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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대신 손으로 그려낸 유화, 스크린 속에서 생명을 찾다

중앙선데이 2010.07.24 22:59 176호 4면 지면보기
러시아 유화 애니메이션의 거장 알렉산더 페트로프(53·사진)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제14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7월 21~25일)이 그의 대표작 5편을 상영하면서 특별 초청했다.

SICAF에서 만난 유화 애니메이션 거장 알렉산더 페트로프 인터뷰

그의 작품은 기름물감으로 그린 영화다. 유리판 위에 수천, 수만 장의 유화를 그리고 이를 하나하나 카메라로 찍은 뒤 필름을 이어 붙인다. 스크린에서 그의 유화는 그렇게 살아 움직인다.

1989년 직접 각본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연출까지 한 ‘소’(상영시간 10분)가 91년 뭄바이 영화제와 92년 히로시마 필름 페스티벌에서 잇따라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그는 일약 주목받는 감독이 됐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캐나다·일본·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노인과 바다’(99년·상영시간 20분)는 그에게 2000년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비롯해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자그레브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안겨 줬다.

남들은 유화 한 편을 완성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는 휘적휘적 잘도 그려 낸다. 그의 그림 속에는 러시아의 자연과 민초의 모습이 선연하게 살아 있다. 캔버스를 들고 민중 속으로 들어갔던 19세기 러시아 화가들과 맥이 닿는 대목이다.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1870~73)로 러시아를 술렁이게 만든 일리야 레핀(1844~1930), ‘총기병 처형의 아침’(1881) 등에서 역사를 캔버스에 고스란히 재현한 바실리 수리코프(1848~1916), 인물의 성격을 쏙 뽑아내 초상화로 그린 발렌틴 세로프(1865~1910)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꼽는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22일 오후 SICAF 전시장에서 휴대전화 사진과 사인 공세에 시달리고 있던 그를 만났다.

-화가가 될 생각은 없었나.
“사실 화가가 첫 직업이다. 14년간 미술을 공부했다(러시아의 역사 도시 야로슬라블에서 태어난 그는 72년부터 5년간 야로슬라프 예술학교에서 회화와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런데 어떻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됐나.
“원래부터 애니메이션을 생각한 것은 아니다. 지도교수가 영화계에서 미술감독으로 일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그래서 모스크바 영화학교에 들어갔는데 1년 정도 공부하다 애니메이션 학과로 옮겼다. 거기서 러시아 최고의 애니메이터로 꼽히는 이반 이바노프 바노(1900~87)를 스승으로 삼고 공부했다. 이후 표도르 히트루크(93), 유리 노르슈타인(69)에게도 많은 것을 배웠다.”

-왜 유화 애니메이션(오일페인팅 온 글라스 기법)을 택했나.
“몇 년간 다양한 방법을 찾았다. 인형과 컴퓨터 빼고 다 해 봤다.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내겐 유화가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초당 24장의 서로 조금씩 다른 그림을 그리는데.
“나는 초당 10장에서 12장을 그리며 연출한다. 박진감 있는 장면이 필요할 때는 더 그리기도 한다.”

-혼자 다 그리나.
“초창기 땐 혼자서 했다. 이번 ‘내 사랑’(2006년작·상영시간 26분)은 10여 명의 조수와 한 팀이 돼 만들었다. 내 아들(30)도 화가인데 17세 때부터 날 도왔다. ‘노인과 바다’ 때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했는데 당시 나와 교대로 자며 만들었다. 이젠 나보다 더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하.”

-어떻게 그리나.
“보통 A3만 한 크기의 유리판 2장을 사용한다. 밑에 있는 유리엔 배경을 그리고 위의 유리에는 사람을 그린다. 유리 크기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노인과 바다’ 같은 대작은 4장의 유리에 각각 그림을 그렸다. 아이맥스용으로 만들어진 만큼 바다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다.”

-손을 주로 쓴다고 했다.
“그렇다. 손의 터치감을 살리려 한다. 다만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같은 세밀한 것은 붓으로 그린다. 물감이 아직 촉촉한 상태에서 카메라로 찍고 물감이 마르기 전에 필요한 부분을 티슈로 지우며 수정한다.”

-멋진 그림이 바로 사라지는 게 아깝다.
“음, 물감이 마르기 전에 빨리 지워야(다음 장면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잘 나온 그림들은 따로 말려 벽에 걸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내 손에 남는 것은(잘된 그림이든 아니든) 마지막 그림뿐이다.”

-화가들은 한 장 그리면 되지만 당신은 무수히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20분짜리
‘노인과 바다’를 만들기 위해 4년간 2만9000여 장의 그림을 그렸다).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10장이든 100장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그림들이 이어져 움직인다는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림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나.
“그렇다. 아주 어렸을 때 내가 그린 그림이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인과 바다’ 성공 이후 변화가 많았겠다.
“그 작품 덕분에 외적으로 변화가 많아졌다. 유명해졌고 정부 지원으로 2000년 고향 야로슬라블에 스튜디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도 독립애니메이션 감독은 힘들지 않나.
“작품을 만들면 예술가조합에서 월급이 나온다. 그래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작업만 한다.”

-작품 속 주인공의 모델은.
“‘소’에 나오는 어린이는 내 아들이고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은 장인이다. ‘내 사랑’에 등장하는 총각과 처녀는 일반인 모델을 기용했다.”

-‘내 사랑’에서 16세 안톤의 첫사랑의 기쁨과 아픔, 좌절을 섬세하게 묘사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장면 전환도 좋았다.
“이반 슈멜료프의 장편 소설 『어떤 사랑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년의 이상이 무너져 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다. 그 모티브를 중심으로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다른 작품도 거의 문학작품이 토대다(‘소’는 러시아의 문호 안드레이 플라토노비치, ‘어리석은 인간의 꿈’(1992·상영시간 20분)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다).
“내가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전문 소설가가 쓴 글이 낫지 않겠나(웃음).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난 스크린에서 보여 주는 것이다.”

-당신의 작품은 러시아에서 많이 상영되나.
“러시아에서도 미국이나 일본 작품이 많이 상영된다. 그런 면에서 난 행운아다. 내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해 알고 있는가.
“미안하지만 별로 아는 게 없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알고 싶다.”

-한국에 대한 느낌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봤다. 김홍도라는 화가는 대단하더라.”

-신작은.
“한 시간짜리 장편을 기획하고 있다. 어떤 작품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역시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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