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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밤마실’

중앙일보 2010.08.13 00:29 Week& 1면 지면보기
경북 청도 운문사는 새벽예불로 유명하다. 오전 3시 요사채에서 경내를 돌아 대웅전으로 향하는 수백여 비구니 스님의 발걸음은 어둠 속에서도 새처럼 가볍다.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여는 발길은 그 자체로 구도의 길이다.



지난 3일, K2익스트림팀 산악인 4명이 서울 서대문구 안산의 바위지대를 오르고 있다. 여름밤 산에 오르면 보석처럼 빛나는 도심의 야경을 만나게 된다.
동굴탐험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최안나(50)씨는 개발되지 않은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한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두려움도 없다. “어둠이 몸에 익숙해질 때 두려움도 차츰 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히말라야 8000m급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은 마지막 정상에 도전하는 날, 항상 한밤중에 등반을 시작한다. 12시쯤부터 여명이 터오기 전까지 서너 시간이 걷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이때는 바람이 잦아들고 별이 총총할 때다. 8000m에 익숙한 산악인들은 이 시간에 ‘무념무상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회사원 정상문(36)씨는 요즘 금요일 퇴근 후, 회사 동료들과 함께 가까운 산을 찾는다. 그는 “한두 시간만 올라가면 서울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한 주의 마무리를 술자리 대신 야간산행으로 하고 나면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밤에 걷는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달빛이 그윽하고 별이 쏟아지는 밤, 혼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걷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한밤중에 하는 등산은 무엇에 비할 바 없이 즐겁다. 특히 도심 근방의 길은 달빛이 없어도 크게 어둡지 않다. 산 능선을 걸을 때는 도심의 네온불빛이 산까지 투영돼 아주 캄캄하지도 않다.



헤드랜턴
더구나 밤에 산에 오르는 야간산행은 여름 한때 반짝 할 수 있다. 겨울은 물론 봄·가을도 예기치 못한 일기변화로 저체온증에 걸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금요일 밤이면 수도권의 산마다 등산장비를 챙겨 모여드는 사람들로 붐빈다. 몇 가지 주의사항만 지킨다면, 야간산행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도심의 심야 레저가 된다.



코오롱등산학교 박승기(55) 강사는 “되도록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피하라”고 권한다. 밤이 되면 바위 표면이 미끄럽기 때문에 돌이 많은 산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야간산행객들이 많이 찾는 관악산보다는 청계산이나 검단산, 남한산성 등 흙길 등산로를 택하는 게 좋다는 것. 또 밤길을 걸을 때 몸이 더 많이 긴장한다는 것도 알아둬야 한다. 그래서 돌아가더라도 완만한 길로 가야 하며, 낮보다 천천히 걸어야 하고, 물과 비상식량도 넉넉하게 챙겨야 한다.  



글=김영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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