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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대가 잭 웰치에게 배워야 할 것

중앙선데이 2010.08.08 00:38 178호 2면 지면보기
KB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에 어윤대씨가 앉았고, 사장과 국민은행장도 임명됐다. 며칠 전에는 주요 임원들도 선임됐다. 1년여 끌었던 KB 사태가 일단락된 듯하다. KB 임직원들은 아마 그렇게 느낄 것이다. 회장 선임 문제로 더 이상 흔들릴 일 없다든가, 새 회장이 경영 잘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하지만 KB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지 미봉됐을 뿐이다. 사태가 터진 건 1년여 전이다. 당시 회장이던 황영기씨가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압박당하면서 시작됐다. 그 1년간 극명하게 드러났던 KB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은행들도 똑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제2, 제3의 KB 사태가 조만간, 어느 은행에서든 다시 터질 게 분명하다.

KB 사태의 본질은 ‘주인 없는 은행’ 문제였다. 외압과 관치였다. 오너가 있었다면 외압과 관치는 그토록 노골적일 수 없었다. 하지만 KB에는 오너가 없었다. 주인이 없긴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금융당국은 감독권과 은행 규제라는 칼을 들고 있다. 황영기씨를 물러나게 하고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을 ‘회장 내정자’에서 사퇴시킨 건 그 칼이었다. 정치권도 수시로 압력을 넣을 수 있다. 감독당국을 움직일 힘이 있는 한 말이다. 청와대가 어윤대씨를 회장으로 선임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설득력 있는 까닭이다.

은행 CEO들이 감독당국과 정치권에 한사코 선을 대려는 건 그래서다. 자리를 보전하고 차지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강정원씨가 선진국민연대와 영포라인 등에 줄을 대려고 노력한 이유다. 그쪽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도 했고, 와인게이트도 그래서 벌어졌다. 선진연대 인사가 설립한 와인 수입업체가 국민은행에 수억원대의 와인을 납품했다는 의혹이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이지만 실현하기까지 난관이 너무 많다. 대신 2인자를 키우자고 제안하고 싶다. 후계자만 있어도 외압과 관치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차기 CEO 후보가 떡 버티고 있다면 감독당국과 정치권이 함부로 농간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정권 창출에 기여했거나 현 정권과 연(緣)이 닿는다는 이유만으로 신통찮은 사람을 CEO로 앉히는 건 힘들게 될 것이다. 차기 CEO가 누구인지 미리 아는 것, 그게 투명경영이고 예측가능 경영이기도 하다.
외국의 대기업들은 다 그렇게 한다. 승계프
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0년째 회장을 맡고 있는 GE의 제프리 이멜트가 단적인 예다. 전임 회장인 잭 웰치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차기 CEO를 잘 뽑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후계자 선발 작업을 무려 7년 동안 했다. 1994년에 전 임원들 중에서 23명의 후보를 추려냈고, 98년에 3명을 최종 후보로 압축했다. 이어 2년간 후보끼리 경쟁을 시킨 후 2001년 이멜트가 선임됐다. 제조업체뿐 아니다. 씨티나 메릴린치 등 금융사들도 마찬가지다.

국내 은행도 승계프로그램이 없는 건 아니란다. 설령 그렇다 쳐도 유명무실한 건 마찬가지다. 현직 CEO가 꺼리는 탓이 크다. 자기 자리를 위협할 경쟁자를 키우고 싶지 않은 심리다. 그래야 자신이 10년이건 20년이건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긴 은행만이 아니다. 오래전 굴지의 한 재벌그룹은 ‘부사장 보호’ 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계열사 사장들이 부사장을 해코지하는 일이 잦아서다. 그게 인지상정이기에 후계자 키우기는 정말 힘들다.

이처럼 어려운 일이기에 어 회장이 이 일을 해줬으면 싶다. 그는 이미 상처를 많이 받았다. 정치적으로 임명됐다는 얘기가 많은 만큼 연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임기 중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KB 사태는 다시 터질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차기 CEO를 키우고 보호해야 한다. 이것만 성공해도 그는 훌륭한 금융 CEO로 기록될 것이다. 게다가 그가 늘 주창한 ‘금융의 삼성전자’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세계 50위권의 메가은행으로 키우려면 이것부터 해야 한다. KB가 하면 다른 은행도 따라 할 것이다. 선도은행의 CEO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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