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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마약에 쓰러진 스모…NHK, TV중계 포기 ‘극약처방’

중앙선데이 2010.07.24 23:01 176호 4면 지면보기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말하려니 왠지 부끄럽다. 한때 스모 선수의 열혈 팬이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 한 하이틴 잡지에 “일본에서 아이돌보다 더 인기 있는 스모 선수”로 소개된 다카노 하나(貴乃花·사진)의 깜찍한(?) 외모가 맘에 들어 일본인 펜팔 친구에게 그의 기사가 실린 잡지나 사진을 선물 받아 고이 모아 놓곤 했다. 그러나 팬질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1992년 그가 누드집 ‘산타페’를 낸 여배우 미야자와 리에와 전격 약혼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 인기였던 두 젊은 스타의 결합은 일본에서 엄청난 화제였으나 두 사람은 결혼식 직전 파혼을 발표해 다시 한번 충격을 안겼다(다카노 하나는 결국 95년 아나운서 고노 게이코와 결혼했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뒤숭숭한 스모계

아무튼 그렇게 잊혀졌던 옛 스타를 최근 TV 뉴스에서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없이 슬림해진 외모 때문이었다. 선수 시절 키 1m83㎝에 몸무게 150㎏의 거구(그러나 당시에도 스모 선수치고는 왜소한 편이었다)였던 그는 2003년 은퇴 후 무려 70㎏을 감량했다 한다. 올해 초에는 38세라는 젊은 나이로 보수적인 일본스모협회의 이사로 선출돼 관심을 모았다. 그런 그가 야쿠자와 함께 회식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소식이 지난주 일본 뉴스의 헤드라인에 오른 것이다.

이 뉴스가 이렇게 크게 보도된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몇 년간 스모 선수들과 관련된 폭행·마약·도박·야쿠자 관련설 등의 추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엔 현역 선수들이 대마초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났고, 가혹한 훈련 때문에 어린 선수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몽골 출신의 ‘요코즈나’(스모의 최고 등급) 아사쇼류는 올해 초 한 음식점에서 술에 취해 일반인을 구타해 어쩔 수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스모계와 야쿠자의 결탁도 뿌리 깊은데, 최근에는 현역 ‘오제키’(요코즈나 다음 등급)인 고토 미쓰키가 야구 도박에 관계했고, 도박의 배후에 있던 야쿠자에게 비밀을 지켜 주는 대가로 돈을 건넸다는 사실이 발각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모협회가 내부 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려 65명의 선수 및 관계자들이 야구 도박이나 마작, 화투 등에 손을 댄 것으로 나타났다.

연일 불거진 추문으로 스모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자 일본 공영방송 NHK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바로 이달 11일부터 열리고 있는 나고야 스모대회를 생중계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NHK가 53년 스모 TV 중계를 시작한 뒤 57년 만에 처음으로 중계가 중단된 것. 이는 단순히 TV에서 스모를 보기 힘들어졌다는 의미뿐 아니라 스모협회 연간 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25억 엔의 방송권료 수입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씨름의 몰락이 TV 중계 중단에서 시작된 사실을 상기한다면 일본의 국기(國技) 격인 스모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 속에 TBS는 이번 시즌 스모를 소재로 한 드라마 ‘스모걸’의 방송을 시작했다. 인기 모델인 사사키 노조미가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한때 ‘스모 천재’였으나 실연을 당한 뒤 악착같이 살을 빼 모델이 된 여주인공이 폐부 위기에 처한 고교 스모부의 코치를 맡는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을 통해 젊은 층들의 스모에 대한 애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제작진은 포부를 밝혔지만, 이 판타지 같은 드라마가 일본 스모계를 위기에서 구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아 보인다. misquick@gmail.com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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