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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홈피’ 연 1만 개 … 가족·친구들 성묘하는 심정으로 찾기도

중앙선데이 2010.08.08 00:23 178호 6면 지면보기
사이버 공간에서 죽은 자의 미니홈피가 훌륭한 ‘추모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특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연예인의 경우에는 사후에도 다양한 콘텐트가 공급되기도 한다.

사이버 세상 떠도는 死者의 블로그

“언니…언니 생각만 하면 언제나 눈물이 흘러.” “언제나 예뻤던 당신의 사진을 다시는 못 본다니 슬퍼요…조금만 더 생각을 해주시지. 행복하세요. 그리고 하늘나라 가서도 좋은 것만 하고 좋은 것만 보세요.” “난 가끔 언니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아닌 걸 아니까 한숨밖에….”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한 패션모델 김다울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게시판 내용이다. 홈피 사진첩 맨 위쪽에는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저의 일상이에요”라는 주인장 김다울의 글까지 떠 있다.

김다울이 세상을 뜬 지 9개월이 됐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추모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그의 미니홈피를 열면 그가 평소 즐겨 들었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치열한 경쟁 속의 삶을 괴로워했던 김다울의 고백,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생생한 사진들, 그 밑에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 김다울의 미니홈피는 그를 아끼는 팬과 지인들 사이에 추모의 공간으로 남아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2008년 10월 숨진 최진실의 미니홈피에는 ‘하늘로 간 호수’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가 세상을 뜬 지 만 2년이 다 돼 가지만 여전히 매일 수천 명의 팬들이 찾아와 추모의 글을 남긴다. 최진영·안재환·유니·우승연 등 세상을 뜬 대부분의 연예인 미니홈피들은 세월과 관계없이 팬들의 추모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 남아 있는 저세상 사람들의 미니홈피와 블로그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실제 세상에선 사람이 죽으면 사망신고와 장례식, 매장 등의 법적 의무 절차가 있지만 사이버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로서는 유족이 사망신고를 해오지 않는 이상 회원의 사망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유족들도 사이버 공간의 장례 절차 즉,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폐쇄하는 일이 흔치 않다. 싸이월드의 경우 고인의 미니홈피를 폐쇄해 달라는 요청건수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7건에 불과했다. 다음은 1년에 2~3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망자의 미니홈피나 블로그가 얼마나 될지 추론은 가능하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네이버·다음의 블로그를 모두 합치면 4900만 개. 우리나라 인구와 맞먹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에선 모두 24만6000여 명의 사람들이 세상을 떴다. 이 중 인터넷 주 이용층인 20~40대의 사망자 수도 3만 명에 가깝다. 한 사람이 싸이월드와 네이버·다음 3곳에 모두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한다고 가정하더라도, 20~40대에서만 한 해 1만 개 정도의 유령 미니홈피·블로그가 생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 커뮤니케이션즈 고객서비스팀의 이강석 과장은 “미니홈피 이용자의 사망은 유족이 알려오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유명 연예인의 경우처럼 언론을 통해 사망 사실을 공식적으로 안다고 해도 유족의 요청이 없다면 홈피를 폐쇄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이 아니라도 주변 친지들의 추모공간으로 사랑받는 미니홈피도 있다. 2006년 백혈병으로 숨진 서울의 한 여대생 이모양의 미니홈피가 그렇다. “날씨 너무 너무 덥고 지친다. 또다시 시험기간이 왔어. 아 너무 힘들어…ㅜㅜ. 오늘은 네가 더욱 생각나는 날이야.” 최근 이양의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하나다. 이양이 숨진 지 4년이 지났지만 일촌 친구들은 최근까지도 매일 미니홈피를 찾는다. 마치 살아있는 이양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일상의 소소한 일을 글로 쓰고 그리움을 표시한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인간은 마음속에서라도 고인과 대화를 나누며 교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세상을 뜬 사람의 미니홈피를 방문하는 사람의 심리는 묘나 납골당에 찾아가는 심리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전통 농경사회와 정보화시대의 죽음은 다른 의미가 있다”며 “사이버 세상에 어떻게 흔적을 남기고 추억할 것인지 고민하다 보면 과거와는 다른 장례, 추모 문화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작용도 있다. 고인의 게시판에 악성 댓글을 다는 경우다. 지난해 3월 자살한 장자연의 미니홈피는 입에 담기 어려운 악성 댓글이 이어진 끝에 결국 폐쇄됐다.

유족이 고인의 미니홈피를 바라보는 시각은 팬이나 친구와 차이가 있다. 유족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고인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자주 접하는 것을 꺼린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충격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팬이나 친구들이 고인의 미니홈피 게시판엔 글을 올리는 경우는 흔하지만, 유족의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게 그 증거다.

3년 전 암으로 모친을 잃은 40대 박모씨. 박씨의 어머니는 살아생전 싸이월드에 글과 사진, 동영상 등을 올리는 것을 즐긴 신세대 할머니였다. 박씨의 모친 미니홈피에는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모친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박씨는 모친의 홈피를 들여다보는 것을 꺼린다. 돌아가신 모친의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함봉진 교수(정신과)는 “산소나 납골당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인터넷은 접근성이 뛰어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쉽게 망자를 추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순기능도 있지만 반면 죽은 자를 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함께 지낸다는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유족이 고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를 폐쇄하기란 쉽지 않다. 규정상으론 유족이 사망신고서를 제출하면 되지만, 사이버 공간에 남아 있는 고인의 흔적을 영원히 없앤다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고인이 된 일반인의 미니홈피 중 대부분은 어중간하게 방치되기 십상이다.

경희대 박종민 교수(언론정보학)도 “고인의 홈피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소중한 추억의 자료로 남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들어가 살펴보고 싶지 않은 상처의 공간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죽은 사람을 추억하는 사진첩과도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20~30년 뒤가 되면 고인의 미니홈피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행정연구원의 서용석 박사(미래전략)는 “기술적으로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지우지 않고 저장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기일이나 명절이 되면 산소를 찾아 성묘하듯 4~5대조 할아버지의 홈피나 블로그를 되돌아보는 장면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이트마다 제각각인 규정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은 수년 전부터 고인이 된 사람들의 블로그나 미니홈피와 관련한 규정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족들의 문의가 늘어나면서부터다. 현행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들이 회원의 허락 없이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 고인의 유족이라고 다르지 않다.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는 ‘유가족이 요청할 경우 계정 삭제가 가능하지만, 미니홈피가 민법의 일신전속권(주체만 향유하거나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에 해당되므로 다른 이에게 승계(양도, 상속)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유족이라 하더라도 미니홈피를 대신 관리하거나 사진과 글 등 콘텐트를 받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다음도 싸이월드와 유사하다. 사망사실과 가족관계가 확인되면 계정 삭제만 해준다. 유가족이 고인의 비밀번호와 ID를 물려받을 수 없으며, 자료를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네이버는 상대적으로 덜 엄격하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은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사망한 회원의 ID와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족일 경우 사망한 회원의 글과 사진 등의 자료는 백업을 통해 제공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NHN의 유한나 과장은 “사망사실이 확인되고, 유족이 요청할 경우 사망자의 블로그와 그 안의 데이터는 회원 탈퇴와 동일하게 처리해서 자동 삭제된다”고 말했다.

회사마다 규정이 다르다 보니 회원의 유족이 “왜 ○○는 허락하는데, 너희들은 안 된다고 하느냐”며 항의하는 경우도 잦다.

다음의 정지은 홍보팀장은 “이 때문에 최근 업계에서도 협회 차원에서 통일된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을 중심으로 ‘디지털 유산’에 관한 법을 정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은 지난달 21일 동료 의원 10명과 함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이용자가 사망한 경우 이용자의 배우자, 2촌 이내의 친족 또는 이용자가 사전에 지정한 자 등은 사망자의 홈피나 블로그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단 부작용에 대비해 “영리 또는 부정한 목적으로 고인의 미니홈피 등을 이용하거나 관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처벌 조항을 신설했다. 박대해 의원은 “오는 11월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거쳐 좀 더 의견을 모은 뒤 내년 초께에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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