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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매미와 포도

중앙일보 2010.08.13 00:29 종합 33면 지면보기
여름의 명물은 매미가 아닌가 싶다. 그들 무리는 온종일 울어댄다. 한 번쯤 뚝 그칠 법도 하지만 쉼 없이 고집불통으로 운다. 그러나 매미가 우는 데에는 그들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들은 교대로 운다. 참매미가 울면 유지매미나 쓰름매미는 울 차례를 기다린다. 그들은 순서 있게 따로 운다. 그래야 짝을 찾고 부르는 소리를 다른 울음소리가 훼방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성충이 되기까지 세 해를 기다려야 하고 여름 하늘 아래 이레를 울다 간다고 하니 울음이 왜 절박한지 짐작이 가기도 한다.



작고한 시인 박용래는 매미 소리를 “원목(原木) 켜는 소리”라고 했다. 베어낸 그대로의 상태인 것이 원목이니 그것을 톱날로 켤 때에는 나무의 향이 물큰물큰할 터, 시인은 아마도 생명이 내는 울음, 그 원음(原音)을 들었을 것이다. 박용래는 또 “누님의 / 반짇고리 / 골무만 한 / 참매미”가 운다고 썼다. 박용래를 일러 문단에서는 ‘우주의 비밀을 푸는 신의 대리인’이라고 불렀지만, 시의 이런 구절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참매미 울음소리 하나를 들으면서도 시인은 매미의 작은 몸통을 생각함과 동시에 바늘에 실을 꿰어 옷을 짓고 꿰매는 어린 누님을 생각한 것이니 여기에는 누님을 바라보는 남동생의 슬픈 시선이 들어 있는 것이다.



쩌렁쩌렁하도록 매미는 울고,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러러 바라보는 하늘은 밑이 쩍쩍 금이 간, 벌건 솥을 뒤집어 놓은 것 같지만 이런 더위 덕에 여름 과일이 익고 있다. 포도가 검붉게 익는 데에는 볕이 강해야 하는 만큼 요사이의 이런 뙤약볕은 더없이 귀한 것이다. 나는 포도원에 가서 포도가 익는 것을 보고 포도가 익는 것을 돕는다. 포도송이를 가만히 만져보고 또 만져보기도 한다. 익어가는 포도송이는 눈웃음을 짓고 또 짓는 것만 같고 사근사근해 보이기까지 한다. 길둥근 포도송이가 이처럼 완성되기까지는 많은 생명들이 손을 보탠 덕이 크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포도송이를 가꾸려면 며칠 동안 밭에 나가 포도알을 솎아내야 한다. 포도알은 장대비가 한 차례 지나가기만 해도 금세 굵어져 포도알들이 서로 한 자리를 두고 다투는 통에 툭 터지고 만다. 해서 포도알과 포도알 사이를 미리 충분히 헐렁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농사가 평년작을 훨씬 웃돌려면 손 여문 농부의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볕과 들바람과 물과 노을과 공기의 손도 얻어야 한다. ‘생김새가 모난 과일은 없다’라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듣긴 했지만, 과일 하나를 둥글게 무르익게 하는 것은 이 모두의 합심이요, 합작인 셈이다. 한 알의 과일이 익는 이치도 이러하니, 과일보다 덜 유순한 사람이 익는 일 또한 이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제 힘으로 모든 일이 원만해졌다고 우쭐거리며 뽐내는 이들이 간혹 있으나 그것은 참으로 교활하면서도 모태(母胎) 없는 양 구는 격이다. 나의 원만과 충일과 환대에는 다른 이들의 도움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 곤충을 대표하는 매미들이 번갈아 우는 그 순차적 진행이나 포도송이의 익음에는 협력적 율동이 있다. 여름에 우리는 이것을 듣고 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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