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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 농단하는 음성적 통로가 존재하는가

중앙일보 2010.07.24 00:13 종합 34면 지면보기
대한민국에 법과 제도의 정상적인 통로가 아닌, 국정을 움직이는 별도의 음성적 루트가 존재하는가. 정부의 공조직을 제쳐놓고 향우회가 움직이고, 수사권도 없는 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사찰하더니 이제 정치인 사찰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공직윤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고용노동비서관이 관련 보고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고 있으니 공조직은 어디로 가고, 사조직이 나라를 움직이는 꼴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집권당의 원내대표, 사무총장이 검찰에 야당 정치인을 구속하라 마라 지시하고, 체포영장을 발부하라 마라 했다고 떠벌리는 판이다. 도대체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있는 집단인지, 이런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겨둬도 괜찮은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냥 의혹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모두 집권당의 책임 있는 인사들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4선 중진인 남경필 의원은 그저께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부인이 불법사찰(不法査察)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그뿐이 아니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정두언 최고위원과 정태근 의원도 뒷조사를 당했다고 한다. 친박(親朴)계 의원들을 사찰한다는 의혹도 제기된 적이 있다. 정보정치가 횡행(橫行)하던 폭압정치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건가.



더군다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수사권을 가진 조직도 아니다. 행정부처 공직자의 비윤리적 행태를 감시하는 조직일 뿐이다. 이런 조직이 누구의 지시를 받고 무슨 목적으로 입법부를 대상으로 불법사찰을 하고 다녔는지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사찰을 당한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형을 겨냥해 물러나라고 요구한 사람들이란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이 사찰을 당한 시점도 그렇고, 공직윤리지원관실 인적 구성도 하필 ‘영포라인’인 것이 단순히 우연인가. 그렇다면 정권 내에서도 일개 계파의 사조직이 정부 공조직을 능멸(凌蔑)한 꼴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의 발언은 더욱 기가 막히다.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를 “민주당 측 요청으로 불구속 기소하게 했다”고 한다. 또 교비(校費) 80여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강성종 민주당 의원에 대해서는 “(검찰이) 체포동의안을 내겠다는 것을 말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원희룡 사무총장까지 맞장구를 치며 가세했다.



도대체 정치인을 구속하고 체포하는 것을 흥정거리로 삼는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러면 검찰은 집권당과 국회의 지시를 받고 정치인의 구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인가. 엄정(嚴正)해야 할 수사권을 이처럼 정치 뒷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법치는 어디에 있는가. 공권력은 희화화(戱畵化)되고 국가의 기강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2010년 7월의 한국 정치판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5공 시절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이대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국정이 법과 제도의 정상적 통로에 따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국정운영의 정상화 작업이 시급하다. 정상화의 첫걸음은 비선(秘線)조직과 뒷문·샛길문화의 청산이다. 집권세력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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