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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앓고 있는 원창연씨

중앙일보 2010.08.13 00:21 1면 지면보기
매일 누워 천정만 바라봐야하는 외로운 사람이 있다. 순식간에 불어 닥친 시련.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불치의 병을 얻어 5년간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살았던 그. 하지만 지금은 나보다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인생을 살고 있다. “보잘것 없는 사람도 분명 남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그를 만났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 희망 전도사로 나서다

글=강태우 기자 ktw76@joongang.co.kr

사진=조영회 기자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원창연씨. 그에게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하나와 컴퓨터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 [조영회 기자]


평범한 가정에 불어닥친 시련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원창연(47·천안시 두정동)씨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시련이 찾아 왔다. 천안의 한 자동차부품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지난 2002년 공장 기계를 수리하던 중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그만 두고 오랜 기간 병원생활을 했다.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수치스럽고 불편했다. 더 큰 불행이 들이닥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비관적 시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봤다. 가장으로서 일할 능력이 상실됐다는 자괴감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절망에 빠져 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40년간 평범한 인생을 살았으니 너도 이제 좀 불편한 생활도 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자”며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하지만 불과 3년 뒤 더 큰 시련이 다시 왔다. 팔과 다리에 힘이 빠져 병원을 찾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평균 생존율 5년.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하는 질환으로 병이 진행되면서 결국 호흡근 마비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1년에 10만명당 1~2명에게서 이 병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하게 지내던 같은 처지의 환자 3명 가운데 2명이 벌써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스스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치료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 다니며 먹고 굿도 해봤다. 그래도 희망의 빛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장애인 정보지에 희망의 글 연재



2년 전만해도 바깥 활동이 가능했던 그가 1년 전부터는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지금은 24시간 침대에서 생활한다. 집에 있는 일이 그의 일상이 됐다.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이라며 스스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삶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역 장애인정보지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2년 전 누구에게든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에 찾은 지역 장애인단체 ㈔한빛회와 인연을 맺은 뒤로 격려와 위로를 받아야 할 그가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희망 전도사로 변했다.



매달 발간되는 천안지역 장애인종합정보지 ‘한빛소리’에 ‘원창연의 이판사판’이라는 코너를 연재하면서 팬까지 생겼다.



‘외출 한 번 하기도 힘든 몸이지만 사람과 어울려 산다는 건 언제나 행복하다’는 내용의 글에 많은 독자와 회원들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 힘을 얻은 회원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보람과 자신감을 얻었다. 그가 남긴 글에는 ‘행복’ ‘감사’ ‘긍정’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 의욕적인 열정가’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한빛회 박광순 회장은 “외롭고 힘든 길을 가지만 원망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자체를 행복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며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경험이고 그것이 죽음으로 가는 슬픈 경험일 수 있음에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희망을 얘기하는 모습에 많은 독자와 회원들이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죽음은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일



천안의 낮 최고 기온이 34.9도까지 치솟은 지난 9일. 올 여름 들어 가장 무더운 날.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찡그려지는 숨 막히는 폭염 속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밝았다.



에어컨이 없는 집. 쉴새 없이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오히려 더위를 반기는 표정이었다.



집에서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막막할 것 같지만 그렇게 외롭거나 따분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고 했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언제든 세상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다.



TV를 통해 여러 나라를 구경하며 여행한다. 야구와 축구 등 스포츠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인터넷을 통해 각종 생활정보를 꼼꼼히 챙겨 봤다가 자신을 찾아온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유용한 소재로 활용한다. 그는 단지 몸이 불편했을 뿐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글을 쓰는 일도 이제는 쉽지 않다. 손가락 하나로 간신히 마우스를 움직여 한자한자 써 내려가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범한 삶을 살아 온 것처럼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주변에 항상 가까이 있는 평범한 일이다. 죽음을 기쁨으로 맞이 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며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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