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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의 현장] 친서민, 이벤트 말고 정책으로 말하라

중앙일보 2010.08.13 00:27 경제 4면 지면보기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겠나.”



“유임을 끝까지 고사했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이임사를 통해 남긴 쓴소리에 재계와 금융계 인사들이 보인 반응들이다. “속이 시원했다”는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친서민’ 도그마에 빠진 관료들의 충성 경쟁만 요란할 텐데, 정말 걱정”이란 탄식도 흘러나왔다.



정 전 총리는 11일 이임사를 통해 정부가 친서민 과제를 추진하면서 나타난 ‘시장원리의 무시’와 ‘절차적 정당성의 망각’, 그리고 ‘관치의 유혹’을 질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를 의식한 듯, 12일 “정부가 시장경제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메아리는 듣기 힘들었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의 양극화와 이에 따른 서민의 고통을 치유할 대책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책이 시장원리를 무시하며 이벤트 식으로 추진되는 게 문제다. 일회성·시혜성 대책들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부작용까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소금융과 햇살론, 희망홀씨 등 관 주도 서민대출의 사례를 보자. 정부는 이를 통해 좀 재미를 봤다 싶었는지, 대출 규모를 확대하고 비슷한 상품을 더 내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대출 기회를 늘려주는 것과 아울러 꼭 병행해야 할 게 있다. 뭔가 사업을 도모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규제 완화를 통한 서비스업 활성화 등 내수 살리기 정책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비스업 창업이 활기를 띠면 그 주변에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돈벌이 기회도 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서민들이 꿔간 돈은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금융채무 불이행자만 다시 늘어날 공산이 크다.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문제도 그렇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정부가 압박하는 방식으론 한계가 분명하다.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법과 제도를 고쳐 공정한 ‘게임의 룰’이 작동하도록 해주면 될 일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은 기업 스스로 필요성을 절감해 움직여야 지속될 수 있다.



정부는 정책으로 말하고 실천하면 된다. 정책의 큰 틀과 비전을 통해 시장을 움직이게 할 힘이 있다. 그런데 집권 반환점을 돌고 있는 MB 정부의 경제정책 청사진이 뭔지 알 수가 없다. ‘친서민’은 정치구호에 가깝지 정책 청사진은 아니다. MB 정부의 상징적 경제 청사진이라면 ‘747’(7% 성장, 4만 달러 국민소득, 7대 경제강국)이 있었다. 이젠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상황에 도달했지만, 그것이 폐기된 것인지 어떤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747’에 도달할 정책 수단의 하나로 추진됐던 법인세 감세정책도 그렇다. 세금을 깎아주면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법인세를 적절히 거둬 중소기업이나 서민층 지원에 직접 돌리는 것도 방법이다. 법인세 감세의 계속 추진 여부에 대해 정부는 역시 꿀 먹은 벙어리다. 고환율 정책도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측면이 있다. 고환율로 수출 대기업들의 돈벌이가 실력 이상으로 증폭된 반면 국민 대중은 석유류 등 수입 원자재 값을 비싸게 치르고 있다. 환율이 적절히 떨어지도록 유도해도 서민경제의 주름이 좀 펴질 듯하지만,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정부는 이제 이벤트를 접고 예측 가능한 정책으로 친서민을 말하길 기대해 본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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