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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서민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2010.08.13 00:20 경제 2면 지면보기
서민, 서민…. 너도나도 외치고 있다. 그 선두는 대통령이다. 서민 프렌들리, 친서민 정책이 아니면 명함 내밀기 어렵게 됐다. 친서민 바람에 캐피털사 금리가 단번에 떨어지고, 풀리는가 했던 주택담보대출 규제가 다시 묶였다. 중소기업의 납품가를 들여다보는 정부의 눈매도 매서워졌다. 하지만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들조차 ‘서민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한다. 개념이 정의돼 있는 것도 아니고, 법률에 규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이 애매하면 효과적인 정책이 어렵다. 청년취업, 물가 관리, 세제개편 등 갖가지 정책에 친서민을 담아야 하는 공무원들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과연 누가 서민인가.


누가 서민인지도 분명치 않은데, 친서민 정책 쏟아지니 …

지난달 30일 전격적으로 전기와 가스 요금을 올린 정부는 서민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서민에게 추가 부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들에 대한 요금 할인율을 높인 것이다. 이때 정부가 말한 서민은 누구일까.



지식경제부는 이런 혜택을 보는 가구가 101만 가구에 달한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기초수급대상자)와 차상위 계층, 그리고 중증장애인(1~3급)을 포함한 것이다. 전 국민의 5%쯤 된다. 지경부는 이들을 ‘사회취약 계층’이라 부르기도 했다. 또 이 가운데 차상위 계층을 제외한 사람들을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 했다.





기초수급대상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것으로 소득(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가구다. 3인 가구라면 올해 최저생계비는 111만919원이다. 차상위 계층은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00~120%인 사람들이다.



통계적으로 소득이 중간 이하를 서민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통계청 기준으로 도시 가구의 중간 소득(올해 기준 월 302만2000원) 이하 가구로 정의하는 방식이다. 금융위원회는 전국 월평균 가구소득에 맞춰 4인 가구 기준 391만원, 1년으로 환산해 4692만원 이상을 고소득자로 분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보다 소득이 낮은 계층은 서민이라 볼 수 있는 잣대다. 이런 접근이라면 나름 과학적이다.



최근 전라북도는 나름대로 개념 정립을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소득을 10단계로 나눠 하위 3~6단계에 있는 계층을 포괄적인 ‘서민(중산층 포함)’으로 규정한 것. 이 기준에 따르면 전북의 서민은 전체 세대의 23.4%쯤 된다. 그렇지만 이 범주는 청와대나 중앙부처가 그리고 있는 서민보다는 오히려 중산층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흔히 정부의 3대 친서민 사업이라 불리는 보금자리주택 건설, 든든학자금 대출, 미소금융도 수혜자는 모두 서민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이다. 보금자리주택은 청약저축(혹은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무주택자다. 집이 없어야 서민으로 취급된다. 보금자리주택 정책에선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서민 대접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집을 보유한 사람이 서민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많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백성운 한나라당 의원은 얼마 전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침체돼 서민들이 집을 팔거나 새 집에 입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민이라는 개념을 자기 주장에 끼워 맞춰 편리하게 사용한 셈이다.



든든학자금 대출은 소득 수준을, 미소금융이나 햇살론은 신용등급과 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같은 소득 기준이라도 제각각이다. 소형주택 월세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연 3000만원 이하의 급여 소득자, 햇살론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2000만원 이하여야 한다.



정부가 서민들을 위해 값을 올리는 걸 싫어하는 ‘서민의 술’ 소주는 어떤가. 술 마시는 사람이라면 서민, 부자, 가리지 않고 모두 마신다. 쌀과 같은 ‘서민 생필품’이란 것도 전 국민이 먹고 쓰는 것들이다.



서민은 특정 시설이나 장소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은 CNG 버스 폭발사고와 관련해 “버스 타는 사람들이 다 서민들인데,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일”이라며 철저한 안전점검을 주문했다. 버스를 타면 모두 서민이라고 본 거다.



흔히 버스나 지하철은 대중교통 수단으로 불린다. 불특정 다수의 집합체를 뜻하는 ‘대중(大衆·mass)’은 모든 국민과 외국인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민과는 다르다.



서민이라는 개념은 사람뿐 아니라 사업장이나 기업 등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재래시장, 중소기업이 대표적이다. 서민들이 주로 일하는 곳이란 이유에서다. 하지만 실제론 중소기업 근로자나 재래시장 상인이 반드시 서민이라는 보장이나 근거는 없다.



‘서민 대책’은 역대 정부에서 수없이 다뤄졌으나 정작 ‘서민’이란 단어가 들어간 법률은 하나도 없다. 다만 10여 개 법령의 본문에 서민이란 단어가 간간이 보인다. 대통령령인 ‘금융위원회와 그 소속기관 직제’에 ‘서민금융’ 업무를 다룬다고 돼 있다. 농어촌특별세법에 ‘서민주택’이란 용어가 들어 있다. 여기서 ‘서민주택’은 건축법시행령의 ‘국민주택’과 거의 같은 개념이다. 지역신용보증재단법 제1조는 ‘담보력이 부족한 지역 내 소기업·소상공인 등과 개인’을 지원해 서민의 복리증진에 이바지한다고 규정해 어렴풋이나마 서민의 개념을 짐작하게 한다.



결국 친서민 정책은 서민 개념부터 오락가락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것이 서민이다. 800만 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했다가 1000만 저소득자로, 다시 1200만 저신용자로 대상이 고무줄처럼 변한다. 김인영 한림대 교수는 지난 4일 한경연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서민은 개념적 정의가 지극히 자의적이며 불분명한 용어”라고 지적했다.






서민이란



사대부·관리 아닌 평민 … 신분사회 용어



‘서민금융회사 창설, 전당업체에 타격이라고 경성당업자 반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7일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조선총독부가 서민금융회사를 설립하려 하자 값나가는 물건을 잡고 돈을 빌려주는 전당포 주인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의 ‘서민금융팀’처럼 지금도 사용되는 ‘서민금융’이란 말은 일제 강점기때 나온 것이다.



서민(庶民)이란 말 자체는 오래전부터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서민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서경』을 인용한 문장에 많이 등장한다. 사대부와 관직에 있는 자를 제외한 평민들을 가리키던 말이다. 사회계급이나 신분질서를 상정한 것으로 수직적 위계구조에서 하층에 자리 잡고 있는 백성이란 뉘앙스가 강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지의 일반 백성’에 가까운 뜻으로 쓰였다.



서민은 사전적으로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이자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건국 이후 역대 정부도 서민이란 말을 애용했다. 특권층·부유층·지도층과 대비되는 일반 국민을 지칭한 것이다. 신분제가 무너진 현대국가는 국민적 통합을 중시한다. 따라서 정부가 권력과 부를 가지지 못한 국민을 따로 서민이라 부르고, 정책의 대상으로까지 삼는 것 자체가 신분사회를 배경으로 한 이분법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허귀식 기자



허귀식·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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