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론] 세계유산 등재, ‘숫자 늘리기’ 차원 넘어서야

중앙일보 2010.08.13 00:28 종합 33면 지면보기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지난해 조선왕릉이 등재된 후 연이어 성공함으로써 이제 한국은 열 곳의 세계문화유산 보유국이 됐다. 이를 계기로 전국 지자체들이 저마다 자기 지역의 문화재를 등재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충남 부여, 경남 창녕 우포늪, 지리산권 사찰군, 전남 순천 낙안읍성, 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대 등이다. 중국이 39건, 일본이 14건이니 우리도 당연히 등재를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문건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준은 독특하거나 희귀하거나 아주 오래된 유산,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 역사적 중요성, 문화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 등이다. 또 잘 보존돼왔고 앞으로도 관리가 잘 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요건들은 다분히 정성적이며 따라서 실사단이 와서 보고 듣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하회·양동마을의 역사와 내력은 지세(地勢)와 일치한다. 하회마을은 산을 등지고 있으면서도 낙동강이 휘돌아 마을을 감싸 안은 모습에 모성(母性)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마찬가지로 양동마을도 작은 골짜기가 여럿 나란히 있는 물(勿)자형 구조로 골짜기를 따라 가옥들이 앉혀져 있는 품이 편안하기 이를 데 없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의 평안한 모습이라고 할까.



그래서 풍수학자들은 일찍이 ‘삼남의 길지’ ‘삼현지지(三賢之地)’라 불러 걸출한 인물이 날 만한 곳이라 규정한 것이다. 양동 서백당(書百堂)의 산실(産室)은 시집간 딸이 해산하러 와도 내주지 않는다지 않는가. 어미의 가슴과 자궁처럼 휘돌아 감은 물과 땅의 형상이 인물 출생의 이야기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하회마을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는데, 여기에는 비옥한 진흙을 모태로 아름다운 꽃을 탄생시킨다는 모성적 의미가 숨어 있다. 이러고 보면 지리적 정보에 사회문화적 정보를 겹쳐 장소의 의미를 창출해내는 풍수지리학이야말로 공간 스토리텔링의 원조라 할 만하다. 이런 모성적 경관에 맞는 모성적 이야기, 역시 그런 이미지에 연결되는 하회탈의 넉넉한 웃음, 헛제삿밥, 소주, 유과 같은 유교 제사문화의 담백한 맛들이 어우러져 총체적인 매력을 만들어냈고 이런 분위기가 심사위원들에게 감동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 다른 지역들은 어떠한가. 최근 ‘강변 스토리텔링’ 연구용역 때문에 전국 곳곳을 답사한 나의 소감으로는 많이 미흡했다. 예를 들어 부여의 낙화암은 도저히 삼천 궁녀들의 죽음을 떠올릴 수 없는 곳이었다. 뱃전에 울리는 ‘백마강 달밤’도 공허했다. 원래 ‘죽음’의 물질적 상상력을 드러내는 물은 어둡고 물결치고 깊어야 한다. 저승사자가 어두운 물가에 배를 대어놓고 죽음의 저편으로 데려갈 영혼을 기다리는 이야기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 그러나 좁고 얕은 데다 부유물로 인해 누렇기만 한 백마강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없었다. 그나마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겹쳐져 수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그 가요조차 일본과 대등한 외교를 펴고 있는 지금, 사람들에게 장소의 의미로 와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주·부여는 이제 ‘패망’의 스토리텔링으로는 승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일본 고대문화의 원류이며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문화에 기여했던 백제의 위상으로서의 장소성(場所性)을 각인시키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해 용역을 담당했던 포항의 ‘연오랑 세오녀 테마파크’의 서사 전략과도 일치한다. 고대의 한·일 교류 설화를 현재의 한·일 경제·문화 교류의 교두보로서 포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활용하는 방식은 벤치마킹할 만하다.



이제 좀 더 전략적이고 계획적이며 총체적으로 우리 국토의 장소성을 점검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하나 더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 사실 하나로 환호할 일이 아니다. 그 성취가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나아가 한국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계획해 성취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최혜실 경희대교수·국어국문학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