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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력자 아닌 '정책 세일즈맨' 돼야

중앙일보 2002.09.26 00:00 종합 11면 지면보기
대통령은 스스로 최고의 정책 로비스트가 돼야 한다. 대통령 프로젝트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며, 필요한 경우 협상·타협하는 최고위 세일즈맨이 돼야 한다.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 EAI 프로젝트
지시·명령 안통하는 시대… 설득·타협을 對국회 입법지원 비서실 따로 둬야

그러기 위해서는 의전 행사 위주의 공식 회의는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대신 소규모의 실속형 만남을 늘려야 한다. 격(格)과 여야를 따지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밤 늦게라도 전화를 걸어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대통령 관저든 집무실이든, 아니면 이른바 '안가(安家)'에라도 불러 직접 간곡한 협조 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일즈맨이 성공하려면 상품이 좋아야 한다. 소비자는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대통령도 자신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팔려면 그 질부터 높여야 한다. 세일즈를 하려면 소비자와 신뢰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신뢰가 없으면 거래 비용이 너무 커진다.



세일즈는 설득의 예술이다.



대통령이 세일즈맨이 되는 것은 정치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자신의 역할과 권한·책임, 그리고 정치에 대한 기본 인식이 바뀌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시하고 명령하는 수직적 방법으로도 정치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다. 대통령 개인이 지닌 범국민적 카리스마, 여대야소의 정치구도, 당권과 대권의 일치, 장기 집권 또는 오랜 정치 활동을 통해 요소요소에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재계도 정치·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언론도 통제하기 쉬웠다. 더구나 왕과 대통령을 동일시하는 문화, 시민사회의 비조직화, 분단 상황에 따른 정치 이데올로기의 안정성도 그런 방법이 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시대적 소명도 달라졌다. 과거 대통령들이 하던 방식을 따라 하다가는 큰 실패를 보게 돼 있다. 먼저 범국민적 카리스마를 지닌 대통령의 시대는 끝났다. '3金 시대'의 마감으로 앞으로는 많아야 60대, 대개는 50대, 경우에 따라 40대 대통령이 출현할 가능성이 오히려 커졌다.



더구나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고, 정치 세력이 다변화하면서 여소야대가 보다 일반적 상황이 되고 있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 추세, 5년 단임제 임기, 다양한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 증대 등도 정치 통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런 외부적 환경의 변화와 함께 통일·개헌 문제와 경제 환란 극복 문제처럼 기존의 이념 구조를 혼란스럽게 하는 각종 국내외 정치·경제 문제들은 더욱 빈번하게 현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돼 대통령의 정치적 통합 노력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통령들은 다원적 정치·경제·사회적 구조에 맞춰 새로운 정치적 통합 방법론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권력 지향적 정치 통합에서 정책지향적 정치 통합으로 바뀌어야 한다. 태생적 결함을 안고 출발한 군부 집권 세력들에 정권 교체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치명적 상황으로 인식됐지만 평화적 정권 교체까지 경험한 이후 대결 양상은 훨씬 둔화됐다. 또 대결과 지시에서 상대를 인정하는 협상과 설득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치와 국정 운영을 대통령 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관행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자연인으로서의 대통령 개인은 지식·가용시간·자원의 한계, 과거 개인적 경험에서 오는 편견과 선호 등으로 언제든 실수와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다. 이는 조직과 제도·시스템으로 보완해야 한다.



◇정치 통합을 위한 제안=대통령의 대국회 정책 설명회를 관례화해야 한다. 국회의 영향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국회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총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총리를 수시로 면담해 모든 정보를 총리와 공유해야 한다. 주례보고는 더 이상 형식적이어선 안된다. 청와대 비서진이 다 결정하고 난 다음에 총리 참모진에 할 일을 지시·통보하던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대국회 입법 지원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시리즈 1,2에서 지적한 대통령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조직이다. 기존의 정무비서실과는 별도로 가칭 입법지원 비서실을 두는 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정권 재창출에 집중됐던 정무비서실을 대국회 정책 로비 위주로 개편해야 한다. 정무비서실의 기존 기능은 정당으로 털어내면 된다.



공보비서실은 언론기관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 대통령과 언론기관 사이의 정직한 중개인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과거처럼 대통령의 대국민 이미지·정치적 입지를 유리하게 하는 홍보, 언론기관의 비판에 대한 방어에 치중하면 공보비서실을 통한 대통령의 발표는 신뢰를 잃게 된다.



민정비서실의 대민 업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사회 내 이해 구조가 복잡해지고 국회나 정당 같은 공식적인 정치기구들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취약한 상황이 벌어지면 민정 기능이 그런 취약점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들을 강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다. 대통령 본인이 아무리 청렴해도 자녀나 측근들의 이권 개입과 전횡, 편중 인사 등은 역대 대통령을 예외없이 곤경에 빠뜨렸다. 친인척 관리 전담부서와 대통령 비서실 윤리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처럼 실제로 부적절한 행동을 했느냐가 아니라 남에게 부적절하게 보인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미국처럼 대통령과 친인척·측근들을 중심으로 백지신탁(blind trust)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재산 등록·공개 대상이 되는 공직에 취임하는 사람은 법이 인정하는 투자신탁회사에 자신의 전 재산을 맡기고 공직을 떠날 때까지 본인은 그 회사에 자신의 재산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하라고 요청할 수 없는 속칭 '나몰라 신탁'이다.



또 대통령과 청와대의 모든 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EAI 프로젝트 참여교수=박세일(朴世逸·서울대·위원장), 김병국(金炳局·고려대·간사), 김판석(金判錫·연세대), 모종린(牟鍾璘·연세대), 박재완(朴宰完·성균관대), 염재호(廉載鎬·고려대), 이홍규(李弘圭·한국정보통신대), 장훈(張勳·중앙대), 정종섭(鄭宗燮·서울대), 최병선(崔炳善·서울대), 황성돈(黃聖敦·외국어대)



◇토론 참석자=강경식(姜慶植·전 대통령비서실장), 강봉균(康奉均·전 재경부장관), 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 김영수(金榮秀·전 문화체육부장관), 김정렴(金正濂·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충남(金忠男·전 대통령사정비서관), 노재봉(盧在鳳·전 총리), 박철언(朴哲彦·전 정무장관), 사공일(司空壹·전 재무부장관), 이종찬(李鍾贊·전 국정원장), 이홍구(李洪九·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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