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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지근 애호박 편수, 향이 상큼한 오이 편수

중앙선데이 2010.07.24 22:43 176호 10면 지면보기
혹시 ‘편수’란 음식 이름을 아시는지. 이 말을 금방 알아듣는 사람은 경기도 북부 지방이나 황해도 출신일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도 먹는 것에 거의 목숨을 걸 정도로 집착하는 개성 사람들은 그 자손까지 이 말을 대개 알고 있다. 나의 조부모와 아버지가 개성 부근에서 살다 식민지 시대에 서울로 이주했으니 ‘범 개성 출신’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오십 내외인 내 주변 사람 중 부모가 개성 출신인 사람들은 모두 분단 이후 세대이니 개성은 근처에도 가 보지 못했지만, 묘하게 ‘편수’란 말은 모두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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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수란 채소를 많이 넣은 만두를 일컫는다. 우리나라 만두는 대개 신김치와 숙주나물, 두부와 돼지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김치만두’가 대표적이다. 평안도 북쪽으로 갈수록 좀 더 맛이 심심한 것을 좋아해 만두도 김치 대신 배추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편수는 두부를 넣지 않고 애호박·오이·부추·표고버섯 같은 채소를 많이 넣은 만두로, 두부 넣은 만두의 부드러운 맛에 비해 맛이 깔끔한 게 특징이다.

만두란 원래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중부 이북 지방에서만 해 먹으며, 경상도나 전라도 같은 남쪽 지방에서는 해 먹지 않았다. 전라도 출신인 우리 엄마는, 만두라는 것을 처음 먹어 본 게 결혼하기 전 선을 뵈러 예비 시댁에 들렀을 때였다고 한다. 할머니로서는 맏며느리 감을 처음 보는 자리여서 뭔가 별식을 해 주고 싶어 만두를 했겠지만, 전라도 처녀인 우리 엄마는 난생 처음 먹어 본 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첫선 보이는 밥상머리에서부터 깨작거릴 수밖에 없었단다. 속으로 “그냥 찬밥 한 덩이 주시지. 물 말아 김치랑 먹으면 개운하겠구먼…” 했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경상도 출신인 남편 역시 만두는 좋아하지 않는다. 부산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 온 내 남편은, 서울에 와서 먹어 본 분식집 만두가 최초의 만두 경험이란다. 그래서 남편은 값싼 무를 많이 넣어 만든 분식집 만두가 가장 만두다운 만두라고 우긴다. 만두 맛도 모르는 이런 남편이랑 사느라고 나는 결혼 후 제대로 만두를 해 먹지 못했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는 만두를 나 혼자 먹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돌아다니다가 ‘개성만두 전문’이라 써 붙여 놓은 음식점에는 꼭 한 번 들러 맛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그중 두어 군데를 빼놓고는 모두 ‘아니올시다’였다.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원하는 맛은 아니었다. 서울 용두동의 그 유명한 개성집이 우리 친정집 만두 맛과 가장 비슷했고, 석관동 어느 작은 분식집에서 사 먹은 김치만두 역시 내가 원하는 맛이었다. 테이블 두어 개 놓고 김치찌개나 비빔밥 정도를 파는 그 분식집에서 그토록 훌륭한 만두가 나올 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만두 맛을 보고 경북 사투리를 쓰는 주인 아주머니한테 “아랫녘 분이 어떻게 이런 개성식 만두를 하세요?”라고 묻자 그 아주머니는 씨익 웃으시며 “남편이 개성 사람이에요. 평생 개성 출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하신다. 어쩐지, 만두 맛이 다르더라!

우리 친정집에서는 겨울에는 김치만두, 여름에는 애호박 편수를 몇 번씩 해 먹었다. 겨울에는 김장김치가 넘쳐나고, 여름에는 애호박이 지천이니 딱 제철에 맞는 음식인 셈이다. 가끔 부추나 오이로도 해 먹었으나, 주로 해 먹는 것은 값싸고 손이 가장 덜 가는 애호박 편수였다. 부추는 다듬기가 시간 걸리고, 자잘한 오이 써는 것보다 애호박 썰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애호박을 채 썬 것과 양파 다진 것을 소금에 절여 꼭 짠다. 돼지고기 간 것을 섞고 마늘 다진 것을 섞으면 소가 완성된다. 신선한 채소 맛을 즐기려면 고기는 너무 많이 넣지 말아야 한다. 구미에 따라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넣어 느끼한 맛을 줄이기도 하고, 후춧가루를 넣기도 한다. 또 더 고소한 맛이 좋으면 참기름을 넣어도 좋다. 우리 친정집은 이것 모두를 넣는 방식이고, 내가 혼자 해 먹을 때는 돼지고기 냄새를 잡기 위해 후춧가루만 넣어 깔끔하게 만든다.

만두피는 김치만두의 만두피와 동일하다. 제품화된 것을 사다 쓰면 편하기는 하지만 녹말가루를 많이 섞어 얇게 만든 그것은 만둣국에 들어가면 힘없이 풀어진다. 아무래도 쫀득한 제맛을 내려면 중력분 밀가루를 사다가 집에서 반죽하는 게 최고다. 요즘 ‘찰밀가루’라고 이름 붙은 제품들이 있는데, 이것은 일반 중력분에 비해 차져 만두피를 하면 다소 덜 부드럽고 두껍게 느껴진다. 만두 만드는 과정에서도 너무 들러붙어 힘들고, 먹을 때 만두피에서 소가 쏙 빠져나와 따로 노는 경우가 많다. 괜히 신제품에 혹하지 말고 그냥 옛날 하던 대로 하는 게 상책이다.

만두 만드는 법도 김치만두와 동일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편수를 만들 때는 만두피 양끝을 동그랗게 구부려 붙이지 않고 반달 모양으로 남겨 두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음식 책에 나온 편수 사진을 보면 만두피 네 귀퉁이를 맞춰 네모난 모양으로 만든 만두 사진들이 많다. 친정집 어른들은 이런 것을 보면 황해도 메밀만두 방식이라고 하셨다. 메밀은 밀에 비해 찰기가 적어 밀가루 만두피처럼 늘이고 구부리면서 만두를 빚기가 힘들기 때문에 나온 모양이라는 것이다.

김치만두가 두부와 김치의 환상조합의 맛이라면, 애호박 편수는 제철 호박과 양파의 달착지근한 맛으로 먹는다. 오이 편수도 오이 다진 것을 절여 넣을 뿐 다른 것은 애호박 편수와 동일하다. 오이를 만두소로 쓴다고 하면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짓지만 아작아작하는 식감과 익힌 오이의 상큼한 냄새가 아주 매력적이다.

그러니 이런 편수에는 다른 재료들을 과도하게 섞지 않는 것이 좋다. 대개 음식점에서 파는 만두들은 애호박에 두부를 함께 섞거나 애호박과 부추 등을 뒤섞어 넣기도 하는데, 바로 그 지점부터 맛이 무너지는 것이다. 특히 겨울 김치만두를 연상시키는 두부를 편수에 넣으면, 여름 채소의 상큼한 풍미가 뚝 떨어진다. 만두가 상큼하다고? 물론이다. 그게 바로 편수의 맛이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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