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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김지운 감독 ‘악마를 보았다’

중앙일보 2010.08.13 01:29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민식(사진)·이병헌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악마를 보았다’. [쇼박스 제공]
악마를 보고픈가? 그렇다면 ‘악마를 보았다’를 보면 된다. 한국영화사상 전대미문의 악마가 등장한다. 사실적인 연출, 연기와 함께 2시간 넘게 끔찍한 악행이 이어진다. 두 차례나 ‘제한상영가’(일반극장 상영불가) 등급을 받았던 ‘악마를 보았다’가 잔혹한 장면을 1분30초 가량 잘라내고 12일 청소년관람불가로 개봉했다.


치 떨리는 최민식 살 떨리는 이병헌, 듣도 보도 못한 악마 둘

국정원 요원 수현(이병헌). 그는 약혼녀가 사이코패스 경철(최민식)에게 잔혹하게 살해되자 복수에 나선다. 경철의 잔인한 범죄 행각은 이어지고, 경철을 쫓는 수현의 복수 행각 역시 끔찍해져 간다. 최민식이 “영화를 끝내고 나니 빨간 색이 싫어졌다”고 말할 만큼 화면은 피범벅이다. 사지절단·신체훼손 등이 이어진다. 영화는 박찬욱이나 타란티노식의, 비현실적 폭력의 쾌감이나 판타지 없이, 관객을 날것의 폭력현장으로 데려간다. 끔찍한 악마성의 극한 체험이다. 그것도 2시간 넘게.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대박을 친(전국 관객 685만 명) 김지운 감독은 이 영화를 일종의 ‘사실주의 하드고어(피 튀기는 호러) 복수물’로 만들었다(잔혹함의 수준은, 관객 취향에 따라 엇갈리겠지만 기존 하드고어 팬이라면 놀랄 정도는 아니다). 복수영화의 장르를 따르는 듯 하면서도 그를 비튼다.



최민식의 말대로 “폭력에 중독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폭력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 폭력을 단순 유희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영화”다. 이병헌은 “복수에서 쾌감을 느끼기는커녕 피로감을 느끼는 수현에게 주목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악마성 체험 이상으로 나가지 못한다. 가령 이병헌에게는 사법제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적 처단에 나선 사람의 딜레마가 없으며, 악마성의 근원에 대한 성찰도 부족하다. 하나는 타고난 악마, 또 하나는 복수 때문에 더 끔찍해진 악마, 둘 간의 숨막히는 사투가 있을 뿐이다.



감독은 평소의 내공대로 ‘악마성’을 리얼하게 화면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감독의 연출력은 팽팽하고, 화면은 스타일리시하다. “두 배우의 명연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감독의 호언장담처럼 최민식·이병헌은 살 떨리는 실감 연기를 선보인다. 어쩌면 감독은, 악마성이란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그 자체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것이, 그에 대한 가장 영화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폭력과 악마성을 차갑게 바라보되 뜨거운 방식으로 그려낸 영화, 복수영화의 가장 익스트림하고 흥미로운 버전이다.



그러나 살면서 절대로 만나고 싶지 않은 악을, 심지어 반성 없는 악을 생으로 체험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 평론가 유승찬은 최근 충무로의 잔혹경쟁에 대해 “한반도라는 이야기의 보고에서 고작 외국영화가 진작에 경험했던 핏빛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혹시 최근 한국영화는 ‘강한 스타일에 대한 무조건적 애호’ ‘컬트적 재능과시’에 지나치게 에너지와 재능을 많이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영화란 무엇을 위해 있어야 하며, 이 시대 영화의 의미는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은 여지없이 남는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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