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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밀려 하는 상생엔 감동이 없다

중앙일보 2010.08.13 00:27 종합 34면 지면보기
“The business of business is business.”



아침부터 웬 이상한 꼬부랑 말이냐고 마땅찮아 하시는 분도 계시겠다. 하지만 이는 ‘기업(business)이 하는 일(business)은 돈 버는 것(business)’이란 뜻의 ‘정통 영어(?)’다. 보수주의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1970년 언론 기고에서 이 표현을 썼다. 프리드먼은 기업이 할 일은 사회가 아니라 주주에 책임을 지는 것이며 부정이나 거짓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이익을 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게 기업의 사명이라고 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친서민과 대·중소기업 상생이 최고의 화두인 요즘, 이 같은 프리드먼의 시각은 시장원리만을 지고지선(至高至善)의 가치로 여기는 ‘시장 탈레반’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래도 이 말을 굳이 꺼내는 이유는 이익을 내는 게 사회적 책임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그 기본임을 명토 박아 두기 위해서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허무하게 쓰러졌던 대기업들, 그리고 이런 부실기업에 물려 자본을 거덜낸 금융회사들…. 그 탓에 국민세금인 공적자금이 뭉텅이로 들어갔다. 이에 비하면 위기를 이겨내고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 현대·기아차, LG, 포스코는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



돈 잘 버는 게 기업의 기본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기업 덩치가 커진 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는 힘이 빠졌다. 반면 종업원·협력회사·소비자·지역사회 같은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만족도와 이들이 느끼는 감동이 기업 실적을 좌우하는 새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전략적 윤리경영의 발견』(2005년, 이원재 저)은 사회 공동의 선(善)을 중시하는 사회적 책임과 기업 이익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윤리경영이 돈도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책은 윤리경영을 단순한 자선행위가 아니라 기업 전략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회책임경영을 잘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소외된 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이익을 내기도 하고 사회가 당면한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 나서기도 한단다.



재계가 정부의 상생 요청에 발 빠르게 선물보따리를 풀고 있다. 정부가 으르면 이를 대놓고 무시할 만한 강심장을 가진 대기업은 없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꼭 이렇게 ‘판’이 벌어져야 움직이는 듯한 모양새를 연출하느냐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귀중한 회사의 자원을 제대로 ‘전략적으로’ 쓰고 있는지도 좀 걱정이 된다. 총수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뭉칫돈을 사회에 내놓거나 ‘그러면 재미없다’는 정부의 으름장에 앞다퉈 상생을 외치는 모습은 매우 한국적인 ‘대한늬우스’의 한 장면이다. 정부가 아무리 ‘판’을 세게 벌여도 “그 기업 좀 그만 들볶아라”고 임직원과 협력회사가, 소비자와 지역주민이 머리띠를 두르고 정부가 무리하게 벌이는 ‘선의의 관치’를 나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밀려서 하는 상생엔 감동이 없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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