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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창조한 거대한 바위에 인간은 믿음의 증거를 남겼다

중앙선데이 2010.07.11 04:39 174호 3면 지면보기
그리스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핀두스 산맥과 메테오라 유적지의 거점도시인 칼라바카를 배경으로 서 있는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수도원. 이미 12세기 때부터 은둔자들이 수행했던 곳이다. 14세기 말 완성된 수도원에는 1961년 이후 여성 수사들이 거주하고 있다.
1988년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지정
지명조차 낯선 자그마한 산간 벽지마을 칼람바카를 지나 우뚝 솟은 바위와 준봉에 오르면 몽롱한 현기증이 밀려온다. 봉우리 정상에는 거센 바람이 불면 곧장 수백 길 아래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수도원들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드넓은 정원을 갖고 있는 마을이 아련하게 내려다 보인다. 거대한 바위와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허공 위에 어우러진 풍광은 직접 보지 않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진작가 이형준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복합유산을 찾아서 <1> 그리스 메테오라


세월은 만물을 그냥 두는 법이 없다. 알프스 조산대의 충돌로 모습을 드러낸 당시 메테오라의 모양새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산맥의 일부였던 지형은 수천만 년 동안 진행된 풍화작용에 씻기고 깎여 거대한 계곡과 60여 개에 달하는 ‘바위 조각’을 탄생시켜 놓았다. 바위들은 조물주의 빼어난 솜씨를 대변하듯 하나같이 특이하다. 어떤 바위는 뾰족한 못이나 나무 같고, 또 다른 바위는 최첨단 빌딩이나 현대적인 조각을 연상시킨다. 단단한 사암층과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바위는 높이가 400m에 이른다. 메테오라 바위들은 크기와 모양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지구의 변천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마치 오랜 된 역사책처럼. 유네스코도 이런 가치를 중시하여 1988년 이곳을 복합유산으로 등재했다.

나를 낮추는 법을 알려준 은둔 수사
20년 넘게 지구촌을 둘러보고 있는 나에게 최고의 방문지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메테오라를 선택할 것이다. 울창하고 신비로운 자연도 그 이유지만, 메테오라의 진짜 매력은 스스로를 낮추고 신에게 다가서려는 은둔 수사들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메테오라를 처음 찾았던 91년 겨울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숙소에 있는 카페에서 ‘테미트라우스’란 수사를 만나게 됐다. 그날은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 날 나는 그가 머무는 메가 메테오라 수도원을 찾았다. 그의 안내를 받아 보물실을 둘러봤고, 특별히 허락을 받아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테미트라우스 수사와의 인연은 나로 하여금 세 차례나 메테오라를 찾게 만들었다. 나보다 10년이나 젊은 그는 늘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었다. 그를 통해 나는 나를 낮추는 법과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해 여름엔 가족과 함께 메테오라를 찾았다. 나는 어김없이 테미트라우스 수사를 만나려 메가 메테오라 수도원을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후임 수사가 전해준 소식만 들었다.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다른 수도원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허전하고 그리웠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접근이 불가능해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 중간에 만들어진 은둔 수사의 수행공간. 지금도 옛날 방식으로 수행하며 살아가는 수사들이 있다.
무념무상의 공간, 초기 동굴 유적지
메테오라 지역에 새로운 주인이 등장한 시기는 9세기께다. 주인공은 세속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신에게 다가서려는 은둔 수사들이었다. 초기 은둔자들이 터를 잡은 곳은 바위산 정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500년 넘게 바위틈과 작은 동굴에서 생활하며 기도와 명상으로 스스로를 깨닫고 신이 바라는 삶을 살았다. 초기 은둔 수사들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는 도처에 흩어져 있다. 특히 아기오스 스테파노스와 루사누 수도원 사이에는 수십 곳에 달하는 유적지가 남아 있다. 겸손했던 은둔자의 영역으로 접근하려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춰야 한다. 신을 갈구하던 수사들이 머물던 공간들은 단순 그 자체다. 수행과 침식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좁은 공간 외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다.

전통의상을 착용한 여성들이 메테오라 유적지를 향해 이동하는 모습. 메테오라 수도원 방문객은 주로 나이 든 여성이 많다.
메테오라가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고적함이나 명상적인 평온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은둔 수사들이 신과 만났던 공간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철저하게 세속의 끈을 단절할 목적으로 아예 접근이 불가능한 바위 중간에 토굴을 파고 수행에만 매진하는 수사도 있다. 수사들이 머무는 토굴이나 바위 유적지에는 어김없이 바람결 따라 춤을 추는 원색 천이 장식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그들의 터전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발 500m 바위 위에 33년간 지은 14세기 건물
바위산 정상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수도원들은 문화유산에 해당된다. 오늘날 마주할 수 있는 수도원은 14~16세기에 세워졌는데,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정신세계에 매진했던 수사들의 터전이었다. 이곳에 본격적으로 수사들이 몰려든 것은 세르비아 왕 스테판 듀산이 테살리아지역을 점령한 1340년 이후다. 정치적으로 격변기에 접어들자 마케도니아 지방을 비롯해 각지에서 흩어져 수행하던 수사들은 보다 안전한 은둔 생활을 꿈꾸며 메테오라로 모여들었다.

이 지역 수도원을 총괄하는 메타모르포시스(일명 메가로 메테오라) 수도원은 성 아타나시오스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14세기 초반 아토스산에서 이주해온 성 아타나시우스는 해발 500m가 넘는 바위 꼭대기에 인간의 숭고한 신앙심과 무한한 능력을 보여주는 위대한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 1356년 시작한 건축은 3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1388년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무한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수도원이 처음 완성될 당시에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소박했다. 수도원이 완성되면서 수사들이 몰려오자 각 수도원에서는 새로운 공간을 하나씩 건설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이 방문할 수 있는 여섯 곳의 수도원도 여러 차례 증축과정을 걸쳐 완성된 건축물이다.

의 유일한 통로는 긴 줄사다리와 그물망
메테오라 수도원은 15~16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는 바위산 끝자락에서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낸 수도원이 24곳이나 세워졌다. 천혜의 마천루에 터를 잡은 인간의 경이로운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사라져 지금은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을 중심으로 바를람, 루사누, 아기오스 니콜라오스, 아기아 트리아다, 아기오스 스테파노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멀리서 바라본 수도원은 마치 굴뚝 위에 만들어 놓은 새들의 보금자리를 연상시킨다. 지금은 계단과 다리를 이용하여 접근할 수 있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수도원은 세속과 단절을 의미했다. 수백 년 동안 수도원으로 통하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긴 줄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무를 고정해 만든 줄사다리와 도르래를 이용한 그물망이 전부였다. 일부지만 수사 중에는 수도원에 오르자마자 속세와 완전한 단절을 위해 줄사다리와 그물망을 부숴버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재 루사누와 아기오스 스페파노스 수도원에는 수녀들이 거주하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오직 남자만이 출입이 허용되었던 금녀의 공간이었다.

삶과 혼으로 가득한 공간들
태초의 자연과 때 묻지 않은 영혼이 공존했던 수도원에는 특이한 유물과 예술품이 가득하다. 수도원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보물을 보유한 곳은 수도원장이 상주하는 메타모르포시스 수도원이다. 크레타 화풍의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된 주예배당을 축으로 과거 수사들이 식당으로 사용하던 장소를 활용한 보물실에는 수사들이 제작한 아이콘(聖畵)을 비롯해 전례(典禮)용품, 수사 의복, 아름다운 삽화가 그려진 필사본 등이 보관되어 있다.

한편 성 니콜라우스와 루사누, 바를람 수도원에도 수사들이 그려 놓은 멋진 프레스코 벽화와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생활용품이 즐비하다. 이곳 수도원을 장식한 프레스코 벽화는 바티칸이나 아비뇽처럼 화려하지 않다. 광채를 발산하는 것이라곤 조금 밝은 색상의 벽화가 고작이다. 하지만 평생 맑은 정신세계를 갈구했던 수사들이 하느님께 봉헌한 작품답게 어떤 종교화보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워 훗날 종교화를 화폭에 담았던 화가는 물론이고 많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선물했다. 또한 수도원마다 수사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나무로 짜 만든 커다란 물통을 비롯하여 물품을 운반하거나 수사들이 이동수단으로 사용했던 그물망과 줄사다리, 수도원에서 생을 마감한 수사들의 두개골까지.

시간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은 채 바위 위에 위태롭게 매달린 수도원 유적지와 조물주의 위대한 창조력이 어우러진 메테오라. 인간능력의 한계에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메테오라, 그곳에 서면 태초의 자연과 맑은 영혼의 울림이 느껴진다.

여행 메모 가는 길: 인천에서 유럽 주요 도시를 경유해 아테네로 이동. 아테네에서 메테오라 유적지까지는 렌터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공항에서 메테오라까지 5시간,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면 트리칼라까지 이동한 후 로컬 버스로 갈아타고 칼람바카로 간다. 이때 소요시간은 약 6시간30분. ※수도원 방문 시 짧은 치마와 바지, 소매가 없는 티셔츠 차림으로는 입장할 수 없다.


* 다음 회에는 고대 로마 유적지와 아름다운 석회암이 어우러진 터키의 ‘파묵갈레’를 찾아갑니다.


사진작가이자 여행작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20여 년 동안 130여 개 나라, 1500여 곳의 도시와 유적지를 다니며 문화와 자연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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