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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1932.7.20~2006.1.29)

중앙선데이 2010.07.24 22:38 176호 10면 지면보기
도쿄대와 뮌헨 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에서 수학했다.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집단 플럭서스(Fluxus) 일원으로 활동. 1963년 독일 부퍼달 파르니스 화랑에서 개최한 첫 개인전 이후 비디오 아트를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77년 위성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발표했다. 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2000년 금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왼쪽 사진은 92년 가을 경주를 찾은 백남준. 오른쪽 사진은 뉴욕 자택에서 전자오르간을 치고 있는 모습.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 돌아가신 지 내년 1월이면 벌써 5년이다. 지난 20일은 백 선생님 생신이었다. 올가을부터 일본과 미국에서 5주기 추모전을 하기 위해 선생님 사진을 정리하다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르간을 치던 사진 앞에서였다. 당시 선생님은 나를 옆에 앉히고 ‘울밑에선 봉선화야’를 불러 주셨다. 고국에 대한 사랑과 향수가 전해졌다. 예술적 카리스마로 범접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백 선생님은 이렇게 소년 같은 순수함과 따뜻한 가슴이 있는 ‘오빠’ 같은 분이었다.

[PORTRAIT ESSAY] 이은주의 사진으로 만난 인연

마지막 전시가 열렸던 2000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한국에서 온 여자 사진가가 내 작품을 찍을 수 있도록 부탁한다”는 친필 서신을 들고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개장 시각인 오전 9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선생님은 장례식 때도 나를 다시 놀라게 했다. 장례식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은주, 사진 예쁘게 찍어 줘” 하시던 목소리와 웃음이 아직도 들려오는 듯하다.



1981년 제30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진부문 대상 수상. 국내외에서 개인전을 20여 회 했다. 저서로 사진집 『108 문화예술인』 『이은주가 만난 부부 이야기』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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