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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열고 떠나는 휴가

중앙선데이 2010.07.24 23:49 176호 15면 지면보기
세계적인 정신의학자 프로이트도 개업하고는 한동안 휴가다운 휴가 없이 진료에만 매진해야 했다. 딸린 식구가 많아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탓이다. 그는 개업 후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갔다 온 후 역사에 남는 저작에 몰두하게 된다. 충분히 재충전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문호 괴테도 오랜 공직생활을 정리한 뒤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타성에 젖었던 여자 관계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창조적 작업에 매진한다. 이처럼 휴가로 인생의 큰 전환을 경험하는 위대한 인물을 들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휴가가 약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고갈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쩔 수 없이 전쟁하듯 여름휴가를 치른 후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지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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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막히지 않는 길로, 대접을 잘 받으면서 비용도 저렴한 휴가를 누리면 좋겠지만, 아이들 스케줄·직장 일정 등을 맞춰 날짜 잡는 것부터 쉽지가 않다. 평소에는 잠깐씩 얼굴을 마주했던 가족이 24시간 같이 지내다 보면 쌓였던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완벽주의적이고 강박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계획대로 일정이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다른 사람 탓을 한다. 보는 이들도 불편하다.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일수록 바가지 요금, 교통 체증 등을 이유로 낯선 사람들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일이 잦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할수록 피서지에서 대접이 소홀하다고 판단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가족의 체면은 아랑곳없이 말이다. 알코올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휴가지에서 진짜 큰 사고를 치기도 한다.

날은 덥고 길은 막히고 음식이 형편없는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가족들이 싸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기왕에 떠나는 휴가를 즐기는 방법은 뭘까? 휴가를 통해 그동안 서먹서먹했던 가족 간 거리를 좁혀 다시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무엇보다 완벽한 경로와 피서지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소박하더라도 가족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서로 타협하고 자족하는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만약 모두가 동의하는 공통분모가 없다면 싫다는 사람을 끌고 다니며 서로를 소진시키기보다는 차라리 각자의 입맛대로 휴가를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대신 하루 정도, 조용한 장소에서 같이 식사하고 콘서트에 가거나 영화를 보면서 평화롭고 안락하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생 동안 최고의 휴가가 언제였느냐고 누가 필자에게 물어본다면, 서슴없이 대학 시절 방학 기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모·형제와 떨어져 살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의과대학 공부에 지쳐 있을 때였다. 그 시절엔 방학이 오면 하루 종일 혼자 책을 읽으며 지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책방 나들이를 하다 보면 여름이 지나갔다.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갔다가 대판 싸우고 돌아온 사람들이 휴가 뒤풀이로 필자의 상담실을 찾는 경우를 종종 봤다. 일도 스트레스지만 노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여행을 통해 나와 상대방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고 가까워지고 싶다면, 가능한 한 간단하게 스케줄을 짜고 상대방의 의견과 취향을 경청한 뒤 중지를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휴가 역시 낭만적인 꿈이 아니라 덥고 고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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