집트와의 수교였다. 경제·문화 교류를 추진하다 앙드레 김 패션쇼를 기획했다. 94년 가을 카이로 힐튼호텔에서 열렸는데, 영부인 수잔 무바라크 여사가 참석한다고 했다가 결국 불참했다. 패션쇼는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앙드레 김 선생이 패션쇼 수익금 전부를 무바라크 여사가 운영하는 어린이교육재단에 기부했다. 무바라크 여사가 크게 감동했다. 김일성 주석 사망 등 외부 여건도 있었지만 95년 4월 한국과 이집트 수교에 큰 영향을 줬다고 나는 확신한다.”

96년 수교 1주년 때 기자의 피라미드 앞 무대가 앙드레 김에게 허용됐다. 프랭크 시내트라·입생 로랑 등 서양 문화계 거목들이 공연이나 쇼의 무대로 쓰긴 했지만, 아시아 예술인에게 피라미드 앞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집트 주재 외교관 부인들과 교민회 부인들이 도우미로 나섰다. 기자 피라미드는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오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피라미드 옆 사막에 텐트를 두 개 쳤다. 거기서 400벌이나 되는 옷을 외교관 부인과 교민들이 다림질해댔다.

정 대사의 부인 민강희씨는 “나흘 동안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텐트에서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을 했는데, 김 선생님은 모델들의 모자부터 스타킹까지 모든 것을 철저하고 꼼꼼하게 챙기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점검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한민국 예술사절단이라는 당신의 자부심이 대단했다”며 “그분의 열정과 애국심은 경이로울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수잔 무바라크 여사는 중동의 패션계를 대표하는 여성이다. 2년 전 이미 감동을 받은 무바라크 여사는 피라미드 앞 패션쇼를 적극 후원했다. 패션쇼에는 이집트 전 각료의 부인들과 주 이집트 외교사절, 문화부 장관 등 주요 인사 250여 명이 참석했다. 전 언론이 행사를 보도했다. 피라미드 패션쇼에서도 앙드레 김은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 등 이집트 고유 문화가 담긴 의상을 선보였다. 그럼으로써 이집트 각료와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앙드레 김 아뜰리에 임세호 실장은 “무바라크 여사는 99년 남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청담동 의상실을 찾아와 의상을 주문하기도 했다”고 들려주었다. 민강희씨는 “지금도 봄철 모래바람이 불 때면, 사막 텐트 속에서 다림질하던 생각이 난다”며 “한국 외교에 큰 힘을 보탰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앙드레 김은 타계하기 직전까지 외국 무대를 준비했다. 9월 3일로 잡았던 ‘아이스 패션쇼’는 아사다 마오 등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앙드레 김의 의상을 입고 얼음판을 지치는 새로운 시도였다. 중국 우한(武漢)의 한국 총영사관 개관에 맞춘 패션쇼는 10월 28일부터 11월 4일 사이에 하루 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28년간 앙드레 김의 패션쇼를 주관한 모델센터 도신우 회장은 “워낙 중국의 문화나 전통 왕실 복식사를 꿰뚫고 계셨기 때문에 우한 패션쇼 역시 양국의 전통 복식을 아름답게 재현한 의상으로 꾸미셨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앙드레 김은 평소 “내 작품을 통해 외국인은 한국을 느낀다”며 품격을 강조했다. 작품을 완벽하고 꼼꼼하게 손보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언행에서도 유의했다. 합장하듯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며 정중하게 인사하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와의 대화에는 ‘로열(Royal), 자부심, 예의, 지성미, 품위, 우아함’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반면 누군가 버릇없거나, 천박한 용어를 쓰거나, 저질스러운 태도를 취하면 차갑게 외면했다. 품행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인기 스타라도 모델로 쓰지 않았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60년대부터 자선 패션쇼를 펼쳤던 그는 특히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를 위한 행사라면 자기 일처럼 챙기곤 했다. 70년대에는 이방자 여사가 이끌던 불우아동단체에 복지사업기금을 보탰고 직접 디자인한 방한복과 점퍼, 티셔츠, 재킷 등을 가져가 입혀주기도 했다. 그 뒤 서울시립아동병원 불우 어린이와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에 이어 2001년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특별대표, 2003년부터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를 맡아 세계의 불쌍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박완서·안성기씨와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김경희 교육문화국장은 “맨발 걷기 대회 같은 유니세프 자선행사나 디너쇼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는 등 1년에 5~6회씩 패션쇼 준비로 바쁜 일정에도 친선대사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셨다”며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초청하고 싶다고 하셔서 최근까지 논의를 했었다”고 들려주었다. 그는 “사실 그렇게 많은 외교사절이 참가하는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민간인이 몇이나 있겠나”라며 “ 그는 민간 외교사절로서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분이셨다”고 애도했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