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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이문열 연재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1-3

중앙일보 2010.07.24 00:15 주말섹션 10면 지면보기
동네 아이들이 갑작스레 한 패거리가 되어 드러내는 그 악의에 금발의 여자애도 움찔 놀라는 듯했다. 그러지 않아도 큰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갈색 눈동자를 온전하게 드러내 보이며 그런 동네 아이들을 마주 쳐다보았다. 가만히 훔쳐보니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분해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런 일을 처음 겪어 당황하는 듯한 기색은 없었다. 이내 그 여자애도 동네 아이들 못지않게 진한 부산 사투리로 받아쳤다.



“가스나들아, 또 그 소리가? 내가 왜 미국 년이고? 그라고 가기는 어디로 가? 못된 가스나들, 잘 놀다가 뭐든지 저그 하자 카는 대로 안 하믄 미국 년, 양년 카며 사람 야코나 죽일라 카고….”



그러고 보니 금발의 여자애가 쳐다보고 있는 것도 동네 아이들 모두가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있는 한 여자애였다. 그리고 그 눈길에 담긴 것도 동네 아이들의 부당한 따돌림을 억울해하고 분해하는 감정만은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그때껏 아무 말 않고 있는 그 여자애에게 걸고 있는 어떤 간절한 기대와 불안이 뒤엉킨 긴장 같았다.



금발 여자애가 그렇게 반발하자 앞서 그 애를 몰아세우던 동네 아이들도 잠깐 멈칫하며 그 금발머리와 함께 자기들 속에 있으면서도 말이 없는 그 여자애를 돌아보았다. 그 바람에 나도 갑작스러운 호기심으로 그 소녀를 바라보았다. 까무잡잡하고 동그란 얼굴에 야무져 보이는 눈매를 가진 같은 또래의 소녀였다.



한꺼번에 여럿의 눈길을 받게 되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그 소녀였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소녀는 이내 야무져 보이는 눈길을 치뜨며 차게 내뱉었다.



“맞다. 혜련이, 이 가스나, 니가 미국 년 아이믄 누가 미국 년이고? 오늘 동두깨비 니 혼차 안고 앉아 심술 떤 것도 자들 말이 다 맞고….”



무슨 비정한 선고와도 같은 말투였다. 그러자 혜련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가진 금발의 여자애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으로 그 아이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풀썩 주저앉듯 땅바닥에 앉더니, 마음 상한 그 나이의 한국 여자아이들이 흔히 그러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 우는 시늉을 했다. 일시에 기세가 되살아난 동네 아이들이 그런 그녀를 둘러싸고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몰아세우며 놀려댔다. 거 봐라, 이 양년아, 니가 우쨌으믄 자까지 그카겠노? 이 스루메(오징어)같이 복장 시커먼 미국 년아….



나는 그 이국적인 생김의 소녀가 빠진 곤경을 보며 왠지 가슴이 짠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멍하니 보고 있는데, 잠시 주저앉아 울고 있는 것 같던 금발머리 아이가 발딱 일어나더니 몇 달음 안 되는 저희 집 대문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여전히 플라타너스 등걸에 기대선 채 눈길로 그런 그녀를 쫓았다. 금세 초록 페인트칠을 한 철제 대문 앞에 이른 그녀는 열린 쪽문으로 뛰어들려다 말고 걸음을 문득 멈추었다. 그리고 앞쪽 대문 안을 바라보다가 다시 놀란 듯 대문 위쪽을 올려 보았다.



나도 무심결에 금발머리 여자애의 눈길을 따라 바라보았다. 열린 쪽문을 대문 안에서 가로막고 있는 것은 한국인 같지 않게 후리후리한 남자의 두 바짓가랑이였다. 그리고 이어 높지 않은 철제 대문 위쪽에는 휘어지듯 앞으로 나와 있는 남자의 머리가 보였다. 바로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인 키 큰 한국 남자였다. 그날 무슨 휴일이어서 집에서 쉬고 있던 그는 진작부터 철제 대문 너머로 딸아이의 놀이를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이미 낯이 백지장처럼 허옇게 질려 있었다.



원래 그 여자아이가 급하게 집 안으로 뛰어간 것은 그런 아버지에게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들을 일러바치고 편들어 주기를 조를 마음이었던 듯했다. 그래서 저희 집으로 달려가 쪽문으로 들어서려다가 아버지의 두 다리가 막고 있어 위를 올려 본 것 같은데, 거기서 진작부터 대문 너머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된 것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그 여자애는 갑자기 몸이라도 굳은 것처럼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 오히려 그 애의 아버지 쪽에서 무언가를 딸에게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아니야! 암것도.”



잠시 굳은 것처럼 서 있던 여자애가 그렇게 소리치듯 아버지의 물음을 받고는 황급하게 눈물을 훔치며 쪽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아버지의 두 다리를 감싸 안는가 싶더니, 이내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금발머리 여자애의 아버지 되는 키 큰 남자는 딸이 안으로 들어가고도 한참이나 대문에 붙어 서서 동네 여자애들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동네 아이들은 아직도 그가 자기들을 살피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이제는 야릇한 승리감에 빠져 합창하듯 큰 소리로 그의 딸을 놀려대고 있었다. 처음 허옇게 질려 그런 동네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그의 얼굴이 이윽고 알 수 없는 결의로 굳어지는 듯하더니, 곧 거칠게 쪽문을 닫아거는 철제 빗장 소리와 함께 그도 딸을 따라가듯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러스트: 백두리 baekduri@naver.com




그날 그 집 철제 대문 너머로 솟아 있던 키 큰 남자의 허옇게 질린 듯한 얼굴이 놀라움이나 두려움보다는 분노나 상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보면서부터 나는 까닭 모르게 조마조마해졌다. 곧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에 숨죽인 채 그들 부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그 모든 일을 별것 아닌 것으로 줄여 버리는 금발 여자애의 대답에 이어 그 아이의 아버지까지도 조용히 물러나 버리자 나까지 머쓱해졌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인지 그날 내가 본 광경은 오히려 더 강한 인상으로 내 기억에 새겨지고, 그 뒤로도 한동안을 전보다 더한 호기심으로 그 집과 그 여자애를 살펴보게 하였다.



그 당시 우리 중·고등학교의 음악 교과서에는 ‘금발의 제니’라는 노래가 실려 있었다. 나는 그 금발의 여자애에게 혜련이라는 한국식 이름이 있음을 알면서도 굳이 제니라는 서양식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매일 아침저녁 그 공터를 지날 때마다 일 삼아 발길을 멈추고 그 집과 제니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살폈다. 어떤 때는 제법 잠복 나온 형사처럼 시간까지 재 가며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제니는 그날 이후 그 공터에서 다시 볼 수 없었다. 이따금 함께 공터에 나와 놀던 제니의 여동생도, 이미 그해 봄부터 잘 보이지 않던 그 애의 오빠도 다시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암만 캐도 가들 삼 남매 저그 나라로 돌아간 것 같구마는. 그 내외 삼 남매 모도 미국 데불고 가서 키울라꼬 작정한 모양이라. 요새는 가들 어마시 되는 미국 여자까정 안 보이더라꼬. 그 키 큰 양반만 며칠에 한 번씩 축 처진 어깨로 왔다 갔다 할 뿐이라.”



가을이 되어서야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내가 대놓고 그 집과 제니의 일을 수소문하자 공터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그렇게 추측을 엮어 들려주었다. 그러다가 찬바람이 불고 대학 입시가 발등의 불로 떨어지자 나도 더는 그 집 부근을 기웃거리거나 제니의 뒷일을 궁금해할 여유가 없어지고 말았다. 이어 불 같은 입시의 몇 달이 지나고, 어렵사리 길을 찾아 서울의 변두리 대학에 진학한 내가 부산을 떠나게 되면서 남부민동의 골목길과 그 공터가 제니를 떠올리게 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 미국 사람들 말이라, 인제는 혼차 남아 있던 그 남자까지 싸말아 돌아갔뿌랬는 모양이라. 요새 보이 그 집에 딴 사람들이 와 사는데, 세 든 게 아니라 사 가주고 이사 왔다 안 카요. 집을 팔았다는 게 무슨 뜻이겠능교? 자기도 기집 자슥 있는 미국 가서 살라카는 거겠제. 아무리 조선 사람 사는 데 묻혀 조선 사람 맨쿠로 살아 볼라 캐도, 노랑머리 가스나들 그 모양 가주고는 영 잘 안 되던 갑데예.”



이듬해 첫 여름방학 때 집에 내려갔다가 그 공터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서 한 번 더 제니 일가의 뒷소식을 들었으나 여전히 그녀의 대답은 추측이 더 많았다. 그들이 그때 왜 그렇게 자취 없이 떠나야 했으며, 그래서 어디로 갔는지를 아는 데는 그 여름날부터 다시 십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때 제가 그렇게 간절하게 구원을 기다리며 쳐다보았던 애는 바로 제 단짝이었어요. 아버지는 우리 삼 남매를 여느 한국 아이들처럼 기르시려 했대요. 그래서 우리들을 외국인 학교에 넣지 않고 한국 초등학교에 입학시켰고, 한국 아이들과 뒹굴며 자라게 했는데, 그 아이는 3학년 때부터 4학년 그때까지 저랑 한 반이었고, 또 단짝으로 어울려 다녔어요. 그날의 시비요? 그건 그 무렵의 제겐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어요. 그때 한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몇 번에 한 번꼴로는 당하게 되는 일종의 따돌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날은 그때껏 단짝으로 붙어 지내던 그 아이까지 동네 아이들과 한편이 되어 나를 몰아세우자 그만 참지 못하게 된 거예요.



저는 아버지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내가 겪은 부당한 일을 일러바쳐 동네 아이들을 혼내 주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죠. 그런데 대문께에서 아버지의 허옇게 굳어 있는 얼굴을 올려다보고 가슴이 철렁했어요. 내가 울며 들어온 까닭을 묻는 아버지에게 모든 일을 사실대로 알리면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아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내 방에 들어가니 다시 밖에서 당한 일이 억울해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셨어요. 그리고 울고 있는 저를 가만히 쓸어안으며 말하더군요. 맞다, 얘야. 돌아가자. 너희가 있어야 할 곳으로, 라고.”



이태 뒤에 있을 서울올림픽 준비로 벌써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던 그해 이제는 성숙한 미국 숙녀가 되어 돌아온 제니는 그때부터 꼭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의 기억을 그렇게 되살렸다. 하지만 그해 서울에서 제니를 다시 만나게 된 경위를 얘기하려면 잠시 그 무렵의 내 삶을 되짚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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