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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Focus] 구보타 시게코 백남준의 부인

중앙일보 2010.07.24 00:25 주말섹션 11면 지면보기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73)


암 걸린 나에게 남준이 말했어요‘우리 결혼하자, 당장’

시대를 풍미한 비디오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 선생의 부인인 일본인. 우리가 알고 있는 구보타 여사에 대한 지식은 대충 이 정도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14점에 달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예술가 구보타’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적다(MoMA는 백남준의 작품도 14점 소장하고 있다). 그뿐이랴. 구보타가 미술학도였던 소녀 시절, 백남준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훌륭한 예술가가 되어 이 남자를 잡고 말겠어”라고 다짐했으며 실제로 그 꿈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도 아직 귀에 설다.



뉴욕 웨스트베스 작업실에서의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톰 하르 제공]


이 모든 이야기를 속속들이 담은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이순)이 나온 건 그래서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백남준’이라는 꿈을 향해 돌진해 그 꿈을 이루고 백남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 당당한 여성 예술가 구보타의 이야기를 담았다.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시게코, 젊었을 때 당신은 내게 최고의 연인이었소. 이제 늙으니 당신은 최고의 어머니, 그리고 부처님이 되었구려”라고 쓴 메모 등 흥미로운 자료도 그득하다. 구보타 여사가 “나의 친구”라고 부르는 본지 남정호 국제부장과 공동 집필했다. 출판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구보타 여사를 숙소에서 만났다.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지만 눈은 초롱초롱했고 말은 다정다감했다.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아닌 ‘인간 구보타 시게코’를 소개한다.



글=전수진 기자



“남준은 나의 ‘욘사마’”

사진=박종근 기자
● 책 내용이 진솔합니다. 출판을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지요.



“내가 올해 일흔셋이에요. 남준이 (2006년에) 떠난 나이지. 빨리 뭔가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쓰면서 많이 울었지. 내 인생이 이랬구나. 어떤 친구들은 책 내지 말라고 했어요. 책 내용이 너무 솔직해서 나와 남준의 위신이 사라질 거라나 뭐라나. 하지만 우린 예술가인걸. 위신이 어디 있어. 남준의 지론이기도 하지만 예술엔 고급·저급의 구분이 없어요. 이 책은 내게 남준과 내 인생의 역사를 담은 소중한 박물관이에요.”



● 백남준 선생과의 첫 대면은 1964년 6월 요미우리신문 기사였지요.



“‘파괴의 미학’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이 남자가 어찌나 영화배우같이 잘생겼던지(웃음). 남준은 나에게 ‘욘사마(한류스타 배용준의 일본 애칭)’였어요. 어떻게든 내 남자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기사를 오려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보며 기도했지요. 만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바란다면, 기회는 반드시 와요. 사랑의 기회이든 성공의 기회이든.”



● 여사는 기회를 기다린 게 아니라 직접 만들었지요. 백남준 선생 도쿄 공연 관람 후 찾아가 함께 차를 한잔 하자고 하셨다면서요.



“기회는 누군가 거저 주는 게 아니에요. 포기하지 말아야죠. 내 기회는 내가 만들었어요. 그게 내 인생을 만들었고. 친구에게 ‘나도 유명한 예술가가 돼서 이 남자를 꼭 잡을 거야’라고 했었어요. 남준은 강한 여성을 좋아했어요. 그 뒤 약 1년 뒤 남준이 도쿄에서 전위예술 퍼포먼스를 했어요. 공연 후 용기를 내 친구들과 무대 뒤로 갔어요. ‘차나 한잔 하자’고 제의했지요. 그도 흔쾌히 응했지. 그런데 남준도 같은 해에 내 전시를 보러 온 적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뉴욕에서 만났을 때 ‘당신 전시, 참 좋았다’고 말해줘 알았어요. 남준은 ‘겹겹의 우연이 우리의 인연을 만들었다’고 말하곤 했죠.”



‘비디오 아트 커플’, 뉴욕서 맺어지다



● 뉴욕으로 이주할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앞에서 언급한 내 전위미술 전시회를 보수적인 일본 미술계는 외면했지요. 답답했어요. 예술가로 성공하려면 뉴욕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현대무용을 한 이모 덕에 오노 요코며 전위예술 모임이었던 플럭서스 운동 동료 예술가들도 알고 있었고요. 64년 7월 미련 없이 비행기를 탔어요. 남준도 뉴욕으로 왔고, 자연스레 재회했어요. 그러다 어느 여름, 자연스레 연인이 됐고 곧 ‘남준의 실질적 아내’로 불리기 시작했지요.”



● 책에서 당시 백남준 선생은 피아니스트 샬럿 무어만과 순회 공연을 많이 다녔다고 하셨는데, 투명한 비닐만 몸에 감고 무대에 오르는 퍼포먼스 등이 많았다지요. 질투 안 나셨어요.



“왜 질투를 해요? 내가 그 여자보다 더 똑똑한데. 샬럿도 훌륭한 예술가였지요. 하지만 난 샬럿처럼 유명해지기 위해 옷을 벗고 술을 마시고 무대에 서진 않았어요.”



● 그러다 여사도 백남준 선생의 친구이기도 했던 유대인 작곡가 데이비드 베어먼의 청혼에 응하셨죠.



“질투는 하지 않았지만 외로웠어요. 가난한 예술가이니 생활은 어렵고, 언제까지 남준을 기다려야 하는지 괴롭기도 했어요. 남준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천재였지요. 사랑은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고. 그러다 보니 나도 지쳤었죠. 그때 데이비드가 계속 청혼을 해왔고, 남준에게 물었더니 ‘그래, 데이비드와 결혼해. 난 결혼 같은 것과 맞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하더군요. 안타까움 속에 남준을 떠났죠.”



● 그러다 3년 만에 이혼하고 돌아오셨는데요.



백남준의 개인전 ‘일렉트로닉 아트 3’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존 레넌, 오노 요코, 백남준, TV 엔지니어 아베 슈야(왼쪽부터). [아베 슈야 제공]
“시댁과 갈등이 있었어요. 일본인과 독일인을 호전적이라며 내 앞에서 대놓고 욕하는 시아버지와 특히 사이가 안 좋았고. 결국 떠났어요. 그러곤 당장 남준에게 전화를 걸었죠. ‘당신이 있는 곳으로 당장 가겠다’고. 남준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래, 시게코 마음대로 해’라고 했죠. 남준의 곁으로 돌아간 밤, 긴 여행에서 돌아온 듯 아주 편하게 잘 수 있었어요. 남준과 저는 지그재그로 먼 길을 돌아온 셈이에요.”



슬픈 결혼식



● 그러다 76년 뉴욕 시청에서 결혼식을 올리셨어요. 백남준 선생이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바꾼 계기는 무엇인지요.



“아기를 갖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가 생기질 않아 병원엘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어요. 자궁암이라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고요. 엄청난 수술비·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짐을 싸는데 남준이 오더니 ‘시게코, 우리 결혼하자. 당장!’이라고 하는 거예요. 일순 ‘당신 결혼 퍼포먼스를 하려고요?’라고 물어볼 뻔했어요. 그런데 남준이 설명하길 결혼하면 자기가 들어놓은 보험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괜히 부담주기 싫어서 거절했지요. 하지만 남준은 ‘시게코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야. 난 시게코가 떠나길 원치 않아. 난 아이 가질 생각도 없어. 예술 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란 걸’이라고 하더군요. 바로 다음날 식을 올렸어요.”



● 원했던 결혼이지만 행복하지만은 않았겠군요.



구보타 시게코의 작품 ‘비디오 체스’에 알몸으로 나온 백남준과 구보타. [구보타 시게코 제공]
“우울했죠. 하지만 남준은 덜컥 유부남이 됐다고 신기해하는 친구들에게 끝까지 의료보험 얘길 안 꺼냈어요. 내 자존심을 지켜주려 그랬던 것 같아요. 고맙죠.”



예술가 구보타



● 여사의 작품세계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마르셀 뒤샹에게서 영감을 받은 ‘계단을 걸어오는 나부’ 등이 유명한데요. 유명 미술잡지 ‘아트 인 아메리카’에 백남준 선생보다 먼저 다뤄지셨죠.



“남준은 실험정신이 투철한 천재였어요. 그만큼 평론가들이나 대중이 소화하기에 난해한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난 조각을 공부했고, 예술품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세련되게 다듬을 줄 알았어요. 그런 점이 좀 달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린 서로에게 아게만(あげまん·‘남편을 잘 되게 해주는 여자’란 뜻)이었다는 거죠.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도 많고.”



●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요.



“남준이 96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10년간은 돌봐주느라 바빠서 작품활동을 못했지요. 하지만 이젠 돌볼 남편도 없고. 나에겐 예술밖에 없어요. 이젠 시간도 많고. 맘껏 그림을 그리고 맘껏 조각할 거예요. 내년 6월쯤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 계획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 뇌졸중으로 두 분 다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뉴욕 웨스트베스 작업실에서의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톰 하르 제공]
“남준은 쓰러지고 나서 세상은 너무 불공평하다고 했어요. 하지만 몸의 왼쪽이 마비되고 오른손으론 자유롭게 작업을 하고 언어감각을 관장하는 우뇌도 무사해서 말하는 데 불편도 덜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오히려 365일 24시간 남준을 온전히 내 남자로 둘 수 있던 시간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아직도 남준이 죽은 건 이해가 안 돼요. 난 사람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삶이 이렇게도 멋진데. 하지만 삶은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고, 그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지. 죽으면 남준을 다시 만날 거라 믿어요. 만나면 또 예술에 대해 신나게 얘기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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