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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김태호라는 메기

중앙일보 2010.08.08 20:48 종합 30면 지면보기
수족관에 미꾸라지만 넣어두면 며칠 못 가 미꾸라지들이 죽거나 비실비실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메기를 한 마리 집어 넣으면 몇 마리는 잡아 먹히지만 나머지는 더욱 팔팔하게 살아 있다고 한다. ‘48세 김태호 총리’는 여권의 차기 수족관에 던져진 한 마리의 메기다. 앞으로 국회 인준과 총리직 수행을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총리 후보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 앞에 메기가 나타난 것이다.



‘메기 충격요법’은 집권자에게 쉽고도 효과적인 권력 관리법이다. 메기로 인해 권력의 긴장감은 최고도로 유지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집권자가 가장 튼튼하고 우호적인 미꾸라지나 아니면 메기 자체를 후계로 삼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 정치사에 제대로 된 메기 요법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 자신이 메기였다. 그는 스스로 메기가 되어 미꾸라지들을 경쟁시키고 서로 견제하게 만들었다. 이후락 정보부장과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밀착하자 박종규 경호실장과 강창성 보안사령관을 활용해 유착관계를 파괴했다. 비극적인 선택이었지만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정보부장을 경쟁시키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살아남은 대(大) 미꾸라지는 김종필(JP) 총리였다. 박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는 1984년 JP에게 권력을 물려주겠다고 말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은 노신영·장세동 안기부장으로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긴장시켰다. 그렇지만 이 정권에서도 국민을 놀라게 한 새로운 메기는 없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야당지도자 김영삼(YS)을 메기로 영입했다. 고집스러운 메기 YS는 기득권자 박태준·이종찬·박철언을 잡아먹고 용으로 승천했다. 하지만 YS 자신은 정작 메기 요법에 별로 소득이 없었다. 메기 요법이 성공하려면 메기가 집권자에게 충성스러워야 한다. 국정(國政) 전체로 보자면 이회창 총리는 신선한 메기였다. 그러나 YS와 이회창은 혈투를 벌였고 메기 요법은 정권 승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김대중 정권의 이인제에게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메기였다. 이인제는 생존력 부족으로 메기의 습격을 이겨내지 못했다. 한화갑 등 DJ 후계를 꿈꾸던 이들도 결국 메기에게 당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권은 많은 것이 얽혀버렸다. 한나라당이라는 고래와 싸우기 위해선 신선하고 강력한 메기가 필요했는데 노 대통령은 별반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해찬 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었지만 모두 메기가 되기에는 선도(鮮度)가 부족했다. 손학규 경기도 지사는 외래종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김태호란 메기는 수족관의 긴장감을 높일 것이다. 친이(親李)계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주자들은 경쟁할 것이다. 이재오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활동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주자들 간 과감한 연대(連帶) 구상도 등장할 것이다. 대권주자 지지도 1위 박근혜 전 대표의 차기 환경도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메기에게 자극 받아 지도자의 능력을 더욱 키우면 그는 메기 요법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여권의 메기는 야권의 수족관도 자극할 것이다. 민주당은 여권의 메기 요법을 편안하게 들여다만 보고 있을 여유가 없다. 메기의 영입과 세대교체에 관한 논쟁에 불이 붙어야 한다.



여권의 차기 구도라는 차원을 넘어 나라를 위해서도 김태호란 메기 요법은 성공하는 게 좋다. 오바마(49) 미국 대통령이나 데이비드 캐머런(44) 영국 총리처럼 한국에서도 40대의 젊은 총리가 등장했다. 그런데 그 카드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고 부실한 작품으로 끝나버리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김태호, 그는 메기의 역할을 끝내고 자신이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大) 미꾸라지로 변신할 수 있다. 아니면 실패한 메기가 되어 메기 매운탕의 재료로 끝날 수도 있다. 이 운명은 전적으로 자신이 하는 것에 달려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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