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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익은 존 포거티, 구수한 장맛 나는 그의 목소리

중앙선데이 2010.07.11 04:24 174호 5면 지면보기
1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타임머신이라도 올라타고 CCR의 라이브 무대 맨앞 자리로 득달같이 달려가고 싶다.
잠깐 망설인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을 생각하며. 팀 이름이 긴 편이라 대개 줄여서 CCR이라고 부르는 4인조 밴드다. 이 팀이라면 뭘 들어도 다 좋은데 어떤 앨범을 올린다지?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5년 남짓한 활동 기간에 쏟아낸 정규앨범만 일곱 장이다. CCR 음악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이도 귀한 요즘이지만, 나한텐 여전히 신선하게 들려 불평의 여지가 없다.

박진열 기자의 음악과 '음락' 사이- CCR의 3집 앨범 ‘Green River’ (1969)

2 세 번째 앨범 ‘Green River’ 재킷(1969년).
조영남씨가 그 옛날 번안해 불렀던 가요,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은 올드팬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터다. 원곡 ‘Proud Mary’까지. 그 노래가 담긴 2집 ‘Bayou Country’가 좋겠네, 뽑아들다말고 내려놓는다. ‘하사와 병장’의 “목화~밭~ 목화~밭~”이 별안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Cotton Fields’ 멜로디를 살짝 차용한 추억의 히트곡도 괜찮겠다 싶어 슬며시 4집 ‘Willy and the Poor Boys’를 꺼내든다. 했더니만 이번엔 그 옆에 있는 앨범 ‘Green River’가 눈에 밟힌다. 그러고 보니 이 음반 세 장 모두 1969년에 나온 거였지, 참 대단한 CCR이었어, 나도 몰래 고개를 주억거린다.

팀 이름은 또 어떻고. ‘순수한 결정체를 부활시켜내겠다는 신념’이라니. 고지식하되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번뜩이는 자부심마저 읽혀진다. 그 결정체, 혹시 히피 반(反)문화의 몽환적 이상주의에 대한 나름의 강력한 해독제 아니었을까. 친숙한 선율과 간결한 비트, 그리고 시대정신까지 녹여낸 뼈있는 노랫말로 말이다. 이를테면 사무치게 파고드는 노래 ‘Who’ll Stop the Rain’(70년)이나 ‘Have You Ever Seen the Rain’(70년)은 비오는 날의 그렇고 그런 비련을 그린 게 결코 아니다. 베트남전과 고엽제의 비극을 비에 빗대 쓰다듬은 꽤 묵직한 반전 송가다. 한데 이런 연주로도 그맘때 이 땅의 젊음들을 불러내 춤깨나 추게 했다지. 고고장 곳곳에서 밤이면 밤마다 인기 댄스 넘버로 전염병처럼 돌았다지, 맙소사. 그건 어쩌면 우중충한 세상만사 깡그리 잊게해준 만병통치 ‘당의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타는 갈증으로 헛헛하던 그 시절 청춘한텐.

흔히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지만, CCR만큼은 그 둘 다 진국이다. 매끈매끈한 세련미라면 CCR은 영 젬병이다. 자르르 흐르는 윤기 같은 건 원래 없다. 촌티 폴폴 나는 앨범 재킷 커버처럼. 근데도 스르륵 끌리는 걸 보면 참 신기한 노릇이다. 물론 그 맛이라는 게 듣는 이 취향에 따라 좋고 싫음이 갈리겠지만.

그들이 빚은 록 음악 주재료는 바로 리듬&블루스(요즘 흔히들 R&B라 부르는데, 나는 짧게 줄여 말하는 게 어째 마뜩찮다. 당최 넘실대며 끈적이는 그 깊은 맛, 진심이 느껴지질 않아서랄까)다. 우둘툴툴한 뚝배기 안에 좍 펼친 다음, 들썩이게 하는 로커빌리를 버무려 얹고, 애잔한듯 흥겨운 컨트리로 간을 맞춰 푹 발효시킨다. 묵은지처럼 곰삭은 블루지한 맛깔의 로큰롤 성찬이다. 그뿐인가. CCR은 샌프란시스코 인근 소도시에서 결성된 밴드답지 않게 미국 남부 지방의 진한 흙내음 땀내음 풍기는 스웜프 음악의 질박함까지 두루 능수능란했다. 사이키델릭 록의 성지 출신이면서도 그들은 지나친 기교를 싫어했다. 마약 냄새도 피했다.

존 포거티(John Fogerty·65)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뚝배기 사운드, 쌈빡한 장맛을 좌우한 그다. 솜씨 훌륭한 숙수(熟手)다. 쏙쏙 감기는 일렉트릭 기타 선율에 걸걸한 목소리를 척척 얹어 놓는데 이 맛이 만만찮다. 리드 기타·보컬에 작사·작곡, 편곡, 프로듀싱도 존 포거티는 혼자 다 한다. 영락없는 나홀로 천재다. 녹음 작업 땐 숫제 스튜디오 청소까지 자기가 도맡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고집불통이기도 하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거문고까지 뜯는 스타일이랄까. 친형인 톰 포거티(1941~90)는
재능이 하늘을 찌르는 동생에 치여 그만 뒤켠의 리듬 기타, 백보컬로 잠자코 연주한다. 부글부글 끓으며. 참다참다 못한 형 톰, 급기야 뛰쳐나간다. 그들 마지막 앨범 ‘Mardi Gras’(72년)가 좀 모양 빠지는 트리오 연주가 된 연유다. 늘 으르렁거리던 맨체스터 록밴드 오아시스(Oasis)의 두 기둥, 갤러거(Gallagher) 형제가 생각나는데, 그들이 갈라선 ‘형제의 난’도 사실 CCR이 원조랄 수 있다.

그렇다고 CCR 음악의 톤이 죄다 흥겹기만 한 건 아니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오만 가지 인생의 신산(辛酸)까지도 흠뻑 스며 있으니까. 마치 웃어도 웃는 게 아니란 식으로. 가령 ‘Someday Never Comes’(72년) 같은 곡은 즐겁다고 해야 할지, 서글프다고 해야 할지, 북받치는 먹먹한 응어리가 똬리를 튼다. 이런 ‘CCR스러움’이 나는 맘에 든다. 정말. 존 포거티가 드물게 개인사를 토로한 ‘Wrote a Song for Everyone’(69년)의 소리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이건 내가 제일 아끼는 그들 앨범 ‘Green River’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노래다. 여기서 굉장한 히트곡이라면 사회성 짙은 노랫말을 얹은 로커빌리풍의 ‘Bad Moon Rising’과 경탄할 만한 컨트리 발라드 ‘Lodi(로다이)’다.

이제 겨우 40분 CCR을 들었을 뿐인데도, 볕에 그을린듯 투박한 사운드, 그 생생한 감촉만으로 지금 나는 행복감에 배부르다. 71년 영국 음악지 ‘NME’의 독자 투표에서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은 (무대를 막 떠난) 비틀스를 누르고 세계 최고의 록그룹으로 뽑혔다. 그럴만도 했다.

박진열 기자


정규 음반을 왜 앨범이라고 할까. LP판을 왜 레코드라고 할까. 추억의 ‘사진첩’이고,‘기록’이기에 그런 거라 생각하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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