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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디자인은 세상을 어떻게 더 낫게 만들 수 있나”

중앙선데이 2010.07.24 23:04 176호 3면 지면보기
우리나라에 ‘에우로페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이탈리아의 ‘IED(Istituto Europeo di Design)’는 유럽에서 가장 큰 디자인 교육기관이다. 졸업작품전이 열린다는 초대장이 한 달 전쯤 e-메일로 날아왔다. 후배들의 실력은 어떨까? 졸업한 지 13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

세계의 미술학교를 가다 <1>유럽 최대 디자인 학교 IED - 밀라노 본교 학장 에마누엘레 솔디니 인터뷰

35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에도 파란색 뿔테 안경과 장난감 같은 보라색 플라스틱 손목시계를 찬 에마누엘레 솔디니(Emanuele Soldini) 학장은 졸업작품전 준비가 한창이었다. 권위적인 부분은 찾을 수 없던 그의 모습이 여전하다.

1987년 밀라노 IED를 졸업한 솔디니 학장은 친구들과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를 경영하다가 부학장에 임명되며 모교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2년 후 밀라노 본교의 학장이 됐다. 당시 자유계약으로 3년만 학장으로 일하자고 시작한 지 20년이 흘렀다.

그는 디자인이란 ‘생각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단지 시키는 일만 하는, 혹은 손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아니라 머리로 작업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뭔가를 만들기 전에 먼저 자신이 한 디자인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인지, 이 디자인이 과연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우로페오는 어떤 학교인가.
“66년 밀라노에 처음 문을 열면서 에우로페오는 당시 이탈리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론 중심으로만 가르치던 대학 교육과는 달리 아이디어를 내고 실제로 제작하는 등 실무 위주로 가르친 것이다. IED가 이탈리아에서 유일한 디자인 학교는 아니지만 가장 역사가 길고 규모도 가장 크다. 그리고 유일한 이탈리아 재단의 학교다. 마랑고니(Marangoni)나 도무스 아카데미(Domus Academy) 등 다른 학교들은 이미 미국 아카데미 그룹의 일원이 됐다. 우리는 최고의 디자인 관련 회사들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실질적 작업이 가능하게 교육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적인 산학 협력이 이뤄진다.”

-어떤 회사들과 산학 협력을 하는가.
“졸업작품전 카탈로그 마지막 페이지에 실린 이름들은 모두 IED와 공동 작업하는 회사들로 매우 많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떤 회사하고도 함께 작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 밀라노 주얼리 디자인과는 불가리(Bulgari)와 함께 협력 작업을 했고 내년에도 같이하기로 결정했다. 아르테미데(Artemide)와 같이 큰 회사도 내년에 우리와 산학 협력을 할 예정이다.”

-최근 패션디자인과의 졸업패션쇼를 봤다.
“졸업패션쇼에서 보는 것은 갓 졸업하는 아마추어의 평범한 작품들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최고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는 2월과 10월에 열리는 밀라노 패션 기간 중이다. 전체 에우로페오 재학생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선발된 3~4명의 학생들이 약 넉 달간 스폰서를 제공하는 패션회사에서 실제로 작업하고 봄·여름, 그리고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 기간에 유명 패션디자이너들과 함께 패션쇼에 참여한다. 이탈리아 보그 잡지사의 소차니(Sozzani) 사장도 우리 프로젝트에 도움을 준다. 2009년의 패션쇼는 베르사체가 협력 업체였다.”

-현재 디자인 관련 회사들이 선호하는 디자이너는 어떤 스타일인가.
“지난 10년간 컴퓨터를 사용한 새로운 기술은 배움터의 환경을 바꿔 놓았다. 특히 비주얼 아트 부문에 더 두드러진 변화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그래픽 부문에서 변화가 시작됐고, 그 후 사진·일러스트레이션 등으로 번졌다. 작업 환경과 방식은 뿌리에서부터 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디자인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 후로 직업은 더 세분화됐고 프로젝트들은 변화했다.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가 더 밀접해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회사들은 종합적인 만능 디자이너를 원한다. 세분화된 디자인과 전문직 디자이너를 요구하던 시대가 지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졸업작품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시각디자이너가 음악이나 인터넷디자인 등도 모두 커버한다. 회사들은 많은 분야의 디자인이 가능한 디자이너를 원한다.

그래서 그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들은 시야를 넓히고 다각적인 면에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 디자이너는 항상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디자인, 왜·어떤 디자인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무작정 기존에 없었던 디자인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은 졸업 후 어떻게 일을 시작하나.
“이 부분은 학생들에게 몹시 어려운 부분이다. 졸업 후 1~2년이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회사들은 매우 신중하게 디자이너를 선택한다. 졸업 후 견습사원 기간이 지나면 회사에 남지 못하는 학생이 많다. 그래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했고 이는 또 다른 일이 돼 버렸다. 회사들은 재능 있는 젊은 무명 디자이너와 일하는 것보다는 보장된 유명 디자이너의 사인이 들어간 디자인 제작을 선호한다. 우리는 이런 젊은 디자이너들을 도와줄 의무를 느낀다.
외국 학생들은 졸업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향이 강한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일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더 있지만 이탈리아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취업의 문은 언제나 좁다.

중요한 것은 우수한 학생들은 졸업 전에 이미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학생도 일을 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회사들도 인재를 발굴하기를 원하고, 그러니 원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기는 좀 더 쉽다. 학생들 중에는 자기 전공에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어도 디자인 관련 다른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다.”

-에우로페오 밀라노는 특히 패션과 주얼리 디자인과가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지난 10년간 에우로페오 학교의 규모는 매우 커졌다. 특히 패션학부는 그 자체로 클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여 2001년부터 분교로 분리했고 그 후로 학부의 아이덴티티, 즉 개성이 더 강해졌다. 밀라노의 패션학부에만 매년 350명 정도의 신입생이 입학하고 있다. 패션학부에는 패션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스타일리스트, 액세서리 디자인, 주얼리 디자인과 등이 있다.”

-외국인 학생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처음엔 일본·콜롬비아 등 몇몇 나라에서 유학을 왔지만 지금은 약 90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각 분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들의 비율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패션디자인 학부는 거의 50%가 외국인 학생이다.
조국을 떠나 수만 리 떨어진 곳으로 공부하러 가는 학생은 다른 사람들보다 상향 의지가 높은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생들의 입학은 학교 입장에서 봐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각국 학생들은 나름대로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손작업 재주가 아주 뛰어나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놀라게 한다. 그들의 세부 묘사나 작업 내용 등은 이전에 몰랐던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전체 학교의 교육 차원을 높인다.”

-이탈리아 유학을 꿈꾸는 한국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이탈리아 문화에 접근하는 것을 겁내지 마라.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것, 이탈리아인들만의 특별한 제스처의 사용,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것 등에 거리감을 두지 마라. 이탈리아에 와서 이탈리아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만 쓴다면 왜 이탈리아에 유학을 왔는가? 문화를 빨리 흡수할수록 적응하기 쉽다. 한국 공동체 생활만 하지 말고 이탈리아 사회에도 들어가라.

또 유학생들은 상황을 파악하거나 이해하는 방법이 이탈리아인들과 매우 다르다. 그들은 디자인을 할 때 단순히 손으로 잘 그린 그림을 보여 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디자인 안에 생각을 집어넣고 그것을 조리 있게 설명하고 발표하는 방법 등을 배워야 한다. 작품은 2D나 프로토 타입으로 보여 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생각을 말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밀라노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stella- b.com



김성희씨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무대로 활약 중인 보석디자이너다. 유럽을 돌며 각종 공연과 전시를 보는 게 취미이자 특기. 『더 주얼』(2009)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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