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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하는 신비로움, 하얀 목화꽃 몽실몽실 핀 듯

중앙선데이 2010.07.24 22:49 176호 8면 지면보기
1 다량의 탄산칼슘이 포함된 온천수가 빚어낸 신비로운 경관 덕분에 이곳은 고대 로마 때부터 황제들의 휴양지로 명성을 이어왔다. 2 히에라폴리스 대로를 따라 조성된 유적지와 온천수가 흐르던 수로. 3 로마 황제의 전용 관람석이 마련돼 있는 히에라폴리스 극장. 무대 주변과 기둥에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조각이 장식돼 있다. 총 45계단으로 이뤄진 극장은 관람객 1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4 거대한 인공 조형물을 연상시키는 파묵칼레 온천. 이곳에는 연꽃과 계단식 테라스를 연상시키는 야외 온천이 100여 곳이나 있다.
신성한 도시 히에라폴리스
흑해 연안 폰토스 출신 그리스 지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스트라본은 『지리지』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7세기께부터 신탁이 거행됐던 성스러운 고장이었다. 하지만 내가 히에라폴리스를 찾는 것은 신탁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다.”

사진작가 이형준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복합유산을 찾아서 <2> 터키 파묵칼레


기원전 2세기 페르가몬 왕국의 왕 에우메네스 2세는 아나톨리아 남서쪽 군사 요충지에 요새를 건설했다. 요새 도시가 완성되자 왕은 페르가몬 왕국의 창시자인 텔레포스 왕의 부인 히에라의 이름을 따 히에라폴리스라고 명명했다. 히에라의 그리스어 표기 ‘히에로스’는 신성함이란 뜻으로 이후 사람들은 히에라폴리스를 ‘신성한 도시’라고 불렀다.

파묵칼레 석회암 유적지와 주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마련된 호텔 야외 온천. 투숙객들이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기고 있다.
히에라폴리스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는 로마 지배하에 들어간 기원전 130년께다. 도시를 점령한 로마는 제일 먼저 남북을 관통하는 1㎞가 넘는 대로를 건설했다. 도로가 완성되자 이어 관공서와 목욕탕이 포함된 종합문화공간 테르메를 비롯해 광장·개선문·신전·극장 등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날 접할 수 있는 유적지는 로마 시대 때 세워진 것이다.

수천 년에 걸쳐 조성된 신비로운 야외 온천
혼자서 여섯 번, 가족과 두 번이나 찾은 파묵칼레 온천 유적지는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하얀 목화꽃이 핀 듯하다. 다량의 탄산칼슘을 함수한 온천수가 만들어 낸 신비로운 목화성을 찾을 때면 나는 언제나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오른다. 포장된 도로를 걷거나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경이로운 장관을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햇빛 그리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수시로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석회석 기둥, 바람에 흩날리는 은빛 온천이 연출하는 신기루는 가쁜 숨을 참아 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로마시대 때 이미 류머티즘·심장병·신장병·순환기 질환에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인정받았다. 그 명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급증하는 방문객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3년 동안이나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다. 온천 유적지는 높이가 100m, 길이는 2㎞에 달한다. 현재 자유 관람이 허용되는 석회암 지대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100여 개가 넘는 크고 작은 야외 온천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에는 수량이 풍부했다. 매시간 수백t에 달했던 수량은 온천욕은 물론이고 인근 마을에 식수와 농수로 공급되기도 했다. 카라하잇 마을과 라오디게아 마을로 물을 운반하던 수로가 여러 개 남아 있다. 내가 처음 찾을 때만 해도 온천수의 깊이가 20~40㎝에 달했다. 덕분에 어디서나 온천욕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량의 급격한 감소로 온천수 높이가 15~30㎝에 불과해 온천욕을 즐기기엔 좀 아쉽다.

로마 시대 때 건설한 목욕탕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방문객. 온천 바닥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로마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로마 황제와 귀족들이 사용했던 온천장
로마 귀족들은 휴식을 위해 수시로 히에라폴리스를 찾았다. 황제도 예외가 아니었다. 히에라폴리스를 찾은 황제는 히드리아누스를 비롯해 카라칼라·발렌스 등이 있다. 이들은 도시 건설에도 적극적이었다. 현존하는 다수 유적지가 이들에 의해 건설됐다. 로마 시절엔 목화성 언덕에 종합휴양시설인 ‘테르메’를 10여 곳이나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발생한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온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로마 때 건설된 온천 중 현재 일반에게 개방되는 온천은 대형 온천 하나뿐이다. 로마 카라칼라 욕장에 비교할 수 없지만 황제와 귀족들이 사용하던 온천답게 바닥에는 로마 유적이 흩어져 있다. 연한 연두색을 띤 온천수는 섭씨 36도. 체온과 흡사한 온천수는 긴장된 근육과 심신에 축적된 피로를 푸는 데 그만이다.

파묵칼레 온천은 지금까지 본 온천 중 최고였다. 분위기와 온천수만 따지면 너도밤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일본 온천이나 캐나다 로키산 온천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2000년이란 유구한 세월을 뛰어넘어 로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온천은 이곳이 유일하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유적박물관
야외 온천이 내려다보이는 유적지 언덕엔 신전·도로·광장·대극장·휴양시설·비잔틴 건축물이 산재돼 있다. 세상의 길이 로마로 통했던 당시 히에라폴리스에는 넓은 길을 따라 수많은 건물이 세워졌다. 커다란 사각형 대리석이 깔린 대로 북쪽 끝자락에는 도미티아누스 개선문이 있다. 세 개의 아치로 이뤄진 개선문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등을 둘러본 나에게는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나 도미티아누스 개선문은 소아시아 지역에 건설된 개선문 중 최대 규모로 지금도 당당하게 방문객을 맞고 있다.

히에라폴리스 유적의 백미는 동남쪽과 북쪽에 위치한 극장과 무덤 유적지 네크로폴리스다. 로마 황제와 귀족들은 온천으로 심신의 피로를 푼 뒤 저녁이면 극장에서 여유롭게 문화생활을 만끽했을 것이다. 1만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찾을 때 나는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한다. 45층으로 이뤄진 계단 정상에 서면 극장과 유적지는 물론 멀리 주변 마을과 자연경관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도시 북쪽에는 원래 1만5000기가 넘는 무덤이 있었다. 이 거대한 무덤도 지진으로 90% 이상 사라지고 현존하는 무덤은 1200기 정도다. 헬레니즘 고분을 필두로 정교한 로마식 석관묘, 둥근 천장이 있는 기독교식 무덤, 작은 비석을 세워 놓은 아랍 무덤이 함께 흩어져 있다.

네크로폴리스 무덤군은 로마 체르베테리 무덤 지역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를 영유했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잠들어 있는, 이 같은 ‘문화박물관’은 흔치 않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터전
여덟 번이나 파묵칼레를 찾는 것은 신비로운 경관과 유적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들과 벗을 하지 못했다면 아마도 서너 번 방문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아담한 호텔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무스타파, 토산품 가게를 운영하는 헤팟, 관광업에 종사하는 코셈, 카펫 공방을 운영하는 바샥 등이 그들이다.

처음 터키를 찾았던 90년 겨울 나는 이스탄불에서 파묵칼레를 둘러보기 위해 장거리 버스에 올랐다. 예나 지금이나 장거리 버스가 도착하는 파묵칼레의 관문 데니즐리 터미널에는 손님을 유치하려는 숙박업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무스타파는 20년 전 데니즐리에서 나에게 호객 행위를 했던 친구다.

가업인 호텔업에 종사하던 무스타파는 내가 원하는 장소를 안내해 주는 것에서 시작해 통제구역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주기도 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카펫을 제작하는 공방 탐방과 촬영도 도와줬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파묵칼레와 인근 도시를 찾을 때면 늘 그의 집에 짐을 푼다. 아, 오늘은 무스타파에게 메일이라도 한 통 보내야겠다.
* 다음 호는 페루의 마추픽추를 찾아갑니다.

<여행 메모
가는 길: 인천에서 이스탄불까지는 직항 편을 이용해 10시간이면 갈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파묵칼레까지는 데니즐리를 경유해 가야 한다. 이스탄불→데니즐리, 버스로 10시간, 데니즐리→파묵칼레 버스로 20분 소요.

※온천 이용: 오전 9시~오후 6시, 입욕 요금과 수영복을 준비해야 한다.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 동안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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