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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웨이 레프트에서 라이트로 … ” 때로는 낯선 스포츠 해설

중앙선데이 2010.07.24 23:44 176호 16면 지면보기
고바야시 히데오가 쓴 『만철, 일본제국의 싱크탱크』(산처럼, 2004년)는 1906년부터 45년까지 만주에서 활동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제6부는 ‘만철이 실어 나른 문화’인데, 제일 먼저 야구가 등장한다. 만철의 경영이 궤도에 접어들자 종업원을 위한 레저가 필요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스포츠 활동이 활발했다. 그중에서도 야구는 인기가 있었다. 수준도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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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롄(大連) 만철구락부는 1927년 8월 도쿄의 진구 구장에서 열린 제1회 도시대항 야구대회에서 우승했다. 만철구락부의 첫 상대는 경성(서울)의 용산철도국이었다. 만철구락부는 8-7로 이겼다. 이듬해에는 다롄실업, 3회 대회는 다시 만철구락부가 우승한다. 기자의 눈길이 머문 대목은 이런 경기 결과뿐이 아니다.

1940년 9월부터 일본의 야구 용어가 확 달라진다. ‘플레이볼(경기 시작)’이라고 하던 것을 ‘시아이 하지메’, ‘게임셋(경기 끝)’을 ‘시아이 오와리’로, ‘리그전’은 ‘연맹전’으로 바꿔 부른다. 야구는 미국에서 만든 스포츠다. 미국과의 사이에 전운이 감돌자 야구 용어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요즘 일본 야구 중계에서는 ‘플라이볼’이나 ‘홈런’ 같은 용어 말고도 ‘타임리 히트(적시타)’ 같은 영어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우리도 경기 용어를 우리말로 바꿔 사용한 적이 있다. 3공화국이나 5공화국 정부에서 매스컴을 밀어붙여 관철한 언어정책이다. 축구의 ‘골키퍼’를 ‘문지기’, ‘코너킥’을 ‘구석차기’, ‘헤딩’을 ‘머리받기’라고 불렀다. 요즘 북한 중계에서 들을 수 있는 용어다. 당시 ‘현장’의 반발이 적잖았다. “축구는 영국이 종주국이다. 존중하는 뜻에서 영어로 된 용어를 쓰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월드컵에서 세 번 우승한 독일의 축구 용어엔 독일어가 많다. ‘페널티킥’은 ‘엘프 메터(Elfmeter·11m라는 뜻)다. 페널티킥은 11m 거리에서 찬다. ‘헤딩’은 ‘코프발(Kopfball)’. 머리(Kopf)와 공(Ball)을 합친 말이다. ‘코너킥’은 ‘에케(Ecke)’, 구석이라는 뜻이다. ‘월드컵’은 ‘벨트마이스터샤프트(Weltmeisterschaft·세계선수권대회)’다. 독일인들은 축구의 종주국을 존중하지 않는 걸까?

중국은 농구를 좋아하는 나라다. 그러나 미국식 용어를 쓰지 않는다. 슛은 바구니에 던진다는 뜻의 터우란(投籃), 패스는 공을 전달한다는 뜻의 촨추(傳球), 속공은 콰이궁(快攻), 블로킹은 모자를 씌운다는 뜻의 가이마오(蓋帽)로 부른다. 포지션을 부르는 말도 가드는 허우웨이(後衛), 센터는 중펑(中鋒), 포워드는 첸펑(前鋒)이다.

우리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다 보면 외국어가 많이 들린다. 솔직히 기자는 이런 중계에 익숙하다. 우리말 용어가 있는지 알아본 적도 없다. 외국어 사용이 불가피할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지난 주말 골프 경기를 시청하다가 조금 색다른 경험을 했다. 영어도 우리말도 아닌 제3의 언어를 듣는 듯했다.

“바람이 페어웨이 레프트에서 라이트로 붑니다. 이런 컨디션에서는 스윙 밸런스가…. 업힐이니까 스탠스를 체크하고 히팅 포인트를….”

캐스터와 해설자가 이두나 향찰로 된 문장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경기 내용은 잊고 캐스터와 해설자의 말을 주의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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