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둑] 돌부처 앞에선 작아지는 센돌, 이번엔…

중앙일보 2010.08.13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세돌 9단은 세계 최강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이고 최근의 성적이 그를 뒷받침한다. 이창호 9단은 만인이 수긍하는 세계 최강자였으나 2006년 이후 세계대회 우승컵이 없다. 국제무대에서 중국 기사들은 이세돌을 보면 호랑이처럼 무서워하지만 이창호를 만나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창호의 전성기가 지나고 이세돌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꽤 오래 된 얘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세돌과 이창호, 두 사람만을 놓고 보면 이세돌은 이창호를 넘어섰다는 증거를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이세돌은 이창호와 지금까지 결승전에서 6번 싸워 1승5패다. 상대 전적도 21승30패로 밀리고 있다. 정말 두 사람 사이엔 우리가 모르는 무슨 특별한 게 있는 것일까.


물가정보배 결승서 맞붙어 이창호에 번번이 역전패 이세돌 징크스 깰까 관심

10일 하이원리조트에서 열린 명인전 이벤트에서 팬들 앞에 선 이창호 9단(오른쪽)과 이세돌 9단(가운데). 결혼을 앞둔 이창호 9단이 사회자의 요청을 받고 약혼자 이도윤씨를 향해 “사랑해”를 외치자 결혼 선배인 이세돌 9단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왼쪽은 백홍석 7단. [한게임 제공]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이 물가정보배 결승에서 맞붙는다. 비록 세계대회 같은 큰 무대는 아니지만 팬들이 학수고대하던 18개월 만의 진검승부다. 이세돌 9단은 “흥분된다”고 말한다. 평소 기회 있을 때마다 “이창호 9단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확실히 넘어서고 싶은 내부의 승부사적 욕망이 이 한마디에 잘 압축되어 있다. ‘결승전 전적표’를 보면 두 사람 사이의 긴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2001년 2월,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에서 당시 18세의 신예 이세돌 3단은 초반 1, 2국에서 이창호 9단을 연파하며 2대 0으로 앞서갔으나 나머지 세 판을 모두 지며 3대 2로 지고 만다. 이듬해 왕위전 도전 5번기에서도 첫 판을 이겼으나 또 3대 2로 역전패. 지긴 졌으나 반향은 컸다. 이세돌이 세계 최강 이창호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2003년 이세돌은 LG배 결승에서 드디어 이창호를 3대 1로 꺾고 생애 첫 승리를 기록한다. 하나 2004년 왕위전 도전기에서 이세돌은 또다시 첫 판을 이기고 3대 2로 역전패했다. 이세돌 9단이 강렬한 기세로 기선제압에 성공하지만 뒷심이 강한 이창호가 서서히 판세를 뒤집는 종전의 시나리오가 되풀이된 것이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이세돌은 이창호에겐 안 되는 것인가. 아니다. 전성기의 이창호를 상대로 이 정도 싸웠으면 훌륭한 것이다. 이세돌이 이창호를 넘어서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갔다. 신기하게도 둘 사이의 진검승부는 좀체 이뤄지지 않은 채 훌쩍 5년이 지나갔다. 2009년 봄, 무려 5년 만에 두 사람은 바둑왕전 결승에서 만났는데 다시 이창호가 2대 1로 이겼다. 어찌된 일인가. 전성기를 넘긴 이창호를 이세돌은 여전히 꺾지 못했다. 강동윤·박정환 등 많은 신예가 결승에서 이창호를 이겼는데 이세돌은 또 졌다.



TV 속기는 운이라는 얘기, 이세돌 9단이 바둑 외적 갈등에 휘말린 탓이란 얘기도 있었다. 이창호-이세돌의 관계는 특별하다는 해석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어찌 될까. 물가정보배는 우승상금 3000만원의 작은 기전이지만 벌써부터 세계대회 결승만큼이나 관심을 끌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