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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바비 존스에게만 우승 허락한 ‘칼라미티 제인’

중앙선데이 2010.08.08 00:04 178호 14면 지면보기
바비 존스가 자신이 즐겨 사용하던 ‘칼라미티 제인’이라는 이름의 퍼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칼라미티 제인은 미국 서부시대의 전설적인 여성 총잡이의 이름이다. [AP=본사특약]
멋진 퍼팅을 하고 나서 퍼터에 입을 맞추는 선수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쇼맨십이 좋았던 프로 골퍼 리 트레비노는 우승할 때마다 퍼터에 진한 키스를 하곤 했다. 그러나 멋진 티샷을 날렸다고 드라이버에 입술을 대는 골퍼는 없다.

골퍼의 가장 가까운 친구 퍼터 ①

골퍼는 퍼터를 가장 중요한 순간 함께 하는 일종의 동반자로 여겨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드라이버와 아이언은 골퍼의 무기이지만 퍼터는 애인 같은 존재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퍼터와 골퍼 사이에는 애증이 교차한다. 퍼터는 일방적인 배신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골퍼들은 퍼터를 온갖 미사여구로 칭찬하다가도 바로 다음 라운드에선 천덕꾸러기로 취급하는 일이 흔하다. 양말을 갈아 신듯 퍼터를 자주 바꾸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퍼터를 잘 바꾸지 않는 선수도 의외로 많다.

퍼터를 바꾸면 신선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재미를 본 경우도 더러 있다. 지난 6월 LPGA 챔피언십에서 투어 입성 후 첫 컷 탈락의 아픔을 맛본 최나연은 퍼터를 바꿔 바로 다음 대회인 코닝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마크 캘커베키아는 2007년 PODS 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첫날 36개의 퍼팅을 한 후 컷 탈락이 확실시되어 짐을 싸놓고 2라운드에서 시험 삼아 쓴 새 퍼터가 위력을 발휘, 우승을 했다.

그러나 그런 경우가 흔치는 않다. 타이거 우즈는 올해 디 오픈에서 오랫동안 쓰던 스카티 캐머런 퍼터를 버리고 후원사인 나이키 퍼터를 썼다가 낭패를 봤다. “인생 최악의 퍼팅”이라고 불평한 그는 단 한 라운드가 끝난 후 원래 퍼터로 돌아갔다. 퍼팅을 잘 하는 골퍼들이 일반적으로 퍼터를 오래 썼다.

최경주의 퍼터 선택은 과감하다. 사진은 7월 10일(한국시간) 존디어클래식에 그립 두개가 달린 퍼터로 경기하는 모습. [연합뉴스]
퍼터는 변하지 않는다. 퍼팅을 하는 사람의 몸이 변한다. 디 오픈과 마스터스에서 3승씩을 한 닉 팔도경은 퍼팅을 망친 라운드 후 “퍼터가 문제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퍼터(putter)가 아니라 퍼티(puttee: 골퍼)가 문제였다”고 했다.

그러나 많은 프로 골퍼가 퍼팅이 잘 안 되면 퍼터에게 화풀이를 한다. TV 골프 중계에는 샌드웨지로 퍼팅을 하는 선수가 종종 나오는데 퍼팅이 잘 안 돼서 퍼터를 부러뜨렸거나 물 속으로 던져 버린 선수들이다. 미국 2부 투어에서는 형편 없는 퍼팅을 한 선수가 퍼터를 자동차에 묶어 땅에 질질 끌고 다음 경기장까지 수백㎞를 달렸다는 잔인한 일화도 있다.

퍼터를 애인으로 의인화한다면 외모는 천차만별이다. 고전적인 미인형이 슬림한 一자형 블레이드였다면 2002년 골프계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오디세이 투볼 퍼터 이후 헤드가 큰 멀릿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헤드 모양이 우주선 같은 기괴한 퍼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퍼터의 신장도 각양각색이다. 일반적인 퍼터에서 배꼽까지 오는 벨리(belly) 퍼터, 드라이버보다 더 긴 브룸퍼터까지 쓰이고 있다. 베른하르트 랑거 등 퍼팅 입스에 걸린 많은 선수를 키 큰 퍼터들이 구원해줬다. J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벨리 퍼터와 브룸 퍼터는 몸에 축을 고정해 흔들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단점도 있다”면서 “입스를 해결한 건 멘털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최근엔 퍼터와 관련해 최경주가 거듭 화제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콜라 캔처럼 두꺼운 그립을 끼고 나왔던 그는 지난 7월 볼링 자세로 스트로크를 하는 ‘후안 퍼터’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원리는 단순하다. 사격을 할 때처럼 표적과 볼의 일직선 라인 뒤에 눈이 위치하는 것이다. 조준을 하는 데는 매우 좋지만 거리를 맞추는 데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이 퍼터로는 백스윙을 할 때 몸에 걸리기 때문에 부드러운 스윙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디 오픈에서 후안 퍼터로 고생한 최경주는 다른 해결책을 찾고 있다. “퍼터 2개를 동시에 가지고 대회에 나가 3m 내 거리는 후안 퍼터로, 그 이상 거리는 종전 퍼터를 쓰는 것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가방에 애인(퍼터)이 둘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다른 클럽을 하나 빼야 한다. 2개의 퍼터를 쓰는 장점이 다른 클럽 하나를 뺄 만큼 되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퍼터의 이름은 여성이 많다. 2005년 장정이 여자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할 때 써서 한국에서도 많이 팔린 예스 퍼터는 ‘나탈리’ ‘메릴린’ 등 여자 이름만 쓴다. 2001년 US 오픈에서 이 퍼터로 우승한 레티프 구센이 퍼터의 모델명을 자신의 부인의 이름을 따 트레이시로 붙이면서다. 그러나 현재 구센은 트레이시를 쓰지 않는다.

퍼터와 가장 깊은 사랑을 나줬던 사람은 골프의 성인 바비 존스다. 퍼터에 칼라미티 제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칼라미티 제인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의 전설적인 여성 총잡이의 별명이다. 그를 만나는 상대는 재앙(Calamity)을 겪게 된다고 해서 그런 애칭을 갖게 됐다. 미국의 저명한 퍼팅 골프 연구가인 제프 매그넘은 “존스가 활동할 20세기 초 골프와 사냥 등은 자주 비교가 됐고 존스의 퍼터도 칼라미티 제인처럼 정확하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고 했다.

존스와 칼라미티 제인의 이야기는 동화 같은 스토리로 알려졌다. 퍼팅 때문에 부진하던 존스가 이 퍼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승승장구(21개 메이저대회에서 13승)하고 그랜드슬램까지 했다는 것이다. 약간 과장된 얘기다. 존스가 칼라미티 제인으로 메이저 13승을 한 것은 맞지만 이 퍼터를 쓴 첫 3년 동안은 별 성적을 내지 못했다.

존스는 “처음 이 퍼터를 봤을 때 줄무늬 뱀처럼 보였다”고 한다. 만든 지 20여 년이 지나 여러 명이 썼던 낡고 녹이 슨 중고 퍼터였으며 나무 샤프트는 손상이 많아 세 곳을 검정 끈으로 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드레스했을 때부터 퍼터는 존스의 손에 착 감겼다. 칼라미티 제인에 대한 존스의 사랑은 각별했다. 1925년 그의 홈코스인 애틀랜타 인근 이스트 레이크 클럽에 불이 나서 존스의 용품이 모두 불탄 일이 있다. 그런데 퍼터는 무사했다. 퍼터를 존스가 지니고 다녔기 때문이다.

26년 존스는 6년간 썼던 칼라미티 제인을 대신해 칼라미티 제인II를 쓰게 됐다. 그에게 용품을 대던 스팔딩에서 칼라미티 제인의 페이스가 닳아 제대로 된 스트로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용품사는 당구대 위에서 칼라미티 제인의 스트로크를 실험하기도 했다. 존스는 결국 퍼터를 바꾸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칼라미티 제인II는 오리지널과 똑같이 복제했다.

존스와 제인의 관계가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27년 퍼팅이 잘 안 된 어느 날 존스는 퍼터의 샤프트를 부러뜨리려 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렇게 충고했다. “내일이 되면 당신은 그 퍼터가 또 필요할 것이오. (퍼터가 악마 같은 것이라면) 당신이 잘 아는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나을 거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존스는 퍼터를 부러뜨리지 않았고 결국 잘 아는 악마와 함께 그랜드슬램을 합작했다.

메이저 3승을 도운 오리지널 칼라미티 제인Ⅰ은 그가 만든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 전시되어 있다. 10번의 메이저 우승을 할 때 함께 한 칼라미티 제인 II는 미국 뉴저지의 USGA 박물관에 있다. 두 제인 모두 수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본다.

그는 30년 은퇴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대회인 마스터스에는 출전했다. 칼라미티 제인Ⅰ과 이별한 지 10년이 되던 1936년 존스는 그 퍼터를 가지고 마스터스에 나왔다. 까다로운 오거스타에서 한 라운드를 25퍼트로 끝내고 64타를 쳤다. 존스는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다. 볼은 컵을 향해 계속 갔고 눈이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고 말했다.

칼라미티 제인은 워낙 유명하다. 1932년부터 1973년까지 무려 40여 년 동안 스팔딩에서는 칼라미티 제인이라는 이름의 퍼터를 제작해 팔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다른 선수에게는 메이저 우승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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