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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비록 죽었어도 사이버 세상엔 살아있다

중앙선데이 2010.08.08 00:25 178호 1면 지면보기
사이버 공간에 ‘유령(幽靈)’이 넘쳐난다. 육신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사이버 공간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는 폐쇄되지 않고 살아 있다. 사자(死者)의 블로그다. 1999년에 문을 연 싸이월드(www.cyworld.com)는 10여 년이 지난 현재 2500만 개의 미니홈피를 보유하고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7년이 지난 네이버 블로그는 1900만 개, 올해로 6년째에 접어든 다음 블로그도 500만 개에 이른다. 하지만 이용자가 사망해 미니홈피나 블로그가 없어진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사이버 세상에선 태어나는 사람은 있지만, 죽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사이버 세상에 떠도는 死者의 블로그

충남 천안에 사는 50대 주부 양모씨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아들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보며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눈물을 흘린다. 그의 대학생 외아들은 지난달 초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양씨와 양씨의 아들은 ‘일촌’지간으로 미니홈피에서 일상을 이야기하는 사이였다. 아들이 숨지기 전날 밤 모자는 심한 말다툼을 했다. 아들은 그 길로 엄마와의 미니홈피 일촌지간을 끊어 버렸다. 아들은 다음 날 집을 뛰쳐나갔고, 몇 시간 뒤 차가운 시신이 돼 돌아왔다. 엄마는 아들의 죽음이 자신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미니홈피라도 들어가서 아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일촌관계가 끊어진 탓에 홈피 내용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양씨를 괴롭혔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양씨는 싸이월드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아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거듭된 요청에도 콜센터 측의 답은 한결같이 안 된다였다. 관련 법규에 따라 “유가족이 요청하면 고인의 미니홈피 계정 자체를 없앨 수 있지만, 사진이나 글 등 콘텐트를 건네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양씨는 아직 아들의 미니홈피 폐쇄 신청을 하지 않았다. 홈피 안에 있는 아들의 사진과 동영상, 글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일촌을 맺은 친구들이 지금도 추모글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양씨는 한 달 전 아들을 떠나보냈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아직 이별의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양씨와 같이 유족이 상속하고 싶어도 관련 법규 때문에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접근조차 못하거나 아예 방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터넷 성숙기에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트렌드다. 고인의 미니홈피와 블로그라는 ‘디지털 유산(Digital Assets)’을 처리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유산 처리와 관련한 규정이 다르고, 관련 법규도 마련돼 있지 않아 앞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이용자들의 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중앙SUNDAY가 네티즌들에게 당신이라면 세상을 떠난 뒤 당신의 홈페이지·블로그가 어떻게 되는 것이 좋을지를 물어봤다. 조사는 5~7일, 조인스닷컴(www.joins.com)에서 진행했다. 자신의 죽음과 함께 디지털 유산도 없어지길 원하는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고(46%), 21%는 가족이 상속해서 추모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33%는 ‘폐쇄하되 홈피의 사진과 글 등 콘텐트는 상속인에게 넘긴다’고 답했다.

경희대 박종민 교수(언론정보학)는 “법규 정비와 별도로 포털 사이트가 회원에게 ‘당신이 세상을 뜬 후 당신의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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