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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와 바꾼 한 권의 책에서 금융위기 그림자를 봤다”

중앙선데이 2010.07.24 23:32 176호 22면 지면보기
홍성국
대우증권 홀세일 사업부장(전무)

책읽기 달인들이 말하는 북캉스 노하우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매년 휴가 때면 거창한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러나 계획대로 실천해 본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2006년 여름휴가도 마찬가지였다. 가족과 해외여행을 계획했지만 회사 일과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 때문에 결국 무산되고, 가까운 바닷가를 1박2일로 다녀오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태풍이 와 물속에 들어가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PC방으로, 심통(?) 난 아내는 사우나에 가고, 혼자 남은 나는 차 트렁크를 뒤적이다가 오랫동안 방치됐던 한 권의 책을 찾았다.

세계 사회학회장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이라는 책이었다.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폭넓게 지적하면서 향후 20년을 체제 전환기로 규정하는 내용이다. 언론 인터뷰를 보고 구입했지만 바쁜 일상으로 차 안에 흘려 놨던 것이었다. 당시는 고성장 중인 세계 경제가 조만간 공황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져 가던 시기였다. 무료한 오후 내내 쉽지 않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세계가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많은 모순을 축적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됐다. 집으로 돌아와선 월러스틴의 다른 책과 유사한 책을 섭렵했다. 전공인 경제를 넘어 관심의 지평을 넓히기 시작하면서 2008년 9월의 글로벌 위기도 어렴풋이 예측하게 됐다. 세계 경제위기 발생 두 달 만에 내가 『글로벌 위기 이후』라는 책을 집필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여름휴가 중 읽은 책 덕분이었다.

독서는 나의 뒷배경을 구성하는 바탕이다. 경기와 주가를 예측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특별히 미래에 관심이 많은데 미래를 읽는 해법은 독서의 힘에서 오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 고려하는 변수(지식)가 많을수록 맞힐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기술(IT)의 발달과 세계화로 정보의 양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 많은 정보를 어떻게 지식으로 만드느냐다.

스마트폰의 보급은 암기의 필요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젠 암기보다는 작은 정보와 지식을 조합해 미래를 보여 주는 기술, 즉 지혜가 더욱 중요해졌다. 21세기의 지혜는 뉴스나 정보의 이면에서 세상을 바꾸는 동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개인별로 상황에 맞는 지혜가 필요한데 이런 지혜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독서뿐이다. 독서는 중요한 화두 한두 개를 다양한 시각으로 설명하고, 장시간 읽기 때문에 머리뿐 아니라 가슴에도 오래도록 기억된다. 또한 생각의 틀을 크고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독서의 기억이 쌓이면 혜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실수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가뿐 아니라 경영자, 조직의 대표일수록 많은 독서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글로벌 위기는 세상의 근간을 바꾸고 있다. 따라서 이번 휴가에는 전환기 이후 모습을 보여 주는 책을 추천하고 싶다. 스마트폰이 만든 SNS 세상의 미래와 경영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소셜 미디어 마케팅』(오가와 가즈히로 지음), 중국의 노동과 환경 문제를 통해 중국의 사회 문제를 탐구한 『차이나 프라이스』(알렉산드라 하니 지음), 한국의 사회 갈등을 중립적 시각에서 다룬 『문제는 리더다』(정관용 외 지음)의 일독을 권한다.

진양혜
아나운서

올여름 좀 특별한 휴가를 계획 중이다. 일명 ‘꿈꾸는 휴가’다. 모두 휴가를 떠난 텅 빈 도시에서 유유자적 헐렁한 시간과 느긋한 여유를 만끽하는, 떠나지 않고 남아서 보내는 휴가!

먼저 책 예닐곱 권과 진하게 내린 커피를 가득 담아 들고 한강변 공원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눕는다. 나는 책을 한 번에 여러 권 같이 읽는 경향이 있어 꼭 여러 권이 필요하다. 엎드렸다가 바로 누웠다가 맘대로 자세를 바꿔가며 하늘도 보고 잠도 자고 음악도 들으며 책을 읽는 것이다. 시원한 아침 바람이 불 때부터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 무렵까지. 아! 생각만으로도 황홀하다. 영화에서 보듯이 예쁜 런치박스가 준비돼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상관없다. 이렇게 자유롭고 여유로운 휴가를 보낼 수만 있다면 강변의 편의점에서 김밥 몇 줄로도 행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설레는 맘으로 책을 골라 담는다. 먼저 진회숙의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다. 저자는 음악과 미술을 함께 글에 담았다. 메시앙이나 스크라빈 같은 작곡가가 소리를 공감각적으로 느끼며 “따듯한 오렌지색으로 연주해 주세요. 그 부분은 초록이 섞인 갈색으로요”라고 주문했던 일화를 소개하면서다. 음악과 미술·문학을 아우르는 저자의 해박함과 그림 자료들이 보고 읽는 맛을 잘 전해준다. 책장을 넘길수록 ‘음악을 함께 듣고 싶다’는 욕구가 넘치게 하는 책이다.

사이드의 『그림의 목소리』는 쉽고 재미있다. 저자는 작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의 느낌과 생각이 당신의 것과 다르다면 큰소리로 이야기해도 좋다. 주관적으로! 눈치 볼 필요없다. 정진국의 『유럽의 괴짜 박물관』은 유럽의 작은 박물관들을 정감 있는 시선으로 소개했다. 나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박물관을 꼭 방문한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 이곳 가 봤어!’ 혹은 ‘이런 곳도 있구나.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절로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위의 책들이 손에 잡히는 부분부터 내키는 대로 읽을 수 있다면 다음 책들은 집중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책으로 필립 블롬의 『수집 기묘하고 아름다운 강박의 세계』를 추천한다. 나 역시 책 속에서 수집은 아니지만, 욕심나는 유물을 만났다.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나온 조선의 도자기 ‘백자끈무늬병’이다. 시대를 초월해 느껴지는 모던한 디자인과 곡선미에 나도 모르게 갖고 싶다고 중얼거리게 만든 보물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 전시실에 전시돼 있어 직접 볼 수도 있다.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에 휴식을 원한다면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위의 두 책을 아우르는 개념이 있다. ‘앤틱(antique)’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물을 가리키던 이 말이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수집 가치가 있는 오래된 물건’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앤틱에 관심 있다면 최지혜의 『앤틱 가구 이야기』도 읽을 만하다.

끝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로벤섬 수용소의 전설에 묻힌 위대한 축구 이야기, 척 코어와 마빈 클로스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이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서 뒷북을 치는 듯하지만 굳이 추천하는 이유는 스포츠가 음악이나 미술·공연 예술 등에 비해 문화적 관점에서 홀대받는 듯한 아쉬움이 있어서다. 또 남아공이 인종 차별과 인권 유린을 딛고 세계의 축제를 개최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축구라는 스포츠가 가졌던 의미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골랐다.
특별한 휴가가 아니라도 그리고 꼭 위에 언급한 책들이 아니라도 책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더위는 저만큼 물러나 있지 않을까. 나만 해도 이 글을 쓰며 더위를 씻은 듯이 잊고 있으니 말이다.

이각범 KAIST 교수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

나는 휴가 때 책을 가져가는 대신 책을 읽기 위해 휴가를 낸다. 지난해 가을엔 5일간 휴가를 내 일본 도쿄에 있는 지인의 집에 머물며 독서 휴가를 보냈다. 도쿄 시내의 야에스(八重洲)·기노쿠니아 같은 서점을 돌면서 50~60권의 책을 섭렵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서점들은 책 읽는 사람들을 위해 안락한 의자를 마련해주는 등 다채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몇 시간이고 앉아서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다. 내 독서습관은 참 기이하다. 몇 권의 책을 정독하기보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을 닥치는 대로 무작위로 읽어대는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저자와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독서 휴가를 끝낼 때쯤이면 앞이 훤해지는 느낌을 갖는다. 당시에도 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때쯤엔 미국의 쇠퇴, 중국의 부상이라는 G2시대의 개막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오는 8월 말엔 미국으로 독서 휴가를 갈 계획이다. 30년 후 세계 금융의 질서가 어떤 모양으로 펼쳐질지 예측해보기 위해 새로 나온 책들을 섭렵할 참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IT가 전공인 때문인지 몇 권의 관련 서적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우선 『Googled-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이란 책이다. 정보를 검색하는 걸 구글링(Googling)한다고 말할 정도로 구글은 보통명사화됐다.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조직하여 누구나 접속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글의 목표가 이제 달성돼 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켄 올레타는 기술회사로 시작해서 소프트웨어·기술·인터넷·광고·미디어를 모두 합한 진화된 기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구글의 성공을 설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구글이라지만 끊임없는 혁신과 오픈소스라는 원래의 이상에 충실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정답은 『디지털 네이티브』(돈 캡스콧 지음)란 책에 나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화된 새로운 인류,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성을 자세히 분석했다.

네트워크가 고도화되고 정보가 넘쳐나면서 사람들의 시야가 분산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햅틱이론』(하라 겐야 지음)이란 책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Market 3.0』(필립 코틀러 지음)은 기업들이 고객 만족과 이익 실현에 그치지 않고 보다 큰 미션과 비전, 가치를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자 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보통신혁명으로 시작된 이 시대의 변화는 이제 일과 삶,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시장의 모습을 새롭게 변모시키고 있다. 열심히 일하는 삶(Hard Work)과 진하게 즐거운 삶(Hard Fun)이 공존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꿈의 사회(The Dream Society)』(로프 젠슨 지음)가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인사이트 지식사전』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집단지성, 인포데믹스, 소셜 미디어 등 친근하면서도 생소한 키워드들이 모여 있다. 현대의 지식, 경영, 정치 리더들이 사용하는 키워드들의 대부분이 정보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기술발전에서부터 문화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인들은 다방면으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새롭게 형성돼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길 속에 책이 있다’가 된다. 집을 떠나 길을 나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광과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배움터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독서보다 여행을 더 강조해 ‘讀萬卷書 行萬里路(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야 한다)’를 ‘讀萬卷書 不如行萬里路(만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만 리 길을 다니는 것만 못하다)’로 고쳐 말하기도 한다.

여행을 떠나며 가방에 넣고 갈 만한 책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짐을 최대한 단출하게 꾸려야 하기 때문에 두꺼운 책을 몇 권씩 넣어 갈 수도 없다. 나는 작고 가벼우면서도 밀도 높은 사유와 문장을 지닌 예술산문집 한두 권을 챙겨 가는 쪽이다. 이를테면 미국의 계관시인 마크 스트랜드가 호퍼의 그림마다 짤막한 감상을 붙여 놓은 『빈방의 빛』, 이성복 시인이 흑백사진들을 정교한 시선으로 읽어 낸 사진에세이 『오름 오르다』와 『타오르는 물』 등이다.

호퍼의 그림은 도시의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만드는 독특한 색채와 분위기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합실·기차·주유소·호텔·별장 등 여행지의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스트랜드는 호퍼의 그림에서 공간의 비밀을 예리하게 포착해 압축적인 문장으로 풀어낸다. 작은 화집의 역할도 겸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우리는 여행 중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주의 올레길을 걷거나 바다에 갈 사람이라면 이성복 시인의 사진에세이를 챙겨 가는 게 좋겠다. 『오름 오르다』는 고남수의 오름 사진을, 『타오르는 물』은 이경홍의 바다 사진을 모태로 삼아 미적인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벽돌 쌓듯이 한 장의 사진에 대해 각각 6개의 단상이 결합되는 형식은 두 책이 동일하다. 그러나 시인 자신이 밝혔듯 전자가 구상적 세계의 의미와 가능성을 묻고 있다면 후자는 비구상 세계의 무의미와 불가능을 타진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사유를 따라가다 보면 색채감 없이 선과 면의 결합, 빛과 어둠의 대비만으로도 사진이 얼마나 풍부한 이미지를 품고 있는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존 버거의 몇몇 책을 나는 사랑한다. 그는 『본다는 것의 의미』 『어떻게 볼 것인가』 등을 저술한 사진이론가나 미술비평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아픔의 기록』은 그의 시와 소묘·사진 등을 모아 놓은 책이고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은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자신의 어떤 ‘한때’와 ‘그곳’에 관한 기억을 불러낸 산문집이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은 ‘Photocopies’라는 원제처럼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사진을 찍듯 그려 낸 29개의 짧은 이야기 모음이다.

기록자로서의 작가와 사진가, 그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앞서 말한 책들은 문학과 시각예술의 결합을 통해 ‘읽는다는 것’과 ‘본다는 것’의 경계를 자유롭게 탐색하고 있다. 이 시적인 산문들을 읽으면서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남다르게 읽어 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먼 여행을 떠나도 눈과 마음에 담아 올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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