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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이에게 뭘 들려줄까

중앙선데이 2010.07.24 22:15 176호 5면 지면보기
‘아름답다’고 느꼈던 첫 음악을 떠올려 보세요. 저는 중학교에 갓 입학해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들었습니다. 1~12월 제목이 붙은 12곡 작품집입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등굣길 버스 안, 제 휴대용 CD플레이어 안에서 돌던 음반은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였습니다. 러시아 민속축제에나 쓰일 것 같은 선율이 촌스럽다 싶으면서도 자꾸 맴돌더군요. 건반 앞에 앉아 있을 리히터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고, 서정성이 확대된 부분에서는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각 작품에 붙은 러시아의 시를 찾아봤습니다. 푸시킨ㆍ톨스토이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경험이었죠.
그다음에는 우연히도 한국 가곡이 좋았습니다. 소프라노 조수미가 내놓은 ‘새야 새야’ 앨범은 지금 들어도 명반입니다. 그의 입에 착착 붙었다 나오는 우리말 발음이 차집니다. ‘동심초’의 노랫말은 이해가 될 듯 말 듯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건드리고 지나갔습니다. 조수미의 앨범을 사 모으고, 윤이상의 가곡까지 찾아보게 됐죠.

조금 더 철이 들어서는 거대함과 소박함이 맞서는 협주곡에 매료됐습니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오는 불협화음이 마음속 어딘가를 시원하게 해 줬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칼바람을 맞은 듯 기분이 짜릿해 반복해 들었습니다.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가 피아노 두 대와 타악기를 위해 쓴 협주곡은 천연덕스럽게 흐르는 폭력성이 좋았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음악을 늘어놓은 이유는 얼마 전 “아이에게 뭘 들려줄까?” 하는 질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됐다는 증거죠. 공연장에도 여름이 왔고, 대부분의 연주자가 잠시 쉬고 있습니다. 대신 어린이ㆍ청소년을 위한 음악회가 넘쳐납니다. 한 공연 예매 사이트에서 ‘청소년 음악회’로 검색을 하니 300건이 넘는 결과가 나오네요. 프로그램을 살펴봤습니다. 엘가 ‘사랑의 인사’, 비발디 ‘사계’처럼 ‘쉬운 클래식’의 대명사가 된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음악의 ‘상식’을 쌓아 주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 아이의 감성과 ‘접속’할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법’(1925년작)은 다소 생소한 현대적 사운드로 어린 청중을 잘 앉아 있게 하더군요. 쉽고 예쁘고, 이미 유명해진 음악이라야 아이가 듣기 편할 거란 생각은 오히려 어른의 편견일지도 모릅니다.

음악에 기억이 함께하도록 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스토리가 있어야겠죠. 슈만이 자신의 세 딸을 위해 쓴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을 들려주며 음악가의 생애에 대해 얘기해 보는 건 어떨까요? 드뷔시의 ‘어린이 세계’ L.113 또한 작곡가가 끔찍이 아낀 딸에게 들려주려 쓴 작품이라 믿을 만합니다. 차이콥스키의 ‘사계’처럼 음악과 문학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작품도 좋겠죠. 오늘 소개한 다양한 음악과 함께 여름 무사히 나길 기원합니다.


A 이야기 있는 음악이 좋지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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