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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대학가 탈이념 … ‘보수 + 실용’모임 뜬다

중앙일보 2010.07.24 02:03 종합 8면 지면보기
“잘못된 주장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대학 문화를 바꾸고 싶습니다.”



대학생 웹진 ‘바이트’의 편집장 신보라(22·명지대 국문과 3학년)씨는 지난 16일 “보수를 지향하는 오프라인 신문을 만들 계획”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신씨는 이날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편집국 사무실에서 창간 TF팀 회의를 했다. 이날 모인 6명의 대학생은 최근 천안함 사건 등에 대한 대학 여론을 분석했다. “근거 없는 주장이 정설처럼 신봉받고 있다” “합리적 토론문화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 편집장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이 만드는 웹진은 시장경제 지향, 북한 인권 실현 등을 편집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신 편집장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서울 지역 대학생들과 함께 바이트를 만들었다. 9월부터 신문을 창간해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웹진 ‘바이트’ 기자들이 19일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의 편집국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촛불집회 문제점에 목소리 내야”=이처럼 보수를 표방하는 대학생 모임과 활동이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다. “이념적 편향성을 극복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이들이 내세우는 모토다. 대학가의 변화와 맞물려 1980~90년대 대학생의 의식과 문화를 이끌었던 총학생회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다원화되고 실용적인 대학생들의 목소리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일 ‘뉴(New) 또 다른 여론의 시작, 보수 성향 대학생 연합’(대학생연합)이란 단체가 만들어졌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95명의 대학생이 주축이다. 김건우(20·가톨릭대 국제학부 1학년) 회장은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에는 무조건 반대하려 드는 모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 광화문에서 폭력적 시위를 비판하는 사진전과 서명운동을 했는데, 전단지를 던지거나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원주의’에 쇠퇴하는 총학생회=지난 5월 초 이화여대에서는 총학생회의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가입이 좌절됐다. 당시 교정 곳곳에는 ‘한대련은 민주노동당과 관련이 깊다. 총투표로 결정하자’는 대자보가 붙었다. ‘총학의 한대련 가입에 반대하는 모임’(한대련 반대 모임)이 만든 것이었다. 전국 73개 대학 총학생회가 가입한 한대련은 등록금 투쟁 등 비교적 대중적인 학생운동을 표방하는 단체였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이다.



서울대는 올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총학생회 자체를 구성하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서울대 임시 전체학생대표자 회의는 의결을 위한 최소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서울대는 지난해 11월과 12월, 올해 4월 등 2010년도 총학 선거를 세 번이나 치렀다. 그러나 선거 스캔들과 투표율 미달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김예란(21·여·식품생명공학 전공) 대의원은 “학우들 상당수가 총학이 없어도 자신들에게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강대에선 지난해 말 연장 투표 끝에 투표율이 37%에 그치자 선관위가 투표율 하한선을 재조정했다가 학칙 위반 논란이 벌어졌다. 서강대는 올해 2월 재선거를 치렀다. 건국대·고려대·성균관대·이화여대 등도 재선거를 치른 끝에 겨우 총학을 꾸렸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 대학가에 다원주의가 자리를 잡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청년 실업 시대에 이념은 설 자리를 잃었다. 대학생은 자기 판단을 더 신봉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입장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김원배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대학생들이 실용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진입했다”며 “열악해진 환경에 처한 대학생들은 스스로에게 유리한 이념과 가치를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장은 “좌우 대립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보수적인 변화로 보이지만 정작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글=정선언·김효은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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