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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담론 빼고, 뻔한 선악구도 피하고…맛이 새롭다

중앙선데이 2010.07.11 04:29 174호 4면 지면보기
“결국엔 착한 사람이 이기는 거다.”
KBS-2TV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에서 탁구(윤시윤)가 툭하면 내뱉는 이 말은 이 시대극이 내세우고 있는 주제다. 탁구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이 말을 귀에 닳도록 들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주제가 그렇다고 드라마가 밋밋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렇게 ‘착한 사람이 이길 것’이라 믿고 있는 탁구 주변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들이다.

KBS2 ‘제빵왕 김탁구’와 SBS ‘자이언트’로 보는 TV 시대극의 진화


그런 말을 탁구에게 해주었던 엄마 미순(전미선)은 그 누구보다 착하게 살아왔지만 거성식품 구일중(전광렬) 회장과의 하룻밤으로 탁구를 갖게 되고, ‘도망치는 삶’을 살아간다. 비서인 한승재(정성모)와의 불륜을 통해 마준(아역 신동우)을 낳은 거성가의 안주인 서인숙(전인화)이 호시탐탐 미순과 탁구를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 결국 미순은 도망치다 벼랑에서 떨어지고, 탁구는 그렇게 실종된 엄마를 무려 12년간이나 찾아다닌다.

이건 절대로 착한 사람이 이기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탁구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그 어린 시절 엄마의 말을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세상은 막장이다. 그런데 엄마가 벼랑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에 절망에 빠져 있는 탁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다름 아닌 그 유언처럼 남은 엄마의 말이다. 세상은 여전히 막장이지만, 그래서 착한 사람이 이기기엔 너무나 폭력적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탁구는 ‘착한 사람이 이기는 걸’ 보여주고 싶어진다. 막장의 시대를 넘어 정당하고 선한 방법으로 세상의 왕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이것은 ‘제빵왕 김탁구’라는 시대극이 1970~80년대라는 시대를 그리는 방식이다. 그 개발시대의 가부장제하에 놓여 있던 막장의 기운들과, 그 어둠을 깨치고 성장해온 우리의 모습이 탁구라는 캐릭터의 성장으로 그려지는 방식.

이 드라마의 첫 시작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 이야기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마치 제왕처럼 군림하는 구일중과 궁궐의 대비마마처럼 집안을 장악하고 있는 홍 여사(정혜선), 그 속에서 화려함을 누리면서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살아가는 서인숙. 이 전형적인 가부장적 분위기는 이 모든 막장의 근원이 된다.

물론 구일중은 빵 만드는 기술을 통해 자수성가한 인물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왕국은 오히려 치열한 후계자 대결구도로 치달으면서 가족 간의 피 튀기는 싸움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한 집안에서 자행되는 당대의 일상화된 폭력은 어린 유경의 늘 멍든 얼굴로 표상된다. 집 안에서 이럴진대, 집 밖에서는 오죽할까. 개발시대가 가진 그 막장의 분위기는 이처럼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배경을 구성한다. 아마 당대를 경험한 기성세대라면, 알 수 없이 짓누르던 그 억압의 분위기를 익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시대의 분위기이기도 했으니까.

제빵왕 김탁구’의 전개방식은 시대극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대극이란 결국 과거의 한 시점을 현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힘겨웠던 시대의 아픔은 차츰 성장하면서 아물기 마련. 생채기는 남지만 성장하지 않는 시간은 없다. 그러니 시대극이 그저 과거를 담아내는 향수 드라마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시대극이 갖는 성장의 요소는 과거가 아니라 늘 현재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시대극이 지향하는 현재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다. 예를 들어 개발시대의 끄트머리에서 얻게 된 풍요는 과연 성장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혹시 빈부 격차의 심화를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따라서 ‘에덴의 동쪽’이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개발시대를 담은 시대극들이 늘 비판의 도마에 올려진 것은 이 작품들이 민감한 거대담론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발시대를 상징하는 성공에 대한 집착은 이제 행복을 추구하는 현재에서 바라보면 성장이 아닌 비뚤어진 욕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제빵왕 김탁구’가 다루는 세계는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적인 세계다. 이 시대극이 시대극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70~80년대라는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한 발 떨어진 배경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시대극의 한계를 시대와의 거리 두기에서 넘어섰다면, 개발시대 강남신화의 거대담론을 다루는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는 어떨까. ‘자이언트’는 우려한 대로 시작 전부터 “또 개발시대의 이야기냐”는 섣부른 비판들이 쏟아졌지만, 기존 시대극과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이 비판을 넘어섰다. ‘자이언트’는 단순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대결구도들이 등장한다.

초반부 만보건설 회장인 황태섭(이덕화)이 매립지 공사를 사이에 두고 대륙건설의 홍기표(손병호)와 대결구도를 벌일 때, 마치 황태섭이 선이고 홍기표가 악인 것처럼 드라마가 흘러가던 것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후에 홍기표가 양심선언을 하려 하고, 그로 인해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홍기표가 선인 것처럼 그려진다. 즉 선악구도는 애초부터 없었고, 다만 상황에 따라 권력의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이 선악구도의 탈피는 이 시대극을 단순한 과거 찬양용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어느 한 시점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전체적인 그림을 다양한 시각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시대극은 특유의 옛이야기가 갖는 과장의 가능성, 현대극보다 더 강력한 대결구도, 게다가 현대인들이 매료되는 성장드라마적인 요소, 또 보편적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가족드라마의 구조 등등 장점이 많은 장르다.

하지만 시대극은 과거를 단순히 향수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흘러온 현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정치성을 띠게 된다. 그리고 특정한 시각을 담는 정치성은 대중성을 추구해야 하는 드라마에 한계를 지우게 마련이다. ‘제빵왕 김탁구’나 ‘자이언트’ 같은 작금의 시대극들은 그 정치성을 지워냄으로써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하나는 거대담론을 피하고, 다른 하나는 선악구도를 탈피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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