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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젊게 더 건강하게, 나를 지켜주는 생명의 묘약

중앙선데이 2010.07.11 04:03 174호 20면 지면보기
내 이름은 ‘비타민(vitamin)’입니다. 99년 전, 그러니까 1911년 태어났습니다. 폴란드 태생의 화학자 캐시미어 풍크가 ‘생명(vital)의 아민(amine)’이라는 뜻에서 비타민(vitamine)이라고 붙였죠. 뭔가 다르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e’가 빠졌습니다. 원래 아민(단백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의 아미노산)이 모두 포함된 물질인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이름이 괜찮아 그냥 ‘e’를 빼고 비타민(vitamin)이란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사실 출생신고가 그때 된 것뿐이지 저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몰라봤을 뿐이죠.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구절과 같네요.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성분에 불과했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영양소가 된 거죠.자랑이 심하다고요? 과장이 아닙니다. 제가 부족하면 각종 병이 생깁니다. 잇몸에서 피가 나는 ‘괴혈병(壞血病·scurvy)’도 그중 하나입니다. 기원전 1550년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이 병에 대한 증상이 기록돼 있을 정도죠.

괴혈병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건 유럽인들이 신대륙 개척에 나서면서였습니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발견한 바스코 다가마는 1497년 동인도로 항해하던 중 괴혈병으로 선원 189명 중 100명을 잃기도 했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꿈꾸는 영국 해군에 괴혈병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습니다. 1747년 군의관이던 제임스 린드 박사가 해법을 찾아냅니다. 레몬이나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 된다는 거였죠.

그러나 린드 박사의 주장은 50년 가까이 지나서야 받아들여집니다. 1795년에야 레몬 주스(후엔 라임 주스로 대치)가 영국 해군 정규 식사의 일부가 됐죠. 영국 해군에 ‘라임(limey)’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물론 당시 레몬 주스에 들어 있는 물질이 저(비타민C)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때에 따라서 13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A(레티놀), D(칼시페롤), E(토코페롤), C(아스코로브산), B1(티아민), B2(리보플라빈), B3(니아신), B5(판토텐산), B6(피리독신), B9(엽산), B12(시아노코발라민), H(비오틴), K(필로퀴논) 등이지요. 제 이름이 이렇게 다양한 데에는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더릭 가울랜드 홉킨스 박사 덕이 큽니다. 그는 1906년 쥐를 사용한 영양 실험의 결과를 보고하면서 ‘식품에 들어 있는 어떤 미지의 성분이 건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예언했죠. 이것은 영양소로서의 제 존재를 최초로 증명한 연구였습니다. 이 공로로 홉킨스 박사는 1929년 노벨 생리학ㆍ의학상을 받았죠. 그 외 저를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만 20명 가까이 됩니다.

2006년 미국 국립보건원(NIH)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이 저를 섭취하기 위해 쓰는 돈이 연간 230억 달러(약 28조원)라고 하네요. 아직 한국에서 제 인지도는 낮지만(시장 규모 연간 5500억원), 인기는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시장 성장세 연 5%).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저는 ‘강남 신흥 재벌’쯤 됩니다.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른 필수 영양소가 강북 전통 부자라면 말이죠.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 사이에선 제 인기가 ‘짱’입니다.

물론 저를 고깝게 보는 눈도 많습니다. 제 능력을 의심하는 이도 많고요. 대표적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병원 연구소의 고란 젤라코비치 박사팀이 2007년 발표한 ‘항산화 비타민 보조제와 사망률에 관한 통계적 분석’이라는 논문이 그렇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합성 비타민을 많이 섭취하면 사망률이 5% 이상 증가한다”는 겁니다. 저에 대한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린 주장이라 ‘코펜하겐 쇼크’로까지 불렸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게, 이 연구팀이 무려 23만2606명(44.5%는 여성)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기존의 학술논문 68건을 통계학적 방식으로 재분석했거든요. 게다가 논문에 게재된 곳은 1883년 창간된 세계적 권위의 의학 저널인 ‘미국 의학협회보’였고요.

제약업계는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죠. 사실 제가 부족하면 병이 생긴다는 건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앞서 말한 괴혈병도 그렇고요, 1915년 미국에서 20만 명이 발병해 1만 명을 죽게 만들었던 ‘펠라그라’라는 병은 우유ㆍ고기ㆍ계란 등에 들어가 있는 제(비타민B1)가 모자라서 생긴 병이었죠. 최근에는 제가 지닌 항산화 능력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려면 산소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산소와 접촉하면 산화가 일어나고 이것은 세포와 DNA에 손상을 가져오죠. 이 때문에 피로ㆍ노화ㆍ만성질환ㆍ질병 등과 같은 일이 생기고요. 이걸 막는 기능, 곧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게 바로 저(비타민C)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스스로 저를 만들 수 있지만 사람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아프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특히나 제가 필요하죠.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들 제 존재를 인정하기는 합니다. 다만 코펜하겐 연구팀처럼 제가 나쁜 게 아니라 합성된 제가 나쁘다고 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 중에는 “특별히 질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건강 유지를 위해 비타민이 필요하다면 채소나 과일을 섭취하라”고 조언합니다. 모든 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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