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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흑인과 그렇게 친하더니, 어찌 그리 심한 말을

중앙선데이 2010.07.11 04:26 174호 4면 지면보기
린제이 로한, 패리스 힐튼 등 할리우드에는 사고뭉치 연예인이 많지만, 못된 짓도 어렸을 때 해야 그나마 귀엽다. 올해 54세의 영화배우 멜 깁슨(사진)이 전 애인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2006년에도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유대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 명배우 멜 깁슨의 두 얼굴

멜 깁슨은 지난해 4월, 28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별거 또는 이혼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할리우드에서 28년이라는 기록은 배우의 인간성을 돋보이게 할 만큼 훌륭한 전적(?)이다. 그러나 이혼 직후 러시아 출신 뮤지션 옥사나 그리고리에바가 멜 깁슨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가정적 이미지는 무참히 깨졌다.

그리고리에바는 그해 10월 멜 깁슨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그리고 올해 3월 헤어지기로 했다. 현재 두 사람은 이 아이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한 상태다. 그리고리에바에 따르면 멜 깁슨은 그녀의 얼굴을 때려 이를 부러뜨리고 머리채를 잡아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그녀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멜 깁슨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했고 결국 멜 깁슨의 폭력적인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는 그리고리에바에게 ‘창녀’라는 등의 욕설을 퍼부었다(신문 지면이라 차마 다 소개할 수 없다). 가장 논란이 된 발언은 “넌 깜둥이(nigger)에게 성폭행을 당해도 싸다”라는 발언이었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언어적인) 성폭력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인종차별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에서는 그 어떤 곳보다도 인종차별적 발언이 금기시된다. 다민족·다문화의 공존이 미국사회 질서 유지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든지 말든지, 겉으로 인종차별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가 된다. 하물며 유명 연예인이 그런 발언을 했으니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로스앤젤레스 지부장인 리언 젠킨스는 “그는 흑인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편견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며 멜 깁슨의 발언에 격노했다. ‘더 비버’ 등 개봉을 앞둔 영화는 물론 그가 이전에 출연한 영화까지도 보지 말자는 불매운동의 조짐까지도 보이고 있다.

배우들은 출연한 영화 속의 운명대로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하던데, 멜 깁슨은 예외다. 아니, 어쩌면 정반대다. 그는 주로 불의에 대항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강직한 이미지의 역할을 도맡아 왔다. 게다가 영화 ‘리썰 웨폰’ 시리즈에서는 흑인 동료(대니얼 글로버)와 환상의 콤비를 이루는 경찰로 등장하지 않았던가.

영화 속 그가 현실을 배반하는 여러 사례 중 단연 압권은 2000년에 개봉한 영화 ‘왓 위민 원트’일 것이다. 이 영화 속에서 멜 깁슨은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여자처럼 화장도 해보고 코팩도 하고 심지어 속옷까지 입어본다(비록 여성용 제품 광고를 기획하기 위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결국은 앙숙이었던 한 여성을 이해하고 사랑도 나누게 된다.

비록 영화 속이긴 하지만 흑인들과도 잘 지내고 여성의 마음도 헤아리려 애썼던 그가 실은 이렇게 형편없는 남자라니 역시나 미디어에 비친 이미지에 속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만큼 자신의 본래 모습을 완벽하게 속이고 멋진 남자처럼 보이게 하는 탁월한 연기력 덕분에 그가 세계적인 명배우의 반열에 오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음악과 문화 등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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