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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채용 61년 만에 대수술] 공무원 ‘민간 선발’ 확대 왜

중앙일보 2010.08.13 00:33 종합 4면 지면보기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일 ‘행정고시 특별채용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행정고시 합격자를 줄이고 민간 전문가 공직자를 늘리겠다고 나선 것은 공직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고시파’만으로는 공직의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시 순혈 깨고 ‘고시 → 고위직 보장’ … 기수 따라 자동승진 무한 경쟁 유도 같은 시험으로 뽑혀 독창적 아이디어 부족

고시제도는 1949년 국가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다. 과거제도처럼 인재 채용의 장(場)을 만든 뒤 우수한 인력을 뽑아 쓰겠다는 뜻에서다. 취지는 좋았지만 61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인재를 뽑다 보니 경쟁력이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3급 이상의 고위 공무원단 1500여 명 중 71%가 행정고시 출신이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기수에 따라 햇수만 채우면 승진하는 시스템이 굳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사회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시각·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김동극 행안부 인력개발관은 “같은 책으로 공부하고, 공무원이 된 뒤에는 비슷한 분위기에서 일하면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채용하는 ‘특채’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별로 필요할 때마다 알음알음으로 뽑다 보니 전문가들이 공직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숫자도 많지 않다. 따라서 정부의 민간 전문가 채용 확대 방침은 ‘특채’ 제도를 확대해 공개적으로, 정기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행시 순혈주의를 깨 공직사회의 무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연세대 고시반인 ‘경우회’ 학생들이 12일 서울 캠퍼스 상경대 별관 5층에 마련된 고시반 독서실에서 행정고시 공부를 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방학 중이라 독서실에 빈 자리가 많다. [강정호 인턴기자]
앞으로 정부는 민간 전문가와 5급 공개채용(행정고시) 출신자를 섞어 경쟁체제로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더는 고시 합격생만의 세상으로 두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대학 교육을 정상화하고, 고시 낭인을 줄이겠다는 포석도 있다. 각종 고시와 7·9급(국가직) 공채를 포함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은 21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최종 선발 인원은 2547명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고시학원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수두룩하다. 재수·삼수생도 흔하다. 정부는 고시 책에 파묻혀 공부한 뒤 필기시험을 거쳐 5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그보다는 다양한 경력과 경험이 공직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긴장감 흐르는 공직사회=행정고시 출신이 아닌,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민간 전문가가 공직사회에 늘어나는 것은 공무원들도 수긍한다. 이민우 지식경제부 인사팀장은 “공무원 사회가 공채 위주로 충원되다 보니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며 “신선한 인물을 채용해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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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공직사회 긴장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행안부의 한 사무관은 “기존 체제에서 ‘다른 피’를 가진 사람이 들어오면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채용제도가 바뀌면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두가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윤명 행안부 인사실장은 “지금까지는 고시 기수 중심으로 승진과 인사가 이뤄져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새로운 전문가들이 경쟁 상대로 등장함에 따라 공무원들이 자기 계발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정착하려면=행정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공직사회가 다 같이 변해야 이번 조치가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선우(행정학) 방송통신대 교수는 “전문가들은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은 있지만 조직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이들을 조직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고, 공직사회의 조직문화도 변화해야만 민간 전문가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종섭(행정학) 대전대 교수는 “민간 전문가를 공무원으로 뽑을 때 면접이 중요하다. 면접관을 잘 교육해 이들이 훌륭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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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 우수한 인재들이 상대적으로 대우가 낮은 공직에 얼마나 지원할지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도 있다. 박충근 기획재정부 인사과장은 “민간의 우수한 인재들이 공무원이 받는 봉급과 처우에 얼마나 만족할지 모르겠다”며 “수준 있는 인재는 안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강정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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