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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전자책 도둑 ‘작신’들 왜 안 잡나

중앙일보 2010.08.13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전화를 통해 전해 온 소설가 ‘금강’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장인 그는 1981년 무협소설 ‘금검경혼’으로 데뷔한 30년 경력의 무협소설 작가다. 최근 마치 무협소설 제목 같은 ‘작신 잡기’ 캠페인을 시작한 그는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대중문학의 미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작신’은 신작 무협·판타지 소설을 컴퓨터 스캔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부류다. ‘신작’을 거꾸로 쓴 말이다. 지난 2년간 1000권 넘는 책을 파일 공유 사이트에 올린 것으로 협회는 추산했다. 신작이 나오기 무섭게 인터넷에서 거의 공짜(단돈 10원)로 공개해 버리니 아무도 책이나 e북(전자책)을 돈 내고 사려 하지 않는다. 문학작가협회 회원들이 더 우울한 것은 제2, 제3의 작신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은 나름의 철학까지 갖췄다. ‘작신님을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며 인터넷 철학인 나눔과 공유·개방을 주장하는 것이다. 웹 2.0 정신이 기묘하게 탈색되고 있다. 1991년 새로운 PC 운영체제(OS)인 리눅스를 개발해 누구나 공짜로 쓰도록 개방한 리누스 토발즈는 웹 2.0 정신의 개척자다. 리눅스는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OS 독점체제를 깨뜨렸다.



하지만 ‘작신’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작가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일군 작품을 공개해 거의 공짜로 퍼뜨리는 것은 웹 2.0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생계를 꾸린다. 몇 달 동안 밤잠을 줄여 쓴 책이 재미가 없어 안 팔리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공짜로 인터넷에 올라가 안 팔린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기술 개발 경쟁을 통해 대박을 터뜨리는 특허권을 확보하듯이, 작가들도 작품 하나로 노력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롤링 같은 성공담은 기대할 수 없다. e북 등 즐길 콘텐트가 없다면 태블릿PC나 스마트폰을 통한 무선인터넷 산업도 발전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지적재산권 인식은 매우 낮다. 영화·음반·게임·소프트웨어(SW) 등을 복제해 쓰면서도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규제당국도 문제다. 수많은 대중소설 작가가 이런 문제를 사법당국에 호소했지만 기각되곤 했다. 책도둑도 도둑이다.



박혜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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