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 물소리 바람 소리 들으며 내 안의 나를 만난다

중앙선데이 2010.08.08 00:01 178호 16면 지면보기
범종이 두웅 두웅 울린다. 해는 서산 너머로 막 떨어졌다. 절 마당의 늙은 배롱나무들은 꽃이 만발해 붉은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열아홉 명의 남녀 중·고등학생들이 부처님 앞에 좌정한다. 법당에 들어오기 전까지 쉴 새 없이 재잘대던 그들은 신비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모니불을 올려다보며 묵언에 들어간다. 서른세 번의 타종은 제법 긴 시간이다. 자세가 허물어지는 학생들은 지도교사의 눈빛에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마지막 종소리가 푸른 산 속으로 스며들자 스님을 따라 반야심경을 암송한다.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호국성지’ 밀양 표충사의 템플스테이 풍경이다.

밀양 표충사 템플스테이 층층폭포 아래 긴 명상

여름 휴가철을 맞아 전국적으로 템플스테이가 진행 중이다. 8월 5일 현재 108개 사찰에서 학생과 일반인이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며 폭염을 이겨내고 있다. 일정기간 절에 머물며 수련하는 것은 전통이 깊다. 그러나 ‘템플스테이(Templestay)’라고 부르고 명상·다도·발우공양·108배 등의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은 2002년 월드컵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외국인 관광객의 숙소 문제를 해결하고 전통문화도 알리자는 아이디어를 정부가 채택했던 것이다. 해가 거듭될수록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2002년 2558명에서 올해는 15만 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외국인은 2만 명 선.

왜 사람들은 절로 갈까. 한국불교문화사업단(www.templestay.com)의 장보배씨는 모두 지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전화로 문의하시는 분들은 ‘조용하냐’고 먼저 물어봅니다. 소음에서 벗어나 진정한 휴식을 하고 싶은 거죠. 이런 추세에 따라 많은 사찰이 치유명상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사찰음식도 큰 인기를 얻고 있고요.” 절은 다른 나라에도 많지만 한국과 같은 프로그램은 거의 없다고 한다. 템플스테이는 문화를 체험하고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으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한국형 휴가로 확실히 뿌리 내렸다.

표충사는 사명대사와 인연이 깊다. 학생대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선혜 총무스님도 그 점을 강조한다. “우선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가르칩니다. 그 다음 부모의 은혜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고 새 친구를 사귀며 형제애를 느껴보도록 합니다.” 하지만 중·고생에게 5일간의 절집 생활은 녹록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흘째 저녁 한 학생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주면 1000배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저녁 공양도 마다하고 부처님께 절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학생의 건강을 염려한 스님은 324배에서 멈추게 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렸다.

7일 아침 일찍 학생들은 주먹밥을 싸들고 산행에 나섰다. 재약산 사자평에 오르기 위해서다. 비지땀을 흘리며 두 시간을 오르자 층층폭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수십 길 폭포 곁에서 긴 명상에 빠져들었다. 처음으로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는 성원제(18·서울보성고) 학생은 하산길에 이렇게 말했다. “스님들의 절제하는 생활이 인상적이었어요.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죠. 부모님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이제 내 일은 스스로 해 보려고 합니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