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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어린 세 자녀 한국에 두고 수단 어린이들 돕는 이유요?

중앙일보 2010.07.24 00:05 주말섹션 12면 지면보기
“수단의 소년병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사회에 복귀하도록 돕는 프로젝트에 얼마가 필요합니까.”


유니세프 수단사무소 김경선씨 “그것이 결국 내 아이들 삶 풍요롭게 하는 거죠”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수단사무소에서 기금 모금 및 관리 매니저로 일하는 김경선(38·사진)씨는 올 초 캐나다 정부로부터 이 같은 응답을 받고 뛸 듯이 기뻤다. 그의 제안서에 캐나다가 백지수표를 제시한 셈이다. 수차례의 화상회의와 방대한 추가 자료를 제공한 끝에 최근 1500만 달러(약 180억원)를 지원받았다. 캐나다는 어린이들이 내전에 가담하지 않도록 선도하는 다른 프로그램에도 2000만 달러(약 240억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김씨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학살과 내전으로 뒤엉킨 수단은 유니세프가 가장 크게 사업을 펼치는 나라다. 김씨는 수단사무소가 필요로 하는 연간 2억 달러(약 2400억원)의 자금을 모으고 관리한다. 공식 직함은 ‘기금 모금 매니저(Resource Mobilization Manager)’. 수단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을 내도록 정부나 단체를 설득하는 게 주된 임무다. 수단사무소 직원 500명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이다.







#유니세프와의 만남



유니세프와의 인연은 맏딸 덕분에 만들어졌다. 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파라과이로 이민을 했다. 그곳에서 스페인어를 배웠고,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저지 주립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로 돌아와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국제기구 초급 전문가) 모집에 응시했다. 선발된 뒤 발령을 기다리면서 외교부에서 국제기구 리스트를 받았다. “당시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장 나약한 존재가 어린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망설임 없이 유니세프를 택했지요.” 첫 발령지는 뉴욕의 본부. 거기서 남미 지역 사업을 지원했다.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 남미 자료를 수집하는데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어요. 자료를 나라와 지역별로 인트라넷에 통합 관리하면 좋겠다고 건의했지요. 건의가 채택돼 3개월간 작업 끝에 나라별 자료사이트를 구축했어요.” 이 일로 그의 업무 추진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JPO로 근무한 지 1년7개월 만에 정식 직원이 됐다.



#세 아이의 엄마



수도 하르툼에 사는 그는 세 아이의 엄마다. 건축가인 남편과 3남매는 한국에서 살았다. 맏딸은 초등학교 5학년, 아래로 초등학교 1학년짜리 딸과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있다. 2008년 수단에 부임한 뒤 1년8개월간 ‘기러기 엄마’였다.



“두 달에 한 번꼴로 한국에 와서 아이들을 만났어요. 남편은 제가 수단에서 근무한 뒤부터 출퇴근 시간이 일정한 곳으로 이직해 아이들을 돌봤어요.”



엄마 손이 한참 필요한 아이들을 떼어놓고 일하는 그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최근 휴가차 방한한 그는 인터뷰에서 “수단에서 일하는 것도 결국 내 아이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연장선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잘 이해해줬다”고 말했다. 막내는 가끔 엄마가 빨리 안 온다고 보채기도 하지만, 두 딸은 “불쌍한 친구들 도와주는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엄마, 일 그만두면 안 돼”라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한다. 그는 “모성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며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가족의 생이별은 예정에 없었다. 그가 수단사무소 자리에 지원해 합격했을 때 유엔이 정한 수단의 안보등급은 2등급. ‘주의를 요하지만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근무지’였다. 부임을 준비하는 동안 정치·안보 상황이 바뀌면서 3등급으로 떨어졌다. 가족 동반이 금지된 근무지로 바뀐 것이다. 최근 안보 등급이 상향 조정되면서 김씨의 가족은 이달 중 수단으로 이사할 계획이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그는 “아이들이 아프리카를 느끼고, 경험하면 삶의 지평이 넓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현장을 두려워 마라



그는 “한국도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으니 유니세프를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기구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 “현장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유엔 하면 보통 뉴욕이나 제네바를 생각하죠. 하지만 유엔에서 커리어를 제대로 쌓으려면 현장 경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여성들에게는 특별히 덧붙였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고, 외국어도 잘하는데, 좀 더 적극적이 되면 좋겠어요. 이 길이 내 길이다 싶으면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그런 확신을 갖기 위해선 국제기구나 시민단체에서 인턴이나 자원봉사를 해보세요. 오지 근무로 인한 결혼과 육아 고민보다는 헌신과 봉사의 자세를 고민해야 합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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