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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우린 오미자차에 수국차 잎 살짝 띄워 보세요

중앙선데이 2010.08.13 23:22 179호 10면 지면보기
청량음료란 것을 사 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수퍼마켓 냉장고를 가득 채운 그 엄청난 가짓수의 청량음료들, 한여름에 그것들을 1L짜리 페트병으로 몇 개씩 카트 가득 사가는 사람들을 볼 때 새삼스레 깜짝깜짝 놀란다. “이런 음료를 이렇게 많이들 먹는구나!” 하고. 탄산음료는 거의 다 화학약품들로 만든 것이고, 자연 재료로 만든 음료라고 해도 수많은 화학적 처리를 거친 제품 아닌가. 게다가 저 달디 단 것들을 저렇게 계속 마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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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예전에는 나도 엄청나게 먹어댔다. 콜라나 사이다 값이 부담스러웠던 우리 집에서는, 대신 집에서 분말 오렌지주스를 타서 먹었다. 말만 오렌지주스이지 오렌지 근처에도 가지 않은 것들이다. 짐작건대 화학약품인 황색과 적색 색소, 설탕 혹은 인공감미료, 신맛이 나는 구연산, 여기에 오렌지 향이 나는 화학약품을 섞은 것일 터이다.

19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반쯤이던가, 한때 ‘탱 가루’라는 것이 매우 유행한 적이 있었다. 포장지에 ‘TANG’라고 쓴 미제 분말이었는데, 특별히 ‘미제물건 아줌마’한테 사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무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국산 분말에 비해 향이 월등하게 좋았다. 맹물에 이 탱 가루와 설탕을 풀고 ‘빙(氷) 어름’이라고 붉은 페인트로 어설프게 써붙인 곳에서 톱으로 썰어 파는 얼음을 몇 조각 부수어 띄워 먹는 것이 그토록 맛있는 음료였다.

그땐, 인공향료와 인공색소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위생관념이 철저했던 우리 엄마가 당부한 말은, 길거리에서 파는 냉차나 싸구려 아이스케키에는 대장균이 우글거리니 절대로 사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가장 유해한 것이 대장균이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대장균만큼 인공색소와 향료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안 지금도, 탱 가루의 추억이 삼삼하여 몇 년에 한 번쯤은 지하철역 자판기에서 환타 오렌지를 사먹는 경우가 있다. 그 향이 가장 탱 가루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수를 달래는 것은 딱 한 모금뿐, 두 모금째부터는 그 인공향이 코에 거슬린다.

우리 식구라고 여름에 목이 마르지 않을 리 없다. 목마르면 물을 찾게 되고, 맹물만 마시면 지겨우니 뭔가 다른 음료를 찾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말하자면 제품화된 청량음료 대신 뭔가 다른 음료를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나의 선택 조건은 단 하나. 값싸고 만들기 손쉬운 것이어야 한다.

새콤한 음료가 먹고 싶을 때에는 매실과 오미자 음료가 가장 좋다. 봄에 만들어놓은 매실 청을 물에 타먹으면 새콤달콤한 맛이 청량음료 부럽지 않다. 단맛이 그리 내키지 않는다면 매실 청에서 건진 매실 알맹이를 물병에 담고 물을 섞어 냉장고에 하루쯤 보관해 두었다가 먹는다. 매실 향은 은은하게 우러나지만 단맛은 현격하게 적다.
오미자 역시 그러하다. 국산 오미자 값이 그리 싼 것은 아니나, 청량음료 값을 생각하면 비교도 안 된다. 오미자를 여름에 먹기 편한 것은, 끓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가스레인지 한 번 켜는 것도 스트레스인 이 더운 여름에(주부들은 이 말에 다 공감할 것이다) 끓였다 식혀 먹는 번거로운 음료란 생각하기도 싫지 않은가.

오미자는 그냥 찬물에 담가 하룻밤만 지나면 아주 빨간 색깔과 시고 씁쓰레한 맛이 잘 우러나온다. 오히려 오미자는 끓이면 분홍빛밖에 나지 않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역시 오미자를 조금 넣은 물병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음료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 먹으면 좋다.

오미자의 시고 쓴맛이 싫으면 설탕이나 꿀을 타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당의 섭취를 좀 줄이면서 단맛을 느끼고 싶으면, 수국차 잎을 이용하면 좋다. 수국 잎을 말린 것인데, 주로 이슬차라는 이름으로 통용된다. 웬만한 차 전문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이 수국차는 희한하게도 당분과 무관하게 단맛을 낸다. 물론 그 단맛은 당분의 단맛과는 다소 다르다.

하지만 설탕이나 꿀 같은 당분을 넣은 음료가 입에 남아 시큼한 뒷맛을 남기는 것에 비해, 이 수국차는 오미자의 신맛에 단맛을 더하는 효과를 내면서도 시큼하고 찜찜한 뒷맛을 남기지 않아 개운하다. 내가 가장 애용하는 음료는 시지도 달지도 않은, 오로지 향만으로 먹는 이른바 ‘차’ 종류다. 차게 두고 먹는 차는 아무래도 향이 약화되므로, 평소에 향이 강하다 싶은 것들을 쓰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은은한 세작이니 작설이니 하는 한국 차보다는, 풀냄새가 강한 말차(가루차), 꽃냄새가 강한 재스민차, 홍차나 보이차 같은 발효차를 먹는다.

보이차는 처음 우린 물은 버려야 하므로 일단 따끈한 물에 우린 후에 차 잎과 우린 물을 모두 물병에 넣어 냉장고에 두고 먹으며, 나머지는 티백 혹은 차 잎을 그대로 물병에 직접 넣어 둔다. 그 잎들은 처음에는 떠 있지만 몇 시간 지나면 다 가라앉아, 먹을 때에 그리 불편하지 않다. 대용차 중에서도 향이 강한 루이보스차 같은 것도 좋다.

이런 음료를 만들어 먹다 보면, 차를 우려 캔에 담은 제품들이 인공 향을 섞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즉 녹차 향을 섞어 녹차 냄새를 유지하는 것이다. 설마라고? 앞에 쓰인 ‘0칼로리’ 같은 문구에만 현혹되지 말고, 뒤에 깨알같이 쓰인 식품첨가물을 잘 읽어보라. 그뿐이 아니다. 토마토·포도·매실 등 과일로 만든 음료도 인공향료와 색소, 과당 등이 꽤 첨가되어 있다. 홈메이드 음료에 익숙해지면, 이런 인공적인 것들은 금방 입에서 느껴진다.

집에서 우려먹기 위해 티백 제품을 살 때에도 식품첨가물 표시를 읽어보는 것은 필수다. 꽃 향이나 과일 향이 강한 차의 상당수가 향료를 첨가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건 외제도 마찬가지이니, 외국어로 쓰인 식품첨가물을 읽어 해독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한국어로 표기된 제품을 꼼꼼히 읽고 사는 게 속 편하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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