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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흔드는 바리톤 색소폰의 촉촉함

중앙선데이 2010.08.08 02:22 178호 5면 지면보기
1 제리 멀리건의 또 다른 명반 ‘What Is There to Say?’(1959년)에 실린 녹음 장면. 이 명인들은 ‘Night Lights’ 앨범에서도 연주했다. 왼쪽부터 아트 파머(트럼펫), 제리 멀리건(바리톤 색소폰), 데이브 베일리(드럼), 빌 크로(베이스)다. 멀리건은 동시대의 같은 바리톤 색소포니스트, 이를테면 빵빵하게 부는 데도 우아한 서지 챌로프, 야성미 넘치는 프레이즈의 페퍼 애덤스와는 톤의 질감이 무척 달랐다.
“난 어쩐지… 도시의 불빛이 더 좋더라, 전원의 반딧불보다 말이야.”
아주 오래 전, 늦은 밤 아내한테 귀엣말로 속삭인 적이 있다. 무얼 불러도 근사한 싱어·송라이터, 보즈 스캑스(Boz Scaggs)의 화이트 솔 명반 ‘Silk Degrees’(1976년)를 척 틀어놓고서. 왜냐하면 ‘Lowdown’ ‘We’re All Alone’ 같은 실크보다 보드라운 노래들, 정말 좋아서다. 무엇보다 도회지의 휘황한 야경이 절로 그려져 좋았다. 맨해튼이 내다보이는 저택 통유리 창가 소파에 몸을 묻고 명멸하는 불빛을 느긋하게 즐기는 사내라도 된 기분이었으니까. 비록 거기엔 꿈틀거리는 토르소의 밤이랄까, 흥건한 관능적 판타지 같은 건 별로 없지만.

박진열 기자의 음악과 '음락' 사이-제리 멀리건 ‘Night Lights’ 앨범(1963)


“인공미가 그렇게 좋아? 참 멋대가리 없는 인간이야.”
근데도 아내는 뜨악한 표정으로 내게 핀잔을 날렸다. 졸지에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멋대가리 결핍형 인간이 됐다. 비장의 카드,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1927~96)의 앨범 ‘Night Lights’(63년)를 꺼내 들려줬다. 그러고 나서야 머쓱한 분위기는 달달한 무드로 바뀌었다.

2 ‘나이트 라이츠’ 앨범 재킷 커버(63년).
군말이 좀 길어졌다.
난장 같은 대도시의 깊고 푸른 밤, 그 풍경과 썩 잘 어울리는 재즈 음반이라면 바리톤 색소폰 주자인 제리 멀리건의 ‘나이트 라이츠’가 먼저 떠오른다. 아트 파머의 솜사탕 같은 트럼펫, 밥 브룩메이어의 아련한 트롬본, 그리고 짐 홀의 농밀한 기타 현의 놀림 등이 어우러져 차분하게 스윙한 섹스텟(6중주단) 연주다. 피아노가 빠진 편성이다.

빅밴드 관악기 주자처럼 리드(reed)가 찢어져라 불어대는 호쾌함, 이 앨범엔 물론 없다. 마치 링 위에서 속사포 잽을 날리는 복서의 민첩한 풋워크 같은 현란함과도 거리가 한참 멀다. 그냥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것 같지만 그 담백한 중저음 블로윙에는 온갖 디테일한 미감들이 숨쉬고 있다. 소음 잦아든 한밤의 도심, 세월의 먼지를 씻어내는 비, 그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푸르스름하게 빛나듯 첫 곡 ‘Night Lights’가 아롱진다(이 곡에서만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멀리건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내가 아끼는 곡은 4번 트랙 ‘Prelude in E minor’다. 쇼팽의 전주곡 E단조를 멀리건이 보사노바 리듬으로 편곡한 건데 그 내밀한 혼의 숨결은 언제 들어도 내 마음을 쏙 훔쳐간다. 덩치 큰 바리톤 색소폰을 손에 쥔 채 묵묵하게 물기 어린 플레이를 펼쳐내는 그다. 멀리건이 멀리건다운 이유, 이 앨범은 우아한 서정으로 들려준다.

그건 그렇고, 혹 기억하시는지. 이 땅에 재즈 열풍이 막 불던 94년, 신데렐라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차인표·신애라 주연)를. 그때 참 반가웠다. 이태원 ‘올 댓 재즈’ 같은 곳에서의 잼세션이 간간이 나와서다. 한데 우스꽝스러운 옥에 티의 명장면. 백화점 왕자님인 차인표가 불어대는 건 분명 잘빠진 알토 색소폰인데도 흘러나오는 건 가녀린 소프라노 색소폰 사운드라니. 그 마법(?)이 놀라웠다. 그때만 해도 그리 어설펐다. 그래도 통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당시 뭇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흠뻑 빠졌던 건 재즈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어떤 근사한 이미지였지 싶다(하긴 나 역시 이때껏 재즈, 재즈, 재즈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이니까).

재즈만 한 게 또 있을까. 순간순간 요동치는 마음을 날것 그대로 고스란히 빚어낸 장르 말이다. 이런 미덕 때문인지, 재즈는 마음의 무수한 풍경들, 가령 괴팍스러움, 이유 없음, 지리멸렬 따위들까지도 선율로 구현하는 데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다시 바리톤 색소폰의 거인, 제리 멀리건 얘기다. 쳇 베이커와의 컴비네이션이 발군인 나의 애청반 ‘Gerry Mulligan Quartet’(53년)도 그 매력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피아노가 없는 4중주 팀인데, 그 앙상블 맛이 정말 상큼하고 명랑하다. 캘리포니아의 눈부신 햇살처럼. 쳇 베이커의 가칠가칠한 트럼펫 음색과 짜이고 엮이는 대위법(둘 이상의 멜로디가 동시에 연주되는 방식)의 세련된 바리톤 블로윙이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5번 트랙 ‘Frenesi’). 멀리건의 애드립 솔로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짜릿하다.

이러니 웨스트 코스트 재즈의 시작을 알린 명연으로 기억되는 걸 테고. 그렇다고 웨스트 코스트 재즈가 5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인기 끈 유일한 재즈 스타일이라는 건 아니다. 찰리 파커(알토 색소폰), 디지 길레스피(트럼펫), 덱스터 고든(테너 색소폰) 같은 절정의 비밥 고수들 또한 캘리포니아에서 꽤 연주한 적이 있으니까. 다시 없을 풍요로운, 황홀경 시대였다. 닝닝한 오렌지 주스처럼 맛없는 하루가 저무는 날이나 유독 마음이 퍼석이는 늦은 밤이면 나는 제리 멀리건을 불러낸다. 슬며시.

박진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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