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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공정거래 속에 담긴 낙농 농민의 아픔

중앙일보 2010.07.24 00:17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도실용 서민정책의 일환으로 생필품 물가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물가안정은 서민을 위한 중요한 정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제값 못 받는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피해가 오고, 다시 그 피해가 서민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뒷배경에는 무관심한 듯해 왠지 씁쓸하다.



지난해부터 공정거래위원회는 우유 시장 전반에 걸쳐 불공정 거래 조사를 전방위로 실시하고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데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유(乳)업체에 대한 수백억원의 과징금 부과가 회자하면서 유업계와 낙농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저장성이 없는 우유는 목장에서 매일매일 짠 젖을 가지고 우유 제품을 생산한다. 그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고스란히 버려야 한다. 단기적으로 시장의 수요에 따라 생산을 줄였다 늘렸다 할 수 없다. 더구나 생산은 불특정 다수의 낙농 농민에 의해, 가공은 소수의 유업체에 의해 이루어짐에 따라 낙농 농민은 절대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낙농산업이 지니는 이 같은 특성으로 인한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를 시정하기 위해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준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수단으로는 농민의 거래교섭력 유지, 수급 안정을 위한 계획생산제 실시, 확고한 국경보호 조치 등을 꼽을 수 있다.



낙농업계와 유업계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상호 불가분의 관계다. 유가공업계의 타격은 곧 낙농 농민의 피해로 귀결되는 취약한 구조다. 무엇보다 공정거래의 미명하에 유업체의 경영손실과 소비자 불신에 따른 소비위축은 결국 수입 유제품과 힘겨운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낙농 농민에게 생산감축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이다. 또한 어느 부분을 담합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유 시장 특성을 고려해 온 농림부처의 낙농정책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유는 제품가에서 원가비중이 높은 식품이지만 지금 시장에서는 물값보다 싼 가격에 판매되기까지 해 그 피해는 낙농 농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우유 시장의 특성과 약자인 농민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정위가 결정할 경우 낙농 농민들에게 또 다른 정부 불신과 정책 불신의 씨앗을 낳게 만들 것이다.



공정거래의 출발점은 도덕성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산업적 특성과 사회적 약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결과는 선량한 약자의 희생으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정책당국이 상식적으로 낙농업계가 이렇게 술렁이는 이유를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바란다. 거기엔 소위 공정거래의 두 얼굴, 즉 사회적 약자인 낙농 농민들의 예견된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낙농 농민들의 모습을 그저 어느 영화 속의 부유한 목장주로만 상상한다면 절대 오산이다. 대형 마트에 한번 가 보라. 그리고 진열장의 우유 하나에 하나 더 얹어 끼워 파는 배불뚝이 우유에 서려 있는 어느 시골 목장의 고단한 낙농 농민의 애환을 돌아보라.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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