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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야, 방학이다

중앙일보 2010.07.24 00:12 종합 35면 지면보기
“야, 방학이다!” 여름방학 시즌을 맞는 때면 언론들은 학생들이 학교를 뛰쳐나오며(?) 만세 부르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내보낸다. 그런데 이런 사진을 가만히 보다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니기가 얼마나 힘들면, 얼마나 지겨우면 ‘방학’이 아니라 ‘해방’으로 느껴질까. 하긴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미 ‘교실 이데아’라는 곡에서 지적을 했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왜 이렇게 힘든 현장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지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교육의 현장인 교실이 시장경제의 생산양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한몫한다.



학생들은 일정한 시간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학습을 한다. 그리고 일정한 주기마다 시험을 통해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교육을 마친 후 일하게 될 조직은 회사 같은 영리조직이든, 공공기관 같은 비영리 조직이든 비슷한 패턴이 있다. 사회 구성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일정 시간까지 일정한 장소에 모여 일을 한다. 물론 일의 형태는 다양하다. 동시에 이들은 일정 주기마다 실적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 승진이나 징계가 모두 평가 결과에 의존한다. 결국 학생들은 학교에서 장차 일할 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배우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일하게 될 조직에서의 기본적인 근무 형태에 대한 훈련을 받고 있는 셈이다.



IT 발달로 인해 다양한 온라인 교육이 가능해졌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집합형 학습 형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모이다 보니 다양한 규율이 필요하다. 조직마다 다르긴 하나 복장규정·복무규정이 존재하고, 이러한 규정을 위반하면 제재가 따른다. 또한 조직의 위계질서 내에서 상사를 직급에 맞게 예우하는 의전도 발달되어 있고, 의전에 충실하지 않으면 다양한 보복(?)이 뒤따른다. 옷이나 머리 스타일을 함부로 해서 공동체 구성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오래 버티기 힘들다. 조직에서의 생존과 활동은 이처럼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힘든 활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동시에 조직의 성과와 발전에 기여하면서 자기의 능력을 구현한다. 또한 언젠가 자신이 조직의 리더그룹에 오를 것을 예감하는 데서 오는 뿌듯함은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최근 진보 교육감들이 취임하면서 인권조례부터 챙기는 모습을 보며 걱정이 앞선다. 어려운 일, 힘든 일 다 피해 가자는 것인가. 두발도, 복장도, 휴대전화도 마음대로고 심지어 시험까지 거부해도 된다니,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친다. 시험을 거부하는 일부 학생들, 시험 문제 답을 미리 가르쳐 준 교사들, 시험 안 봐도 결석은 아니라는 공문….



누구는 평가를 받고 싶어 받나. 평가에 자유를 준다면 누구든 거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나중에 사회에 나가면 평가를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위해 평가는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함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닌가. 교사가 학생더러 평가를 거부하라고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혹시라도 나중에 받게 될 수 있는 불이익은 누가 책임지나. 교육감도 투표로 평가받는 것 아닌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헌법적 가치다. 우리 학생들은 미래의 민주시민인 동시에 수많은 조직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할 유능한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형평과 평등만큼이나 효율과 성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기본적 학력은 물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규정 준수, 권위에의 복종, 질서에 대한 존중,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자신의 자유를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배려도 중요한 덕목으로서 지켜지고 학습돼야 할 목표다.



사교육에 밀려 공교육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시꺼먼 교실에서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다는 지적은 가슴 아프다. 또한 일부이기는 하지만 교실폭력 또한 우리의 가슴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지도자들이 커가고 있다. 교실은 해방공간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는 고통스러운 공간이다. 그러나 질서, 규율, 배려, 선의의 경쟁이 잘 조화된다면 교실은 고통만이 아닌 희망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교육감의 역할에 정말로 주목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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