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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tory] 객원기자 이혜영의 ‘현장’

중앙일보 2010.07.24 00:10 주말섹션 8면 지면보기
j의 객원기자인 영화배우 이혜영(전 SBS 앵커)씨가 소설 『강안남자』의 작가 이원호(63)씨를 만났다. 이원호 작가는 지난해 10월, 문화일보에서 7년10개월간의 『강안남자』 연재를 마쳤다. 성공, 돈 그리고 여성이라는 남성의 판타지를 그린 이 소설은 화이트 칼라층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거리낌 없는 성 묘사로 한때 외설 논란에 휩싸이며 청와대의 신문 절독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었다. 남성들의 환상, 위선과 이중성이 가득한 세태, 작가 이원호씨의 삶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정리=박현영 기자

사진= 박종근기자 jokepark@joongang.co.kr>

장소 협찬=서울 웨스틴 조선 호텔



“강안남자 독자는 많지만 … 숨어서 보는 게 우리 사회”





#강안남자



이혜영(이하 혜)=『강안남자』는 시나리오를 읽는 것 같았어요. 선생님 표현이 액션 위주로 돼 있어서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 없을 정도로 인물 묘사가 구체적이던데요.



이원호(이하 원)=KBS에서 드라마로 만든다고 해서 부사장 승인까지 났었어요. 드라마 판권을 거금을 받고 팔았는데, 그때 청와대의 문화일보 절독 사건이 일어났죠. 청와대에서 절독시키니까 KBS 제작진이 드라마로 만들 수가 있나요. 물 건너 갔죠.



혜=영화로 만든다면 조철봉 역할은 누가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원=이대근씨가 딱 적격인데 옛날 인물이라…. 요즘 젊은 친구들은 서로 하려고 그럴 겁니다. 신문 연재소설은 섹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드라마로 되면 시나리오를 다시 쓰려고 했어요.



혜=조철봉이란 인물한테 더 바라는 게 있으세요.



원=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걸 못했어요.



혜=예를 들면 어떤 거죠.



원=사랑도, 육체적인 것은 별거 아니다, 결국 순간이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는데 안 되더라고요. 워낙 조철봉에게 사람들이 중독되어서, 그게 참 안 되데요. 조철봉 캐릭터가 나에게 붙어서 문제야. 7년10개월 동안 연재하다 보니 내가 아무리 진지한 소설을 써도 그게 조철봉화된단 말이에요. 요즘에야 조금 벗어나고 있습니다.



혜=조철봉을 통해 작가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뭔가요.



원=글쎄요. 이 말부터 해야겠네요. 소설가가 소설을 쓰면 평론가들은 소설가가 생각지도 못한 근사한 평론을 합디다. 내가 보면 뻔한 얘긴데, 평론가들이 멋있는 표현을 써요. 나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소설을 160권 정도 썼지만, 평론가가 내 소설에 대해 평해본 적도 없으려니와, 전통적인 신문 문화면에서 내 소설을 다룬 적도, 나에 대해 코멘트를 한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혜=그래도, 작가의 의도가 있었겠지요.



원=소설은 독자를 즐겁게 해주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과 꿈을 심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강안남자로는 성적 환상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대리만족이요.



혜=그렇게만 보기에는 터치한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정치, 기업, 남북 문제…. 특히 정치에 관련된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그쪽에서 일어난 에피소드가 많잖아요.



원=섹스만 있을 수는 없으니 정치인 얘기했다가, 북한에 가서 김정일도 만나고, 김정은을 데리고 남북을 오가고 그런 이야기들을 넣었지요. 정치, 사회, 남북 문제, 기업 관계는 줄거리를 이어가기 위한 액세서리였습니다.



혜=한국의 미래 정치, 기업, 남북 간의 문제들에 관해 판타지를 주신 게 아닌가요. 거기에 섹스가 액세서리로 들어간 거죠.



원=과찬이십니다.



혜=『강안남자』는 히트한 만큼 거부감도 있었어요. 독자들 반응이 어땠나요.



원=너 아직도 감방 안 갔냐,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거 신경 쓰면 책 못 써요. 강안남자 쓰는 7년10개월 동안 내가 몸 파는 매춘부가 된 기분이었어요. 무슨 얘기냐 하면, 나를 다 보여줘야 하니까, 욕을 얻어 먹어야, 체면이고 뭐고 다 버려야 독자도 실감나고 재미있어 한다는 말입니다. 체면 차려서 결정적인 순간에 싹 뺀다든가, 어설프게 하면 재미도 없고. 속된 말로 홀딱 벗고 보여줬죠. 그러다 보니 강안남자의 잔영,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힘들더라고요. 이제 겨우 벗어났어요.



혜=용기가 되는 편지 같은 건 없었나요.



원=절대로, 그런 건 하나도 없었어요. 용기가 되는 건 아파트 경비가 장난으로 ‘선생님, 왜 요즘 그거 안 해요’ 그래요. 저는 얼굴이 빨개지죠. 뒤따라오던 동네 아줌마들은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창피하긴 했지만 ‘아, 독자들이 그걸 기다리는구나’ 알게 되지요. 강안남자 독자는 많지만 내가 강안남자 독자라고 대놓고 나서는 독자는 없어요. 한국 사람들이 다 그렇습디다. 술집이나 법원가 같은 데 가면 판·검사들이 좋아합니다. 어떤 기업 CEO들은 며칠 못 보면 비서가 스크랩해서 준다고 합디다.



혜=소설 준비할 때 인물 취재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원=이건 마누라가 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럼요. 리얼리티가 있으려면 경험에 의한 게 있어야 합니다. 많은 생체실험을 했지요. 남녀관계가 급격하게 변화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쓰기 위해 강남의 카바레를 다 섭렵했거든요. 옛날엔 아줌마들이 숨어서 이런 곳에 다녔는데, 요즘은 아주 당당해요. 부킹하면 아예 제 명함에 사인을 해달라고 해요. 남편이 팬이라고, 남편 주려 한다고요. 요즘 세태에 의하면 사랑과 성은 별개로 가더라고요. 아주 일부겠지만 자기 부인이 바람 피우는 것도 받아들여주기도 하더라고요. ‘나도 바람 피웠는데 뭐. 지나가는 바람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식이죠. 참 많이 변했구나 싶어요. 성 풍속도가 바뀌어지는 거잖아요.



혜=우리 사회에는 성에 대한 이중잣대가 강하잖아요.



원=나에 대한 악플은 많고 비판은 당당하게 하는데, 지지는 공개적으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외로웠어요. 화도 나고. 또 강안남자를 드러내놓고 보지는 않고, 숨어서 보는 게 우리 사회죠.



혜=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나요.



원=노무현 정부 시절 정청래 여당 의원이 강안남자의 야한 문구를 패널로 만들어 한명숙 총리 앞에서 흔들고 있을 때, 참 창피했어요. 부끄러웠어요. 반발심도 있었죠. 이거 아니어도 인터넷에 가면 야한 동영상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이거냐. 사람들이 흉내를 내거나, 충동을 느껴 범죄를 저지르거나 한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강안남자의 독자층은 시청 주변, 관가의 화이트 칼라층이었죠. 어떻게 요즘 세상에서 신문에 야한 게 나왔다고 해서 흉내를 냅니까. 그걸로 문화일보가 절독까지 됐는데…. 꼭 소설 내용 때문이라기보다 정치적인 것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죠. 당시 청와대에 후배들이 좀 있었는데, 그 후배들이 응원을 많이 해줬어요. 그런데 강안남자 이야기 말고 딴 건 없습니까. 하하.



혜=문화일보 절독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한번 정리를 잘 해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원=청와대에서 강안남자의 선정성 등이 청와대 여직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유로 백몇십 부 절독을 했어요. 청와대 여직원들은 너무 순진해서, 그것을 읽으면 불장난을 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이슈화되어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화일보에선 계속 소설을 냈고요. 그후로도 3년 동안이나 썼지 않습니까. 나는 문학적인 게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죠. 본래 의도가 석간 신문이니까, 나른한 오후에 강안남자를 읽으면서 샐러리맨들이 오늘 저녁에 대한 환상, 희망, 술 먹으면서 여자 만나야지, 나른할 때 성적인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의도로 썼죠. 그게 성공을 했어요. 그 외에는 없어요. 쓰레기예요. 책이 20권으로 나왔어요. 제법 팔렸어요. 아마 숨어서들 볼 겁니다. 그러다 보니 2005년에는 중국에서 판권을 팔라고 해서, 중국어로도 번역이 돼 두 권으로 나왔어요.



혜=이걸 왜 숨어서 봐요. 선생님의 많은 쓰레기들을 보는 독자들은 뭐예요. ‘강안’이 얼굴이죠. 처음에는 ‘강한’인줄 알았어요.



원=원래 중국 고서 『신서』에 강안여자라는 말이 있어요. 뻔뻔한 여자라는 뜻이에요. 어떻게 제목 지을까 하다가 강안남자로 바꿨어요.



혜=강안여자를 쓰실 생각은 없나요.



원=없어요, 이제. 지긋지긋해요.



"강금실씨 전 남편이 써달래서 『밤의 대통령』 썼죠”



#월급쟁이에서 소설가로



혜=어떻게 갑자기 소설을 쓰시게 됐나요. 굴곡 많은 삶을 사셨다고 하던데. 작가 되기 전엔 중동에서 근무하셨다고요.



원=백양에서 근무했었습니다.



혜=속옷 만드는 백양이요? 저 옛날에 백양 모델이었는데, 저 기억 안 나세요.



원=디자인실 직원들한테 예쁜 여자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었는데…. 백양이 가장 전성기 때 거기서 무역부장 했습니다. 떠난 지 20년 됐는데, 지금 BYC에서도 저를 다 알 겁니다. 무역으로 전설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때 내가 했던 수출 물량이 지금 백양 전체 수출 물량보다 많을 겁니다. 내 파트에서 80년대에 3000만 달러를 했으니까요. 그러다 직원들 데리고 나가 독립했죠. 백양을 철저히 배신한 거죠.



혜=무슨 회사를 하셨는데요. .



원=경세무역이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내 밑에 있던 과장들 다 데리고 나가 가지고. 그런데 3년 만에 부도가 났어요. 백양에서 아마 ‘잘 됐다’고 했을 거예요. 하하.



혜=백양에서는 속옷을 파신 거고요.



원=백양은 의류회사니까, 속옷뿐만 아니라, 군복도 팔았어요. 리비아에서 카다피 있을 때 정부 입찰도 따내고 그랬죠. (엄지와 검지로 원을 그리며) 제가 이런 거, 삥땅(리베이트의 속어)을 잘 먹었거든요. 얼마나 삥땅을 먹었는지, 그거 가지고 영동에 땅을 샀으면 몇백억, 몇천억원 됐을 거예요. 이건 뭐 공소시효 지났으니까….



혜=소설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원=어머니가 수필가이셨어요. 신문사 문화부장도 지내셨고. 옛날 얘기예요. 집에 책이 항상 많았고, 전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에 들어갔는데, 개교 기념일 행사로 문예작품을 모집하더라고요. 상금 욕심이 나서 하룻밤 써서 낸 게 단편에 당선됐어요. 다음엔 전국 남녀 대학생 문예작품 모집에도 냈는데 당선이 되고. 그런데 이거 써서 옛날엔 밥 먹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백양에 들어갔지요. 무역으로 잘나갔죠. 어떻게 보면 성공도 했었는데….



혜=그런데요.



원=부도 내고 도망 다니는데 비참했어요. 죽어야 하나,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친구 소개로 한 개에 300만~500만원 하는 자석요를 팔았죠. 결과는 3개 팔았어요. 한 개는 어머니가 사주고, 하나는 친구가 자석요 있는데도 하나 더 샀어요. 나머지 하나는 무역회사 사장하는 선배한테 갔어요. ‘이거 팔면 얼마나 남느냐’고 물어요. 30% 남는다니까 ‘90만원 줄게 자석요는 안 가져가면 안 되냐’고 해요. 경리가 가져온 90만원 받아서 나오는데,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군요. 선배 사무실이 7층이었는데, 떨어져 죽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십몇 층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개박살이 나서 이원호가 죽었는지, 강원호가 죽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낮은 층으로 내려와보니 여기선 설 죽을 것 같고.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말았는데…. 죽기 전에 자서전이나 써야겠다 싶었어요.



혜=책이 나왔나요.



원=출판사 사장에게 원고를 주면서, 돈 안 받을 테니까 책을 내달라고 했어요. 정말로 돈 안 받을 거냐고 여러 차례 묻고, 각서를 써달래기에 써줬더니, 바로 책을 내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이 뜬 거예요.



혜=그 후에는요.



원=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전 남편 김태경씨가 서울대 운동권인데, 나한테 와서 재미있는 것 써 달라고 하기에, 한 달 만에 책 2권을 썼어요. 『밤의 대통령』 1, 2권을 써서 줬는데, 그게 뜨네. 하루에 1만 권, 어떨 때는 2만 권씩 나갔어요. 정가가 4500원이니까, 하루에 인세가 막 1000만원도 들어오고 그래. 그걸로 빚을 갚았죠. 또 기업 소설 한번 써보라고 하기에 『황제의 꿈』을 썼는데, 이것도 1만 권, 2만 권 나가더라고요. 신문 한 면에 5단 광고가 왼쪽에는 『밤의 대통령』, 오른쪽엔 『황제의 꿈』 이렇게 나가기도 했죠. 졸지에 대중소설가가 됐습니다. 



“황석영씨가 명동에 매장이 있다면 난 좌판 들고 왔다갔다 하는 격”



이원호 작가가 지갑 속에 넣고 다니는 8살짜리 딸의 사진을 이혜영씨에게 보여주고 있다.


#딸은 내 힘의 원천



혜=잠깐 고생은 하셨지만, 금세 성공하셨네요.



원=제가 부도나서 도망 다닐 때, 딸의 유골함만 들고 집을 나왔어요.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딸이 사고로 죽었어요. 도망 다니면서 내내 딸아이 유골함을 들고 다녔죠. 친구가 얻어준 오피스텔에 숨어서 살았는데, 1년 동안 딸 유골함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베고 잤어요. 술 먹고는 유골함에 대고 이야기도 하고, 외출할 때는 ‘현숙아, 나갔다 올게’ 하고. 옆집에선 내가 누구하고 사는 줄 알았대요. 그걸 뿌리지 못하고 갖고 다니다가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 옆에 묻었어요. 제가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좌절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됐지, 남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혜=지금 가족은요.



원=늦게 얻은 딸이 하나 있어요. 지금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혜=저도 아들이 여덟 살이에요.



원=지금까지 인터뷰하면서 한 번도 이런 얘기 안 했는데, 이혜영씨를 만나서 흥분했어요. 말려든 감도 있는데.



혜=이번 인터뷰 준비하면서 보니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너무 없는 거예요. 선생님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죠. 조철봉은 다 보여줬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안 보여주셨어요. 사실은 굉장히 고독한 것 같아요.



원=현숙이가 5월 19일에 죽었는데, 5월만 되면 마음이 찜찜해요. 뭔가 불안하고. 부모 돌아가실 때보다 자식 앞세우는 게 참 가슴이 맺혀요. 참…(눈시울이 붉어짐) 괜히…그런 얘기해서 (눈물을 찍어냄), 자기 상처 얘기하면서 남에게 동정 받는 거, 나 그런 거 싫어. 그나저나 내 소설이 슬슬 영화화될 때가 됐는데. 되겠지요, 뭐.



혜=선생님 너무 왕성해 보이세요. 어떻게 이렇게 왕성하실까 궁금했거든요. 그게 딸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여성과 여덟 살짜리 딸과 함께 사는 사정이 선생님의 원천이네요. 제가 다 눈물이 나네요. 조철봉의 알지 못하는 불안감, 쓸쓸함, 고독, 무엇으로도 이 사람을 도와줄 수 없는 그것, 선생님의 이런 것들 때문이구나 이해됐어요.



원=조철봉은 내 가정과는 별개이지요.



혜=그게 별개일 수 없는 거죠. 이제 할아버지로 가야 하는 연세인데, 그게 아니잖아요. 다시 청년이 되신 거예요.



원=물론 힘이 되지. 어떻게 보면 희망이니까. 담배를 끊은 지가 7년 됐는데, 30몇 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었어요. 딸이 태어난 지 6개월쯤 됐을 때, 아이를 안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아마, 내가 얘 몇 살 때까지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그 순간부터 담배를 끊었어요. 어지럽고, 신발 신다가 주저앉고, 힘들었지만, 딸 생각하니 하루아침에 뚝 끊어지데. 말씀대로, 힘의 원천이 되죠. 내가 사는 것은 딸을 위해서입니다. 딸을 데리고 책방에 가요. 가면 내 책이 많이 꽂혀 있어요. 거기서 ‘아빠 책 찾아봐’ 해요. 제법 글을 읽으니까, ‘아빠 책 여기 있다’ ‘여기도 있다’ 해요. 제 아버지가 노인이라는 콤플렉스를 없애주기 위해 일부러 그래요. 아버지에 대한 열등의식을 지워줘야 한다는 의식적인 게 있어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라고요.



혜=손이 참 희세요. 작가의 손 같으세요. 가족과 함께 사시는 공간에서 집필이 잘 되세요.



원=내 코너(작업실)는 가족들 공간과 좀 분리돼 있습니다. 아빠 일한다고 하면 딸 아이가 안 들어와요. 내 코너에서 하루에 보통 15시간쯤 일을 해요. 한 시간 일하고 10분 쉽니다. 10분에서 1분만 지나가도 일어나서 또 써요. 하루에 원고지 50장씩 써요. 목표를 세우고, 그걸 쓰고 나면 개운해요.



혜=작가로서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세요.



원=이문열, 황석영 같은 분들이 압구정동이나 명동에 매장 가진 사람들이라면, 나는 좌판 들고 다니는 사람이지요. 대중소설가는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가 김진명씨는 1, 2년에 한 번꼴로 무게 있는 소설을 탁 내놓습니다. 나는 2년이면 열대여섯 권을 써요. 끊임없이 쓰는 게 내 캐릭터입니다. 앞으론 역작을 내놓고 싶어요. 장서에 두고두고 간직할 작품요. 내 책은 공항에서 제일 많이 팔려요. 책이 나오면 인천공항에 제일 먼저 갖다 줍니다. 장거리 손님들이 내 책을 읽어요. 킬링타임용인 거죠. 뉴욕이나 파리 공항 휴지통에 가면 내 책이 제일 많을지도 모릅니다. 읽고 나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고. 하하.






<< j 칵테일 >>



강안남자 ‘조철봉’



''일간스포츠''에 연재중인 만화 ‘강안남자’.
의미심장하고 야릇한 이름의 조철봉. 소설 『강안남자』의 파란만장 주인공이다. 그가 신문 지상(紙上)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것은 2002년, 서른다섯이었다. 대성자동차 서초지점 영업사원이던 그는 영업소장과 대리점 사장을 거쳐 직접 자동차 회사까지 세운다. 탁월한 사기꾼적 술수와 여인들을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야수적 능력’이 그의 무기였다. 철봉은 10여 개 계열사를 둔 오성그룹 회장이 되고, 중국·베트남은 물론 북한에도 투자하는 거물이 된다.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고 나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독대하며 대북사업 주역으로 뜬다.



철봉을 말할 때 ‘엽색 행각’을 빼놓을 수 없다. 첫 아내의 외도에 충격을 받은 철봉은 여성에게 절정의 쾌락을 안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돈과 권력·성애(性愛)가 버무려진 철봉의 인생사는 일본 만화 『시마과장』의 주인공인 시마 고사쿠(島耕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스타 대접을 받으면서 ‘조철봉 신드롬’까지 일었다. 점심 먹고 온 회사원들의 오후는 석간 신문에 실린 『강안남자』로 시작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06년 11월엔 청와대가 소설이 선정적이라며 해당 신문을 무더기로 절독해 화제였다. 한나라당의 강재섭 전 대표는 2007년 초 기자간담회에서 “조철봉이는 요즘 왜 (섹스를) 안 해. 예전에는 하루에 3번씩도 하고 그러더니…”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 10월 말 소설이 막을 내릴 때까지 『강안남자』에 7년간 등장한 인물은 1000명이 넘었다. 철봉의 여인이 몇 명인지 끝까지 세어 본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이원호’



1991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업 실패 후 세상을 등지기로 마음먹고 쓴 자전적 소설 『할증여행』 이 첫 작품이다. 폭력 조직의 세계를 그린 『밤의 대통령』(1992)과 세계를 누비는 비즈니스맨 이야기 『황제의 꿈』(1992)이 100만 권 넘게 나가 베스트셀러가 됐다. 시베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웅의 도시』(1996)와 역사소설 『계백』(1998)까지 영웅적 주인공을 앞세운 선 굵은 스토리로 남성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책을 빨리 쓰는 편이다. 하루에 원고지 50~60장씩을 채운다. 한 달에 한 권을 완성한다. “대리작가를 고용해서 책을 쓴다”는 소문이 나오다가 사라졌다. 원고지에 육필로 써서 출판사에 넘기기 때문이다. 온라인 매체에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주인공으로 한 『불굴』을 연재하고 있으며, 다음 달부터 월간지에 전쟁 소설을 시작한다. 20년간 소설 53종 160권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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