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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풀려난 아동 성폭행 감독

중앙일보 2010.07.21 00:45 종합 33면 지면보기
스위스에서 가택연금 중이던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지난주 자유의 몸이 됐다. 그는 33년 전 미국 LA에서 13세 소녀를 성폭행했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는 폴란스키를 송환해 달라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위스로선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미 밝혀진 폴란스키의 범죄 사실들을 눈감아야 했고, 미국과의 사법적 협력 관계도 틀어졌다.



스위스가 송환 거부 결정을 내린 것은 폴란스키의 뛰어난 재능과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의 위상을 고려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스위스 사법당국은 공식적으론 미 정부가 폴란스키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의 자료 없이는 폴란스키가 이미 형기를 마쳤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폴란스키가 선고 직전 도피 차원에서 미국을 떠났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말이다.



정치적 범죄를 제외하고는 국가 간 범죄자 송환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스위스 당국은 폴란스키가 미국에서 징역 6개월 이상의 처벌을 받을 경우에만 송환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폴란스키 측 변호인들은 그가 6개월 미만의 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송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건을 담당했던 로런스 리튼밴드 판사가 정신 감정을 위해 폴란스키가 90일간 수감돼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빌미가 됐다.



하지만 사건을 한번 냉정히 되돌아보자. 당시 13세 소녀 모델이었던 피해자 서맨서 가이머는 배심원 앞에서 폴란스키(당시 43세)가 LA에 있는 잭 니컬슨의 집에서 촬영 작업을 하던 중 자신에게 샴페인과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폴란스키는 8년 뒤 출간한 자서전에서 “당시 있었던 일을 강간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스위스에서 수년간 숱한 미소녀들을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들였던 사람다운 발언이다. 폴란스키는 유명 여배우 나스타샤 킨스키가 불과 16세 때 교제하기도 했다. 영국 여배우 샬럿 루이스 역시 16세이던 1981년 폴란스키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서맨서가 검찰에 사건을 종결해달라고 요청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방검찰은 피해자 한 명의 의사와 상관없이 상습적인 성폭행자를 기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 캘리포니아 대배심은 폴란스키를 총 6건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 정도면 족히 수십 년은 수감돼야 한다. 미성년자와의 불법적인 성관계 한 가지 죄목만으로도 최고 50년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들은 폴란스키가 서맨서를 성폭행했던 77년 당시엔 미성년자 성폭행에 대한 처벌이 미미했다고 주장한다.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LA 검찰은 폴란스키가 검찰과의 협상을 깨고 도망갔다며 나머지 다른 혐의로라도 기소할 수 있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폴란스키가 송환 원칙을 잘 지키는 국가로 옮겨 가야만 가능한 일이다. 스위스는 물론 그가 국적을 가진 프랑스 역시 그런 나라가 아니다. 폴란스키가 샹젤리제에서 석방을 축하하는 샴페인 파티를 연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앤 울너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

정리=정현목 기자 [블룸버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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