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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속 그 이야기 <5> 강원도 정선·영월 운탄도로

중앙일보 2010.08.13 00:08 Week& 4면 지면보기
강원도에 가면 운탄도로라는 이름의 길이 있다. 올레길·둘레길·나들길·마실길 등등 입안을 감도는 달콤한 이름의 길을 생각하면, 참으로 멋대가리 없는 이름이다.


꽃에 취해 걷다 문득 고개 드니, 저 파란 하늘

하나 걷기여행을 나서며 운탄도로를 빼놓을 수는 없다. 길에 쟁여져 있는 사연만 보자면 운탄도로는 전국의 어느 길보다 파란만장하다.



게다가 8월의 운탄도로는, 길섶마다 피어 있는 온갖 종류의 야생화로 풍성하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길 정보



week&은 하이원리조트 폭포주차장을 출발해 화절령까지 올라간 뒤 도롱이연못을 둘러봤다. 왕복 8㎞ 거리로 여기까지가 운탄도로다. 화절령에서 회귀하지 않고 산죽길을 따라 하이원리조트 슬로프 정상에 있는 마운틴탑까지 왕복 2㎞ 구간을 더 갔다 왔다. 이 길은 운탄도로가 아니다. 그냥 숲길이다. 키 작은 산죽이 늘어선 길은, 그늘이 짙어 햇빛은 피할 수 있지만 경사가 제법 있어 산행에 가까웠다. 운탄도로는 5월부터 9월까지가 좋다. 봄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여름과 가을엔 야생화가 종류를 바꿔가며 피어난다. 하이원리조트(www.high1.com)에 가면 하늘길 코스 지도를 구할 수 있다. 걷기여행 전문 승우여행사(www.swtour.co.kr)가 8월 매주 목·토·일요일 백운산 하늘길을 다녀오는 당일 여정 상품을 판매한다. 4만1000원. 02-720-8311.



# 운탄도로에서 하늘길로



운탄도로를 걷다 보면 흉물스러운 폐가를 쉬 만난다. 옛날 광부들의 사택이다.
운탄도로는 강원도 깊은 산속에 꼭꼭 숨어 있다.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정선군과 영월군에 주로 속하고, 산줄기로 말하면 두위기맥이고, 산봉우리로 말하면 백운산과 두위봉 일대다. 두위기맥 산줄기의 7부 능선을 따라 단단히 다진 도로가 시원스레 나 있는데 이 길이 운탄도로다. 깊고도 높은 산속에 훤한 신작로를 뚫은 단 하나의 이유는 석탄이었다. 운탄도로는 강원도가 석탄으로 먹고살 때 석탄을 나르기 위해 건설한 도로다. 하여 운탄도로는 탄광을 향해야 하므로 산을 후벼 파듯이 나 있고, 석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달려야 했으므로 평평하고 널찍하다.



운탄도로는 1960∼70년대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강원도 탄광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다. 운탄도로의 길이는 약 100㎞로 알려져 있다. 정선·영월 일대 탄광은 물론, 태백과 삼척의 탄광에도 운탄도로가 있었다. 그래서 운탄도로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그래도 여느 길처럼 운탄도로도 시작과 끝은 분명하다. 모든 운탄도로는 탄광에서 시작해 태백선 기차역에서 끝난다.



1989년 석탄 합리화 정책이 시행됐다. 탄광이 문을 닫았고 탄광촌에 빈집이 늘었다. 운탄도로의 수명도 함께 기울었다. 운탄도로에는 더 이상 탄차가 달리지 않았다. 워낙 단단히 다져 놓은 바람에 원래 모습이었던 산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강원도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볼썽사나운 흉터만 남았다.



2000년 백운산 자락 아래 강원랜드(지금의 하이원리조트)가 들어섰다. 강원랜드는 카지노만 세운 게 아니었다. 강원랜드는 백운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운탄도로를 하늘길이라 이름 붙이고 탐방로를 조성했다. 옛 운탄도로는 아직도 길의 모습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하여 탐방로를 조성하는 데 딱히 공들일 것도 없었다. 곳곳에 이정표 몇 개만 세우면 될 일이었다. 마침내 운탄도로는 사람이 걷는 길이 됐다.



# 화절령 꽃놀이



운탄도로는 길고도 복잡하다. 아무 길이나 접어들었다간 되레 방향을 잃을 수도 있다. 도보여행지로 운탄도로를 선택한다면, 하이원리조트가 조성한 하늘길이 적합하다. 이정표만 따라서 걸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늘길에도 길이와 난이도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개중에서 왕복 10㎞쯤 되는 코스를 골랐다. 이 코스를 고른 건, 코스 중간에 있는 화절령 때문이다. 하이원리조트 입구 폭포주차장 오른편에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나타나는 고개다.



화절령(花絶嶺). 우리 말로 풀어 쓰면 꽃꺾기 고개다. 누가 맨 처음 이 낭만적인 이름을 붙였을까. 화절령은 먼 옛날부터 영월에서 정선을 질러가는 길목에 있었다. 이 고개에 봄마다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했다. 저 먼 옛날 이 고개로 땔감을 구하러 나섰던 동네 총각들이 땔감 구하다 말고 꽃을 꺾고 놀았단다. 누가 더 많이 꽃을 꺾었나 땔감 한 단을 걸고 내기도 했단다. 그때부터 이 고개는 화절령이라 불렸고, 그때나 지금이나 고개엔 온갖 종류의 꽃이 앞다퉈 피어난다.



화절령은 고개라기보다 고갯마루다. 능선 위에 꼭짓점을 찍지 않고 산마루 위에 널따란 평지를 이루고 있어서다. 이 고원을 가운데 두고 세 갈래 길이 나뉜다. 하나는 백운산을 거쳐 함백산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두위봉으로 이어지며, 나머지 하나는 영월군 중동으로 넘어간다. 화절령 위에는 오로지 파란 하늘이다. 이 고갯길을 하늘길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다. 하여 화절령에 꽃놀이를 다녀왔다는 문장과 운탄도로를 걸었다는 문장과 하늘길을 가봤다는 문장은 모두 같은 문장이다.



화절령 삼거리에서 숲으로 들어가면 작은 연못이 나타난다. 도롱이연못. 도롱뇽이 사는 연못이라 도롱이연못이다. 도롱이연못은 1970년대 지반 침하로 갱도가 주저앉으며 자연스레 형성된 연못이다. 이 작은 연못에도 서글픈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이틀이 멀다 하고 탄광사고가 터지던 시절, 광부의 아내들이 이 연못에 올라와 탄일 나간 남편의 무탈을 빌었다. 도롱뇽이 보이면 남편이 무사하다고 광부의 아내들은 믿었다.



고원의 깊은 숲 속에 숨어 있다시피 들어앉은 도롱이연못은 원시의 풍경처럼 이국적이다. 혹여 도롱뇽을 볼 수 있을까 한참을 앉아있다 일어섰다. 아직도 도롱뇽은 봄마다 이 못에서 알을 낳는다. 사람은 떠났지만 도롱뇽은 남아있다. 원래 자연이란 늘 그렇게 남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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