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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시대부터 괴혈병 막는 물질 찾기 시작

중앙선데이 2010.07.11 04:02 174호 20면 지면보기
영국인 제임스 린드는 ‘비타민의 개척자’다. 1740년대 그는 영국해협을 방어하는 영국 해군함대 소속 군의관이었다. 당시 영국은 네덜란드를 막 제압하고 해상패권을 장악했다. 린드의 주업무는 부상자 치료가 아니었다. 그는 수병들의 고질병을 치료하느라 하루 일과를 보내야 했다. 잇몸에서 피가 나는 병(괴혈병)이었다.

인류의 비타민 탐험 역사

괴혈병은 유럽인들이 대양 항해를 시작한 15세기 말 이후 뱃사람들의 직업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항해하는 동안 신선한 채소를 충분히 먹지 못해 비타민C 결핍증(괴혈병)을 앓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0년대 괴혈병을 보인 뱃사람들을 중남미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다 버리다시피 내려놓고 항해를 계속했다.콜럼버스는 포르투갈로 돌아가는 길에 그 섬에 다시 들렀다. 그는 깜짝 놀랐다. 죽은 줄 알았던 선원들이 아주 건강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 일행은 그 섬을 ‘치료의 섬’을 뜻하는 쿠라사오(Curacao)라고 불렀다.

콜럼버스 이후 250여 년이 흐른 뒤인 1747년 린드는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한 영양분(비타민C)’이 부족해 괴혈병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6년 뒤인 1753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 신선한 녹색 채소를 먹으면 괴혈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을 논문으로 내놓았다. 미국 영양학자인 잭 챌럼은 ‘비타민의 과거·현재·미래’란 칼럼에서 “린드가 비타민의 정체를 알아내거나 비타민이라는 말을 만들지는 않았다”며 “하지만 이후 학자들이 그의 논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비타민을 연구했기 때문에 그를 ‘비타민의 개척자’로 부를 만하다”고 말했다.

Vitamin=Vital+Amine
18~19세기 유럽 의사들이나 과학자들은 린드의 주장을 무시했다. 그의 논문은 오랜 세월 주목받지 못했다. 그사이 영국 해군은 괴혈병으로 수병 10만여 명을 잃었다. 민간인 희생자까지 감안하면 그 피해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괴혈병의 역사』).린드의 주장이 묻혀진 데는 위대한 생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도 큰 몫을 했다. 1860년대 그는 질병의 이면에 세균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후 ‘세균=모든 질환의 원인’이라는 통념이 유럽과 미국 과학자나 의사들을 지배했다. 그들은 괴혈병이나 비타민 B1이 부족하면 생기는 ‘다리가 붓고 아픈 증상(각기병)’도 병원균 때문이라고 믿었다.

제임스 린드
이런 ‘파스퇴르 통념’은 19세기 말에야 깨졌다. 1890년대 네덜란드 의사인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이 백미 대신 현미를 먹으면 각기병이 치료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각기병이 세균이 아니라 영양분이 부족해 발생한다는 점을 처음 밝혀낸 것이다. 마침내 비타민 연구가 150여 년 동안 긴 방황과 많은 희생을 치르고 제 궤도에 진입했다. 하지만 그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부족해 각기병이 발생하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건강이 나빠져 연구를 깊이 진행할 수도 없었다.

결국 비타민이란 말은 다른 과학자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주인공은 폴란드 태생의 화학자인 캐시미어 풍크다. 1911년 그는 현미에서 각기병을 막는 물질을 추출해 냈다. 그는 그 물질이 질소를 함유한 유기화합물(아민: Amine)의 하나라고 여겼다. 또 그는 그 물질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Vital)’이라고 믿었다. 그는 두 단어를 묶어 ‘Vitamine(비타민)’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비타민이라는 단어가 마침내 태어난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은 간편하게 Vitamin으로 줄여 쓰기 시작한다.

‘비운의 주인공’ 이야기는 비타민의 역사에서도 존재한다. 1929년 노벨위원회는 비타민을 발견한 공로로 에이크만과 영국 프레더릭 홉킨스에게 생리의학상을 줬다. 홉킨스는 비타민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풍크의 동료였다. 두 사람은 1912년 공동으로 ‘비타민이 부족해 질병이 발생한다’는 가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풍크는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폴란드 유대인 출신 풍크가 당시 기승을 부린 반유대주의에 희생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좀 달랐다. 그들은 “홉킨스가 비타민A(1913년)와 D(1920년)를 처음으로 발견한 점이 인정돼 풍크를 제치고 노벨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어찌됐든 풍크는 비타민 역사에서 중요한 흔적을 남겼지만 ‘비타민의 아버지(에이크만과 홉킨스)’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다.

파스퇴르가 비타민 발견 막아
전문가들은 1920~30년대를 ‘비타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 비타민C와 E, K, B군(群) 등이 줄줄이 발견됐다. 효능의 진실 가운데 상당 부분이 규명된 것도 이때다. 오해와 억측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의사들은 비타민C와 B가 ‘아주 없어야’ 괴혈증이나 각기병이 발생하는 줄 알았다. ‘모자란다’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이런 통념을 깨준 사람이 바로 헝가리 출신인 얼베르트 센트죄르지다. 그는 비타민C를 처음 발견했다(1937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그는 ‘비타민 전도사’로 불린다. 그가 동료 의사들을 상대로 비타민에 대해 활발하게 강의하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괴혈병이 없으면 비타민C가 부족하지 않다고 보는 이가 많다”며 “이는 아주 좁은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비타민은 최소 또는 적정 섭취량이 있다”고 말했다. 이후 많은 의사와 생화학자들이 최소·적정 섭취량을 찾아냈다.

비타민 효능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캐나다 의사인 에번 슈트는 비타민E를 심장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먹여 효과를 봤다. 미국 의사인 프레더릭 클레너는 어린이들에게 비타민C를 처방해 소아마비를 억제하기도 했다. 효능 연구의 분수령은 1944년 유전자 발견이었다. 이후 전문가들은 세포와 분자 단위까지 비타민 연구를 확대했다. 덕분에 비타민과 노화의 관계가 밝혀졌다. 미국 생물학자 네넘 하먼은 유전 연구를 바탕으로 활성산소가 노화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1954년 주장했다. 활성산소는 산소 원자 내 전자의 짝이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먼은 “활성산소가 상처 입은 유전자 등 세포 성분과 결합해 노화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타민C와 E가 활성산소를 중화해 노화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영양학자 잭 챌럼은 “유전자 단계까지 들어간 세밀한 연구 덕분에 비타민의 비밀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며 “우리는 비타민 탐험이라는 긴 항해에서 이제 반환점 언저리에 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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